당신의 서재
내가 고등학교 때는 천 원에 살 수 있는 포켓북이 유행했다. 교복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피천득의 수필집은 그중 내가 아끼는 책이었다.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는, 한 단락의 글을 공책에 필사하여 그 부분만 읽고, 또 읽었던 게 기억난다. 뿐이랴. 들꽃을 따다 압화를 만들어 표지를 만드는 공 또한 들였다.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당시 나는 그 수필에서의 문체가, 너무 좋았다. 쌀쌀한 초겨울 내 주머니 안에서 달궈진 손난로처럼.
고1 때였던가? 해리 포터가 등장했다. 짬이 날 때마다, 하교 후 서점에 들러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리와 나의 관계가 진(?)한 건, 그의 어려움과 극복이, 내 유년시절과 지금을 계속 위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혜가 자주 쓰는 표현인, 내 고난은 너의 손톱 때만큼도 되지 않았기에... 내가 덜 외롭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그’가 줬다. 고맙다 해리야.
나는 문학을 전공하면서 당시에는 문학과 소원했다. 취미가 공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더 이상 흥미는 안녕이다. 덕분에 동기들과 잔디밭에서 두부 김치에 막걸리 마시고, 후문 이모네 김치찌개를 먹으며 교감했고, 도서관에서 전공 이외의 서적으로 딴전부리며 교정에서 시간을 보냈다. 졸업 전에는 등단.이라고 원대한 꿈을 꿨지만 몇 번의 퇴짜에 한동안 오랫동안 시에 소극적 공격성, 즉, 삐져있었다. 늘 그렇듯, 단순한 나는, 시로 상처 받고, 시로 위로받는다. 그들의 시를 감상하면 내가 갖지 못하는 깊이를 절감하고, 그 심연에 감탄했다. 결국 나도 ‘욕망으로 수많은 공장을’ 세웠던 거다.
20대 후반이었나. 강신주가 나타났다. 기사를 보고, 어떨까 하면서 호기심에 읽어본 강 선생님의 책은 내게 너무 재미있었다. 나와 달리 학교를 졸업하고 석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나 동기를 만났을 때,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대화엔 참고 자막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선배의 박사논문을 읽었을 때의 당혹감.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간 종교서적에만 빠져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근육과 힘줄처럼, 문학에서의 철학은 떼기 힘들다. 난 고등학교 입시용 철학이 고작이었는데, 쉽게 철학을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에 강신주 작가의 책을 완주했다. 철학은 역시 ‘있는’ 학문이다. 부럽다.
지금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또다시 전공 서적을 붙잡고 있다. ‘국어학 개설’이 아닌, 병리생리학, 인체해부학, 보건 미생물학. 처음부터 변함없이 나를 지치게 하는 신기한 책들이다. 요새 심신을 위해 ‘개떡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는 법’을 읽고 있다. 덕분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11월 말에 기말 시험이 끝나면, 나는 2월부터 줄곧 중지되었던 나의 별 것 아닌 독서로 상을 주고 싶다. 주말 알바를 끝내고 녹초가 된, 잠이 쏟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