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focaccia

by 유녕

지난 토요일, 마당에 불을 피워 눈을 등지고 불을 감상했다. 친구는 불멍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불멍보다는 태우는 게 너무 재밌다. 물론, 이 세계에는 이미 그런 행동에 Pyrophilia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급 영어교실. Pyro-는 불을 뜻하고, -philia는 비정상적으로 좋아하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태우는 것에만 변태처럼 좋아할 게 아니라, 독자 마음에 불을 지펴야 할 텐데, 이 생에 가능한가 싶다. 하하.


아직 일요일인 나는, 낮에 한국 식품점에 가서 엿기름을 사 왔다. 한국을 떠난 지 5년 6개월 정도가 되었다. 조금 귀찮지만 5년에 한 번꼴로 식혜는 만들어 마실만 하지 않던가. 할머니께서 이맘때 즈음 설을 맞이하여 식구들을 위해 식혜를 60리터 정도 만드셨던 게 기억난다. 일부러 바깥에 두시고 슬러시 같은 식혜를 주신곤 했는데... 과연 내 손맛에서 할머니의 식혜 맛이 나는지 확인해봐야겠다.


토요일 낮에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꽂혀 반죽을 했다. 오늘은 포카치아 focaccia. 이탈리아에서 딱히 시선을 끄는 비주얼이 아니어서 먹을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이걸 집에서 만들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만들면서도 이걸 어떤 식으로 먹어야 하지? 하면서 다소 난감했는데... 먹으면서 내가 만든 모든 오욕칠정을 해결했다.

IMG_4607.JPG 제가 바로 바질 포카치아입니다

구글을 보니 피자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내 포카치아에는 바질 페스토가 들어간다. 페스토라 해봤자, 바질과 견과류(잣이 없었기에 난 아몬드), 마늘, 소금, 후추, 올리브, 치즈를 섞으면 된다. 아키스 셰프는 생바질을 쓰셨지만, 당연 우리 집에 생바질이 없다. 어쨌든 바질이기에 난 말린 바질로 대처하게 된다. 치즈는 생략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마침 레넷rennet이 들어가지 않은 파마산 치즈가 있어서 사용해봤다. 파마산 치즈가 짭짤하여 일부러 소금을 생략했는데... 지금 하는 생각은 치즈를 좀 과하게 넣어도 됐을 거 같은데...


확실히 겨울이라 1차, 2차 발효가 참 더뎠다. 그래도 내 온열 찜질기는 겨울에 더욱 빛을 발한다. 반죽에 찜질기로 금이야 옥이야 하는 걸 보면 나도 내가 미쳤다. 맛있는 걸 먹는 건 쉬운데, 그 과정이 챔 쉽지 않다. 맛이 얘기 나왔으니 이 친구에 대해 소개합니다. 제 친구 포카치아는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요. 그도 그럴 것이 속은 바질 페스토가 펴 발라져 있어서 안 촉촉하면 비정상이에요. 2차 발효가 끝나고 올리브유를 반죽 위에 뿌리는데 제가 손이 좀 떨려서 기름이 좀 과했어요. 덕분에 튀긴 듯 부친 김치전의 식감이 좋듯, 이 친구도 겉이 바삭하니 식감이 훌룡했어요. 하지만, 디핑 소스가 필요해요... 소금 누락의 인과응보...


오늘 아침으로 포카치아만 먹었지만, 내일은 파스타 소스를 만들어 찍어먹으면 참 좋겠다. 아님 구글이 추천하듯 포카치아 위에 토핑을 넣어서 전자렌즈에 돌려 먹어도 좋겠다. (전 블랙 올리브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정말 쓸데없는 계획인데 공유할게요. 내일 아침엔 포카치아 한 조각 위에 블랙 올리브를 때려 붓고 에멘탈 치즈(향이 약해서 아쉽지만 녹으면 쫀득한 식감이 좋은 치즈이죠?)를 덮어 오븐에 15분 구워 먹을 예정입니다. 현재 시각 밤 9시 54분, 전혀 출출하지 않은 시각입니다.)


전 일요일이 다 가기 전에 무알콜 캔맥 한 잔 하러 갑니다. 안녕.


Cover Photo by Sterling Lanier on Unsplas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