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 마미

by 유녕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같은 동네에 사는 선호라는 녀석과 한바탕 치고받고 분에 차 집으로 뛰어가던 중 근방에 서있는 엄마를 만났다. 옳지, 잘 됐다, 선호야 넌 죽었다, 새ㄲ야. 구세주 만난 듯 엄마를 향해 달려가 자초지종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설명했는데... 뭐지? 상황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내 편일 줄 알았던 엄마는 어색한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난 당장이라도 그 새ㄲ를 불러서 야단을 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선호도 혼날 각오로 내 옆으로 왔던 거 같은데... 의외에 전개에 안도하는 녀석의 꼬락서니를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집으로 향해 완주했다. 그때의 흥분을 20년이 지나도 조금 과장을 보태서 생생히 기억이 난다. 우씨. 맞은 기억보다 내 편을 안 해준 엄마가 무척 서운했던 얼마 없는 엄마와의 추억 중 하나이다.


이쯤이면 엄마의 입장도 대변을 해 드려야 한다. 우리 엄마는, 엊그제 내 나이였을 36살, 돌아가셨다. 눈물겨운 가정사야 어딘들 없겠으랴. 짧게 설명하자면, 엄마의 우울증이 분열증으로 변질되고, 요양병원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다가 일찍 생을 마감하셨다. 나의 기찬 이야기는 엄마의 외박 중 있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심화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엄마도 당황스러웠을 거다.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계속 생각을 묻어두고 살았는데... 퉁쳐줄게요, 영숙 씨.


나의 36살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조심스러웠다. 엄마가 못 산 나날을 내가 더 잘 살아주고 싶었기에 말이다. 나에게는 모성과 부성이 모두 픽션이지만, 그런 삶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품지 못한 엄마의 체감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가끔 그녀를 떠올리며 우는 것은, 그녀가 보고 싶어서라기 보다(쏘리 마마) 엄마가 일찍 되고 싶어서 결혼을 일찍 했다는 엄마가, 엄마의 꿈처럼 아이들을 키우며, 혼내며, 웃으며, 살아보지 못했던 그녀의 짧은 생이 아쉬워서, 안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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