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비나이다 남두육성님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글입니다. 직업일기라고 쓰고 가십이라고 읽어요. 가끔 엉뚱한 곳에 화풀이할 때도 있어야지요. 호스피스 간호사의 기록, 시작합니다.
보통 이틀 데이 근무, 이틀 나이트 근무가 맞지만, 이번주 저는 데이가 셋, 나이트가 하나입니다. 일단 데이가 많다는 것은 육체노동이 무척 심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보통 아침에는 일어나, 양치부터 세수, 샤워/목욕/bed bath, 리넨 교체, 환복, 정규/PRN 약 복용, 차팅, 식사 먹여드리기, 매 시간 자세 바꾸기, 드레싱 등의 각종 간호개입이 필요합니다. 다행이랄까요, 병원이 아니라 바이탈을 재야 하는 일은... 환우가 돌아가실 때뿐입니다. 역시나 첫 데이가 지날 때 이미 온몸이 쑤시더라고요. 지금은 그 근육들 마저도 익숙해져서인지 썩 괜찮습니다. 역시 적응의 동물, 인간입니다. 고맙다 인체야.
이번주 제가 배정받은 환우는 총 네 명이었습니다. 세 명은 둘이서 한 조가 돼야 케어가 가능한,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셨고요, 한 분은 그나마 제가 혼자서 케어할 수 있었어요. 세 분은 각기 다른 장기의 말기암 환자이시고요, 그러다 보니 통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손이 재야 하기 때문에 둘이서 합을 맞춰야 합니다. 짧은 경력이지만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5명 중 4명은 암환자입니다. 암은... 호스트를 죽이는 아주 잔인한 병인 것 같습니다. 망할 녀석이지요.
오늘은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어요. 보통 호스피스로는 응급차를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환우께서 24시간 내내 소변을 보지 못하셨고, 요도 catheter 삽관을 저도, 2년 차 간호사도, 30년 차 간호사도 실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호스피스는 주마다 담당 의사가 바뀌는데 하필 제가 인성 수레기라고 생각하는 의사가 이번주인 행운을 맞았지 뭐예요. 의사왈, '방광에 518밀리리터 소변이 있다고 응급상황은 아니니 상황을 두고 봐라'가 전화기 넘어 대답이었습니다. 의사가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왔던 오후 3시 환우의 방광에는 730밀리리터가 쌓여있었지요. 결국 이 의사는 911에 전화를 해서 응급차를 불러야 했고, 병원에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뇨기과 의사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지요. 덕분에 환우가 호스피스를 떠나 돌아오기 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속도에 잠깐 감동했던 건 안 비밀입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일이 진행될지 몰랐는데 깜놀했습니다.
근데 이 의사를 제가 왜 인성 수레기라고 부를까요. 이 의사는 제 배정 환우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관련 없는 간호사에게 질문을 하거나 심. 지. 어. 간호조무사에게 물어보더라고요. 얘, 뭐지??????? 이렇게 대놓고 저를 무시하는 사람이 오래간만에 처음이라 어이도 없고, 기분도 좀 상했지만, 직장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출근한 의사를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간호조무사에게는 고맙다고 하되 저에게는 냉랭한 환우까지 오늘은 심기가 영~ 불편한 하루였달까요. 물론, 친한 간호사에게 수레기 의사를 욕한 저 또한 그리 훌륭한 위인은 아닙니다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조금 더 갖춰주면 좋을 텐데 하는 이래저래 아쉬운 날입니다. 물론, 항상 저를 격려해 주고, 웃게 해주는 고마운 환우분들과 이들의 가족들이 천 배는 많기에 제 불평은 어리광 날것에 속합니다.
교훈이 있었던 날이라고 치고, 허허 웃으면서 늦은 새벽까지 버텨보겠습니다. 눈 감으면 침 흘리고 잘 정도로 졸리지만 내일은 나이트 근무라 오늘은 최대한 늦게까지 눈을 부릅뜨고 버텨야 합니다. 3시 정도까지만 버텨주면 되는데, 침착맨 유튭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면서 존버해 볼게요. 내일 저의 근무일지는 근무지에서 쓰고 있을까요? 제발, 모두가 평안한 조용한 밤이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