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 Aug 27. 2020

상상도 못 한 센토사

3. 더운 날씨에 관광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 영원할 것 같았던 싱가포르의 밤도 두 번이나 지나갔고 결국에는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이 출국이었기 때문에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사실 계획했던 일들은 웬만큼 이뤘기 때문에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일단은 시간 내에 짐 싸서 체크아웃하는 게 먼저였다.


  호스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조식 대신 꼭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인 카야 토스트를 먹어보자고 마음먹고 전에 봐 두었던 카야 토스트 집으로 향했다. 여기서 조금 창피한 일화가 생겨버렸다.


  아침이라 정신이 없었던 건지 피곤해서 눈이 침침했던 건지 메뉴판에 적힌 Ginger tea(생각차)를 Green tea(녹차)라고 본 것이다. 아직도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덜덜 떨리는 것 같다. 계속해서 그린티를 외치는 내게 캐셔분은 우리 그린티는 없어!라고 말씀하셨지만 납득이 안된 나는 왜 없냐는 거냐며(지금 보면 진상이 따로 없다) 물어봤지만 캐셔분은 I think you don’t understand me, we dont’ have green tea(네가 내 말 이해 못한 것 같은데 우리 그린티 없다니까).라고 반복하셨고 내 실수를 깨달은 나는 사과를 하고 처음 보는 음료를 시키고 주문을 마쳤다. 그제야 또 미소를 되찾은 캐셔분은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고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한국어로 인사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친절해서 눈물 날 것 같다.


  옆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푹 눌러쓴 모자에 누가 봐도 여행객 차림으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카야 토스트는 맛있었다. 애초에 좀 맛없기 힘든 음식이다. 카야 잼만 있다면 요리에 전혀 재능 없는 내가 해 먹어도 맛있으니까. 익은 것도 날 것도 아닌 계란을 까서 토스트를 적셔 먹었는데, 토스트가 워낙 작아서 그런가 계란 하나는 깨지도 않은 채 식사를 마쳤다.


  낯선 주스는 Grass jelly juice. 처음에 길거리를 가다가 포스터를 보고 희한한 이름에 친구에게 저게 대체 뭐냐고 물었지만 친구도 잘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젤리가 들어간 음료라고만 할 뿐이었고 나중에 마셔봐야지 라는 생각만 했었다. 찾아보니 선초 잎과 녹말로 만든 젤리라고 한다. 젤리 주스는 밀크티에 이 젤리를 넣은 음료수였다.


  그다음은 친구를 만나러 mrt(싱가포르 지하철)를 탔는데 속이 너무 울렁거리는 거다. 도대체 왜 이러지 싶었는데 문득 어제 마신 싱가포르 슬링이 떠올랐다. 술을 마셔본 적 없어서 잘 몰랐는데 엄마 체질을 닮아 술을 못 마시고 과일주 숙취가 엄청나게 심했던 것이다. 속은 메스껍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설마 진짜 그거 때문일까? 싶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가 무슬림이라 술을 하지 않아서 친구 역시도 상황을 해결할 마땅할 방법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가 인터넷에서 숙취에 괜찮은 음료를 찾았다며 하나 추천해줬다. 역에서 내려 근처 편의점에서 사 마시니 조금 나아진 것도 같았다.

맛은 포카리에 탄산이 들어간 느낌? 이온 탄산음료. 숙취에는 갈아만든 배가 짱인데.


  캐리어를 끌고 한적한 동네를 가로질러 걸으며 마지막 밤을 지낼 숙소를 찾아갔다. 외각 쪽에 위치한 호텔이었는데, 하루는 그래도 호텔에서 편하게 묵을까 싶은 생각이었기에 정한 숙소였다. 가격은 1박에 10만 원 정도. 호텔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1박에 5-6만 원 할 것 같은 이름만 호텔인 그런 곳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결정을 전 여행에 있어서 가장 후회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 가장 후회하는 일은 밤 비행기를 탄 것이다. 두 번째 후회 정도라고 해두자.)


호텔키. 호텔 방이 1층이라 그런지 소음도 많고 무엇보다 방이 방음이 진짜 안됐다. 로비에 사람들 소리가 다 들릴 정도.

  짐을 풀어놓고 친구랑 뭐 할지에 대해 수다를 좀 떨다가 센토사 섬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전혀 계획에 없는 일이라서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안은 없었기에 그러기로 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날은 너무 더웠고 내 옷과 머리카락은 지나치게 길었다는 거.


  날씨는 덥고 옷은 내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워낙에 더위를 싫어하는 편인데 싱가포르의 날씨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의 여름도 매우 덥지만, 더운 여름에 밖을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려고 수영복을 준비해 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라서 해변 근처에 앉아서 멍하게 있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 무계획이었나.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 함께 와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정말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그렇지만 센토사가 굉장히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건 단언할 수 있다. 내게 더운 날씨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육체적 여유가 조금 있고 머리와 옷차림이 조금 더 가벼웠더라면 아마 최고의 장소가 됐을지도 모른다. 역에서 내려서 무빙워크를 타고 길을 지나오는 내내 펼쳐진 풍경은 아름다웠고 이제껏 본 적 없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물론 해변도 아름답지만 친구의 말로는 일몰이 최고라더라. 센토사 근처에 숙소를 잡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겨봐야겠다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으로 발걸음 한 곳은 무스타파. 기념품이나 주변에 선물로 줄 것들을 조금 사자는 생각으로 향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싼 가격에 이것저것 살 수 있어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했더니 친구가 굉장히 놀라더라. 실제로 인터넷에 싱가포르를 조금만 검색해본다면 무스타파 꼭 방문하라는 이야기가 많다. 나도 꽤 추천한다. 진짜 싸게 이것저것 살 수 있다.


  크게 뭘 많이 산 건 아니었다. 캐리어를 조그만 걸 들고 왔기 때문에 많이 사봤자 들고 가기도 힘들었고 딱히 주변에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안 들어서 내가 사고 싶은 거 위주로 몇 가지 사 왔다. 홍차 티백을 좀 여럿 샀고(친구가 택배에 자주 티백을 넣어줘서 한두 잔 마시면서 홍차에 점점 빠졌었다.) 카야잼 3개(이건 3개로 부족했다. 10개는 사 왔어야 됐을 듯), 두리안 초콜릿(학교에서 친구들 먹여보려고), 스노우볼 같은 기념품, 마그넷(해외여행할 때마다 하나씩 모으는 게 로망이었다), 건망고, 타피오카 칩(친구가 보내준 적 있었는데 많이 짜지도 않고 고소한 게 중독성 있었다), 틴케이스가 예쁜 초콜릿 몇 개(대부분 초콜릿 모양이 멀라이언이라 굉장히 귀여웠다), 매기(싱가포를 라면) 정도?


  그래도 선물을 좀 사갈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한 두 명 챙기려고 하다가 이 사람 저 사람도 챙겨야 될 것 같아 귀찮은 마음에 그냥 아예 선물은 없는 걸로 결정했다.


  왜 이렇게 조금 사냐며 친구는 다소 충격(?) 받은 듯 물었다. 같은 해 10월에 친구가 한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과자며 옷이며 엄청난 양을 사 갔었던 것과 달리 나는 굉장히 소소한 편이었어서 차이가 확연했다. 지금 생각하면 선물을 조금 사서 주변에 나눠주면서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면 꽤 재밌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참고로 이번에 산 두리안 초콜릿은 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나도 괜찮게 먹은 건 물론이거니와 친구들 중에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다음날 아침 9시 비행기라 일찍 일어나야 했다. 친구네 조부모님께서 데려다주신다는 말에 한시름 놓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짐을 (나름) 깔끔하게 꾸리고 체크아웃하니 앞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은 공항에서 어김없이 면 요리였지만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거 500% 잘못 먹고 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싱거웠다. 뭔가 잘못했는데 뭔지 모르겠는 느낌. 배 채운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 뒤는 특별할 것 없는 출국 절차가 진행되었다. 지루한 듯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비행도 이어졌다. 비행기 안에서 결국엔 혼여행 해냈네(친구의 도움이 있었지만), 라는 마음도 들어 느낌이 묘했다.

대한항공을 타면 비빔밥을 꼭 먹으라던데. 아쉽지만 나는 비빔밥을 별로 안좋아한다.

  갈 때는 못 먹었던 기내식도 챙겨 먹고 경이로운 바깥 풍경도 지켜보다가 영화나 드라마도 몇 편 보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이었다. 싱가포르와 다르게 입김이 새어 나오는 추운 겨울의 날씨가 왜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던지.


  어쨌거나 3박 5일의 짧은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포르 야경에 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