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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May 04. 2022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선물 받았다.

 부담스러운 선물 속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최근 다시 살이 쪘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짐가방에서 꺼내 입은 바지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다시 정상 몸무게로 되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이 바지는 내가 이 년 전에 다니던 회사의 원장이 나에게 선물한 옷이다. 내가 회사에서 좀 더 프로페셔널하고 여성스럽게 입기를 원했던 그녀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를 예정에 없는 토요일 근무를 시킨 뒤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를 좋아했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녀가 하는 감사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조금 굽이 있는 구두 두 개와 바지 한 개 그리고 치마 두 개를 선물했다. 그녀가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했던 바지와 치마는 내가 평소에 입던 스타일도 아니었고 사이즈도 한 수치 작았다. 조금 불편했지만 이대로 예쁘다고 하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 두었다. 백화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원장님에게 받은 만큼 또 누군가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마운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받은 만큼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언젠가 저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 것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렇게 크고 작은 선물은 계속됐다.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던 나는 더 열심히 일했다. 더 많은 선물과 보상을 원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받은 만큼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입사 당시 10시에 출근해 19시에 퇴근하던 게 8시 20분에 출근해 19시 30분 퇴근으로 변했다. 그녀가 좋고 싫은 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았던 나는 하루 종일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그녀가 싫어하는 직원들에 대한 험담을 받아주고 직원들과 원장의 사이를 조율했다. 그녀가 먹고 치우지 않는 컵과 접시를 치웠고 그녀가 주선한 소개팅에도 나갔다. 소개팅은 끔찍했다. 에프터를 받지 못한 나에게 그녀가 웃으면서 한 말은 "그러게 제가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브 씨에게는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이 잘 어울려요! 다음에는 제가 화장해줄게요"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녀는 마찬가지로 선물을 했다. 그 선물을 거부해야 함을 빨리 깨달았던 한 직원은 매번 선물을 거부했고 다 같이 마시자고 원장이 사 오는 커피에는 더 이상 그녀의 커피만은 테이크 아웃되지 않았다. 완강하게 선물에 저항했던 그 직원도 결국은 모두가 받는 크고 작은 선물 중 그녀의 선물만은 항상 빠져있는 것을 보고는 몇 달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나갔다. 


입사 전 48kg 정도가 나가던 몸무게가 일 년이 조금 넘어가던 시점에는 39kg가 되어있었다. 병원을 가보았지만 비타민D 수치가 미달인 것 빼고는 큰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내가 너무 살이 빠졌다며 좀 더 먹어야 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우리는 항상 점심을 함께 먹었고 이상하게도 그녀가 사주는 맛있는 음식들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장트러블을 일으켰다. 일 년이 지나고 그녀가 사준 옷은 신기하게도 내 몸에 완벽하게 맞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바랬던 완벽한 직원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천사 같은 얼굴 뒤에 숨겨진 연약하고 어두운 면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믿은 가장 충실한 직원이 나였던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회사에서 가장 오래 버틴 뒤 퇴직금을 받고 나간 역사적인 직원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가 항상 불쌍하다고 느꼈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선물을 끝까지 받았고 그녀가 가한 과업무를 군말 없이 끝까지 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내고 나가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최대한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내가회사를 나간 이후 남아있던 직원들이 한꺼번에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들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회사에 나간 이후 나는 완벽하게 연락을 차단했다. 그 이후 몇몇 소문으로 회사의 근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전 직원이 사직서를 낸 이후 다행히 근무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되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후 회사를 옮겼다. 살은 바로 금방 차오르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지하철 화장실을 찾아다니게 만든 장트러블은 사라졌다. 안갯속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선물을 전혀 하지 않는 회사 사장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마음의 부담은 없었다. 그 회사를 나간 지 2년 정도가 돼가는 최근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했고 프랑스에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선물 받은 바지는 이제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녀의 선물을 거부하고 그녀에게 정당한 근무시간과 다른 직원들에게 가했던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나는 종종 내가 속에 담아두었던 부당한 것들에 대해 그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나도 사실은 위선적이었던 건 아녔을까.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줌으로 복수하고 싶었던 건 아녔을까. 다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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