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림목장
얼마 전 서랍정리를 하다가 한쪽에 모아 놓은 잡동사니 더미를 발견했다. 거기엔 USB, 케이블, 액자, 사무용품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가끔씩 꺼내어 쓰는 물건들 이외에 오랜 기억을 회상하게 하는 물건도 있고, 심지어 왜 있나 싶은 물건도 있었다.
서랍을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경험이다. 일을 하며 겪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방금 전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조차 어려워 사람들은 각자의 상황과 판단을 통해 해결한다. 득과 실을 엄격하게 따져 나누든지, 함께 품어 융화될 수 있게 하든지,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들여오든지.
공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언뜻 모든 것을 허물고 비운 채 새롭게 채워진 공간을 만들면 그만일지 모르겠지만, 공간을 다루는 많은 사람들은 꽉 채워진 공간을 상상하고,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고민한다.
목장으로 올라가는 산아래 중턱은 부수고 다시 짓는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정돈되지 않은 비포장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푯말만이 서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은빛깔을 띄는 지붕에 시선을 따라 파란 하늘과 푸른 대나무 숲이 드리워져 고요한 숲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곳 성림목장은 본래 50년 전 3만 평 부지 위에 목축업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난립된 십여 채의 건물 중 축사와 함께 딸린 부속동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을 철거하여 주변 환경을 복원하며 세워진 이곳은 1960년대 말 세워진 트러스 지붕 아래 오랜 세월 목장을 운영하면서 목재와 벽돌, 콘크리트 등 여러 건축 재료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에 의해 덧붙여져 사용된 흔적이 중첩되어 있다.
남겨진 축사로 걸음을 옮겨 따라가면 낯선 공간은 감각을 일깨운다. 치열한 삶의 흔적이 묻어 나오는 축사의 내부는 비워져 있다. 어떠한 용도를 가진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창문을 통해 건너편의 산자락이 펼쳐지고 정면을 통과해 비추는 햇빛은 한 줌의 빛줄기처럼 끌어당긴다. 나무의 결이 고스란히 보이는 트러스 구조는 장식적이면서 날 것 그대로의 천장을 드러내 높은 층고아래 한 층 자유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이 땅 위에 지내며 살아온 삶 또한 하나의 역사이고 그 과정이 담긴 공간 역시 고유의 시간과 상황이 담겨 있다. 치열한 삶의 흔적이 묻어 나오거나 오랜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은 그간의 이야기와 함께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남겨진 비어 있는 공간은 의도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방문객들은 카페를 입성하기 전 이곳에서 충만한 자연과 목장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게 한다.
축사 바로 위에 새로 만들어진 공간은 시대와 장소를 반영하여 기획되었다. 건물의 중심이 되는 박공지붕은 날카로우면서 차가운 인상을 펼친다. 축사의 남겨진 빛바랜 녹슨 알루미늄과는 다르게 푸른 알루미늄 패널은 새로운 이미지를 쌓는다. 동시에 곡선으로 휘어져 뻗어나가는 구조는 무한한 확장을 통해 자연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취한다. 또한 남겨진 공간과 새로운 공간을 이어주는 오브제의 슬로프는 매우 경쾌하다. 건물을 떠받는 지붕과 함께 남측 외관의 주된 기하학적 요소다. 갑판에서 내려오듯, 이 오브제 슬로프는 짧은 “건축적 산책로” 역할을 한다. 펼쳐진 숲의 원형은 물론, 방향을 바꾸면 내부의 공간 그리고 건물을 둘러싸는 대나무 숲들도 감상케 한다.
드디어 내부에 들어선다. 2층으로 진입하는 계단과 외부의 지붕의 형태를 뒤집어 올려놓은 듯한 요소 아래 높은 층고는 답답한 마음을 뻥 뚫리게 한다. 가장 큰 특징적인 부분은 내부에 들어서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이다. 방문객들은 이 공간에 앉아 창을 향해 앉아 바깥을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하고, 책을 가지고 와 읽기도 하거나 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 바라본 내부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지붕의 모습이 차갑고 강렬하게 느껴졌다면 내부에서 바라본 지붕의 모습은 부드러운 인상이 더욱 짙어지고 구분 없는 하나의 형태로 보인다. 최소한의 형태와 단출한 마감으로 완성된 건물은 자연스레 시선을 외부의 자연으로 돌린다. 내가 느끼는 것과 공간의 의도가 일치할지 모르지만, 이곳에 오는 방문객들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점차 흐려져 어느새 건축은 사라지고 자연만 남아 사색의 장소로 기억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요하지만 충만한 숲이 원형과 자연을 품은 장소는 도심과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사색의 장소로서 다시 찾아오게끔 한다. 꽃들이 만개한 풍성한 꽃향기가 퍼질 때, 여름비가 내려 물안개와 물자국이 울려 퍼질 때, 가을이 되어 산자락을 감싸는 붉고 노란색이 칠해졌을 때, 눈이 내려 모든 것이 하얗고 차가운 고요함이 머무를 때.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에 성림목장은 유규한 세월 속에서 인간과 함께 존재하며 진정성을 얘기할 것이다.
- 영업시간
매일 11:00 - 18:00
라스트오더 17:30
- 성림목장 주차장 이용
글・사진 | yoonzakka
내용자료 | PDM Part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