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된다는 것
어릴 때 미술을 하거나 음악 관련한 일을 하는 걸 잠깐씩 상상했었다. 누구나 어릴 때 꿈이 자주 바뀌듯 잠깐 그런 걸 줄 알았지만 요즘따라 아쉬움이 남아서 글을 남겨본다.
어릴 때부터 일찍 현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저 밝고, 밝았던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유치원도 ‘화가들 미술학원’이라는 미술 유치원을 다녔었고, 작은 유치원이었지만 너무 즐겁게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다녔던 곳으로 기억난다. 하지만 그렇게 재밌게 다녔던 미술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언뜻 할머니나 부모님이 미술로는 안정적으로 먹고살기가 힘들 거야.라고 하는 이야기들을 무심결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어 유치원을 간다고 했나? 나의 마지막 유치원은 영어 유치원이었지만, 원어민 선생님이 한국말을 잘해서 영어 실력이 는다거나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왜 그때부터 먹고사니즘을 걱정했을까? 우리 집은 엄청 풍요롭진 않아도 크게 돈 걱정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지금이 되어서야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IMF 이전에는 풍요로운 편이었지만 IMF가 지나면서 아빠의 사업도 어려워졌고, 있었던 부동산이나 땅을 다 정리했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엄마가 어떻게든 못 팔게 지켜낸 것이고. 어릴 적 나는 무의식적으로 먹고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인지해서였을까. 얼른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갖게 되었다.
학창 시절도 딱히 예체능에는 크게 재능이 없었다. 붓으로 뭔가를 그리고, 딩동댕 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들이 재밌긴 했지만 누군가가 ‘너는 미술을 해야 해, 음악을 해야 해’ 할 정도의 재능은 없었다. 가끔 뭔갈 만들고, 그리면 친구들이 칭찬을 해주긴 했지만 이걸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은 안 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그렇다. 취미로 수채화를 그리고, 유화를 그릴 기회들이 생겨서 신나서 참가했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채워지지 않던 도화지. 회사에서 급작스럽게 배우게 된 포토샵도 딱히 흥미가 없었다. 그나마 사진 찍는 건 취미로 오래 한 편인데, 상업성 있는 먹고살만한 사진을 찍는 데에는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사진작가님께 사진을 배울 땐 사진은 보정빨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보정이 심한 사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일관된 톤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업을 하려면 후보정은 필수인 걸 아는데도 말이다.
어릴 적 나는 아주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예술을 택했다면 나는 ‘나만의 길, 나만의 작품만 만들 거야’ 고집하면서 아무런 수익이 없는 아티스트가 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 빨리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싶었던 나는 꽤나 현명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문화예술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든 그쪽에 몸을 담그고 싶어 노력 중이다. 머리는 ‘원래 커리어에 맞춰서 안정적이고, 아이를 낳고도 마음 놓고 휴가를 낼 수 있는 회사를 가야겠다.’ 생각하지만 문화예술은 스타트업이나, 작은 회사가 다수이다. 안정적이지 않아도 그저 재밌게 일할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하면서 또 신나게 일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좋아하는 걸 꼭 일로 해야 하는 게 아닌 걸 알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그렇게라도 어릴 적 이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꿈을 어떻게든 해보고 싶나 보다. 어쩌겠나. 난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받아들여야지. 내가 나를 그렇게 받아들여도 세상은 날 그렇게 안 놔둘 수 있으니까. 나는 날 마음껏 응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