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갭이어 #예술활동 #부동산
1. 나의 기준에 맞는 퇴사 & 갭이어
일 년 반 정도 퇴사를 준비하고, 23년 중순 퇴사를 하였다. 퇴사 시점은 두 가지로 정했었는데, 전직장보다 주도적으로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거나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수익을 벌 수 있을 때였다. 후자의 상황이 되어서 퇴사를 하기로 하였고,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다른 회사 면접도 보았는데 최종 합격이 되길래 퇴사를 하였다. 그곳에 갈 생각은 없었고,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의 휴식 시간 겸 갭이어를 갖고자 했다. 결과적으로는 3개월은 잘 놀고, 잘 쉬었다. 밀어놓고, 쌓아놓았던 작업도 하고, 보고 싶었던 것들을 보러 다니면서 원 없이 놀았다. 당연히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들도 많았다. 생각들을 거부하지 않고, 퇴사하기 전에 적어 두었던 걸 보면서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할 것들을 했다. 그렇게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시간을 쓰고 나니 혼자보다는 팀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가고 싶었던 회사 면접도 몇 곳 보고, 입사 일자도 정해진 곳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이 잘 맞지 않아서 안 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잊고 있던 나의 상황이 객관화가 되기 시작했다. 회사에 있을 때 면접을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의 입장이 천지차이라는 걸. 목표했던 기간 내 쉬는 시간을 끝내지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취업 준비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졸업하기 전에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남들 다 하는 자격증 준비나 인적성 시험, 면접 스터디, 영어 스터디 등은 안 해봤다. 내가 원했던 곳들은 딱히 그런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었기에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해나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곳들은 이제 그렇지 않다. 면접을 보기 전에 인성 검사도 해야 하고, 면접에는 갑작스러운 영어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최종 면접이 끝나면 전 직장에 레퍼런스 체크도 잘 받아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이런 과정을 거쳐가는 것임을. 또 다른 방향으로 원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올해 초를 보낼 생각이다.
2. 수익 안 되는 일하기
퇴사를 하기 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히 수익이었고, 재미로 하던 사이드 프로젝트도 수익화하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돈보단 가치를 우선시하고 싶던 나였어서 안 맞는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마음껏 하고 싶었던 작업들을 했다. 누가 읽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원하겠지 라는 기획을 통한 글이 아닌 그냥 쓰고 싶은 글들을 마구 적었다. 그 덕분에 브런치 작가 승인은 두 차례 실패했지만 결국은 작가 등록을 해서 내 생각들을 이리저리 편하게 적는 중이다. 그 와중에 몇 안되던 영화 리뷰 덕분에 좋아하는 예술 영화를 개봉 전에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들도 생기고. 인터뷰 콘텐츠를 기획하며 만나고 싶은 분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강제성이 없기에 안 써지는 글들은 그냥 미뤄두는 문제가 있긴 하다. 그리고 사진집도 하나 내었다. 다수의 작가들과 낸 것이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안 하던 것을 같이 하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일을 하다 보니 집 꾸미는 것도 부지기수로 미뤄왔는데, 좋아하는 포스터를 넣을 액자도 사고, 찍었던 사진으로 인테리어 소품도 만들면서 내 안에 잠들어있던 창조성을 일깨웠다. 피아노도 10년 만에 야심 차게 다시 시작했는데, 중간에 조금 바빠지면서 다시 뒷전이 되었다. 곧 전자피아노라도 사서 뚱땅뚱땅 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더 많을 건데, 퇴사 전 생각했던 활동은 이 정도였다.
3. 개인 코칭
좋은 기회로 개인 브랜딩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였고, 경험이 쌓이니 소규모 강연과 코칭 모임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어디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이런 활동을 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잘하고 싶어서 계속 피드백을 받으면서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나중에는 플랫폼 호스트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교육 담당자로 입사하라는 이야기도 듣고,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게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20대 중반에 건강한 다이어트 코칭을 하기 위해 배운 코칭을 이렇게 또 쓰는구나 신기하기도 했고, 나랑 잘 맞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임은 쉬고 있지만 얼마 전 나와 비슷한 결의 but 공부로는 따라가기 힘든 코치님을 만나면서 다시 코칭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하는 중이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어떤 식으로 진행해 볼지 고민이다.
4. 무궁무진한 영화의 세계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다. 잘 모르기도 했고, 바빠서 영화까지 디깅 해볼 시간은 없기 때문에. 그러다 작년 초 우연히 에무시네마에서 애프터썬을 보고, 에무시네마라는 공간과 독립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애프터썬은 이번에 2023년 올 해의 영화로 뽑는 곳들이 꽤나 보일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났고, 아름다운 풍경에 여행하는 느낌을 들게 하면서 나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이후로 에무시네마의 큐레이션 영화들을 눈여겨보다가 퇴사를 하고 보고자 했던 리스트를 쫙 봤다. 사진과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어떻게든 관련 일을 해보고 싶어서 스웨덴 영화제 앰버서더 활동을 했고, 그 활동이 이어져서 영화 리뷰를 써주는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게 되었다. 나보다 영화를 좋아하고, 잘 아는 친구들과의 인연이 생겨 의미 있었고, 다시 대학생이 된 느낌이 들어서 설레기도 했던 경험.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문화 살롱 같은 걸 열어보고 싶기도 한데,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좋은 인연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5. 집주인 체험
작은 상가 주택을 운영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일찍부터 막연하기보단 현실적인 건물주를 꿈꿨다. 크진 않아도 내 가게를 차릴 수 있고,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곳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 뭔가를 해보기엔 어려운 세계였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부터 투자 공부를 해왔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적금과 펀드, P2P와 주식, 부동산, 경매까지 힘들게 번 돈을 잃기에는 겁이 나서 소액으로 투자를 했다. 재미를 보기도 하고, 잃기도 꽤 잃어봤다. 지금도 주식 어플을 켜면 파란색이 가득한데 나에게 꼭 필요하진 않은 돈들로 운영해서 언젠간 거두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조금씩 투자 감각을 익히면서 재작년에 작은 오피스텔도 계약을 했는데, 이게 좀 속을 썩인다. 자세한 걸 쓰자면 이 글을 못 끝낼 것 같고, 결론적으로는 내가 기대했던 부동산 수익의 맛은 보지 못했다. 내가 쓸 생각도 있었고, 당시 임차인도 구했던 터라 크게 걱정이 없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모든 게 내 계획대로 되진 않지 않는가. 24년 초 가장 신경 쓰이는 이슈이지만 늘 그렀다시피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건물주 아무나 하는 거 아니고, 수익 남기기? 생각보다 힘들다. 우리 엄마랑 다른 임대인들은 원래 그렇게 바로바로 되는 게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이건 마음 잡기가 어렵네.
계획형이라 그럴까. 재작년, 작년부터 계획했던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가고 있다. 생각대로 된 것도 안 된 것도 있지만 많은 풍파들을 겪어서일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방법들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23년을 정리하다 보니 위에 적은 것에 3배를 적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아무 생각 없고, 무기력하다가도 내가 해온 게 이렇게나 많구나. 앞으로 할 게 이렇게나 많구나 하면서 다시 몸과 마음을 꼿꼿이 잡게 된다. 2024년이라니. 다시 또 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