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행복은 연결되어있다.
때는 한창 코시국, 취업 준비생 때의 일이다. 당시 공기업을 준비하던 나는 필기 시험을 합격하고 일주일 남은 최종 면접을 준비해야했다. 면접 경쟁률은 5대 1, 공기업치고는 높은 경쟁률이었다. 하필 면접장에는 5명씩 들어가니 한 타임에서 많아야 2명이 붙을 것이다.
왜 4명의 지원자 대신 나를 뽑아야할까, 무엇으로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일단 회사가 사회기반시설(SOC)을 관리하는만큼 회사에 방문하는 건 필수이고, 방문한 김에 뭔가 더 해서 자기소개 때 녹이면 좋지 않을까. 이 회사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게 주 업무인 만큼 공사의 고객분들과 소통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은행 등 사기업은 그런 열정 있는 인재를 원하는데 공기업 지원자 중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략 구역을 나눠서 고객들을 찾아가 다짜고짜 인터뷰 요청을 했다. 현재 불편한 점은 없는지, 공사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 등 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나는 반나절동안 13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9명에게 거절 당했고 4명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거절의 방법도 다양했다. 그런거 없다고 그냥 무시하거나, 도움을 주는 척 다가와서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공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그냥 떠나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예견했고 기꺼이 감수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전투적인 마음으로 계속 임했다. 오히려 응해준 네 분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공사가 민원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고객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들었던 얘기를 종합해서 1분 자기소개를 만들었다. 강점은 적극적인 소통능력으로, 근거는 인터뷰 내용으로,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몇가지 제시했고, 4명 5명 그 이상으로 소통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로 마무리했다.
당시 면접 시각은 오전 10시 반이었는데 입에 붙도록 연습하다가 결국 밤을 새고 말았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끝까지 준비했다. 현장의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까지 자원해서 얘기하고 나오니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확실히 느꼈다. 적어도 취준생에게 고통과 행복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통이 클수록 행복도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정말 잠깐만 생각해보자. 고작 반나절 투자해서 욕을 먹거나 무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서라도 현실과 가장 가까운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대가로 30년 정도의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에 다닐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순간만큼은 나서는 게 맞지 않을까. 당시에 난 반나절 고생해서 30년을 보장 받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었다.
면접 때뿐이었을까, 나는 회사 필기 시험 보러 가는 당일까지도 밤새서 퀭한 얼굴로 시험장에 입실하곤 했다. 시험장에서 후회하느니 공부 엄청 하고 마음 편한게 훨 낫다고 생각했다. 공부할 때 울더라도 시험장 가서 웃는 그 행복한 순간을 위해 버텼다.
준비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지금 행복하면 나중에 고통스러울거고, 지금 고통스러우면 나중에 행복할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나중에는 결과만 남고 힘든 기억은 다 흐려지기 때문이다.
3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그 때의 나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 때 고통을 겪지 않았더라면 행복은 없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