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생사를 가른 시간 0.7초

– 나는 떨어졌고,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by 정육시인 재현

떨어졌다.

부서졌다.

스물일곱이었다.


5월 말, 장마가 오기 전 이글거리는 한낮.

나는 축사 지붕 위에 있었다.


하루 일정 중 마지막 작업지.

철판 위에서 페인트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강판 온도 70℃에 육박했고

신발 밑창은 녹아 철판에 달라붙었다.

땀은 선크림과 함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눈이 따가웠고,

시야가 흐려갔다.


그 순간,

바닥이 울렸고

나는 썬라이트 위를 밟았다.


빠직.


썬라이트가 깨지며

무게중심이 무너졌다.


기억의 파편들이 밀려들었다.


쿵.


8미터 아래,

나는 축사 바닥에 처박혔다.


그 0.7초 남짓의 체공 시간.

그 짧은 순간이

내 인생 전체를 꿰뚫었다.


‘아, 나 떨어진다.’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땅에 부딪혔다.


정신을 차렸을 때,

코앞엔 젖소의 얼굴이 있었다.


호스가 터지며

페인트가 사방으로 튀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초동조치를 시작했다.


“형, 형! 괜찮아요?”

지붕 위에서 직원이 외쳤다.


“어… 괜찮아.

기계 꺼.

사장님 불러와.”


그 말을 끝낸 직후였다.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우방 가스에 숨이 막히고

머리는 텅 비었다.


왼 손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팔 하나뿐이었다.


사장님이 놀라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나는 별거 아니란 듯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조치하고 가겠습니다.”


말하는 내 입안에서,

말하지 못한 것들이 얽혀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콘크리트 구시통과 내 머리 사이,

고작 10cm 남짓.


조금만 더 빗나갔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손목만 깔끔하게 부러졌네요.

기브스 6주면 붙을 겁니다.”


나는 웃지 못하고,

“네, 감사합니다”만 반복했다.


기브스를 한 채로,

나는 그저 멍하니 내 팔을 바라봤다.


'부모님께 뭐라 말씀드리지.'


그 순간에도,

나는 추락한 내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 몇 달 전,

나는 하루 평균 면사무소 열다섯 곳을 돌며

영업을 뛰고 있었다.


도 단위 자체사업의 첫해.

축산과와 담당자들을 찾아다녔다.


“안녕하세요, ○○○ 시공업체입니다.”


면사무소 앞.

시군청 앞.

몇 시간씩 차 안에서,

혼자 예행연습을 했다.


두려웠다.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명함 한 장 건네는 것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막상 말을 걸면 대부분은 흘려들었지만,

가끔 눈을 맞춰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나에겐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귀가 후에는 메일로 자료를 보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 한 문장조차 빠뜨리지 않았다.


가끔 전화가 오면,

그 하나만으로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도시락을 차 안에서 먹고,

도내 대부분 시군청과 면사무소를 발로 뛰었다.


도착하면,

명함을 건넸다.

자료, 노트북, 홍보 영상.

쓸 수 있는 건 전부 꺼냈다.


나에겐 인맥도 없었고,

기반도 없었고,

시골 어르신들은 대부분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으셨다.


할 수 있는 건 발품.

명함과 전단지.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버텼다.


첫해.

예정보다 많은 신청이 들어왔다.


나는 물량의 1/3을 본사에 넘기고

사무 업무를 떼냈다.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 직접 나가야

이익이 남았다.


욕심내지 않았다.

감당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타협이었다.


그런데,

전체 작업량의 2/5만 끝낸 상태에서


나는 그렇게,

떨어졌다.


기브스를 한 채,

귀가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오늘, 진짜 죽을 수도 있었겠다.’

‘살았으면 됐지.’

‘액땜한 거야.’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죽음이 먼저였을까.

돈 계산이 먼저였을까.


몸과 정신은

각자 다른 충격 속에 있었다.


그 이후,


‘다행이다’라는 말은,

생과 사의 경계를 넘은 자만이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그만둬라. 꼭 해야 하겠느냐” 고 하셨다.


지인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라며 걱정해 주었고


주변 어른들은

“젊으니까 이 정도지.”

“애쓴다, 고생하네.”

짧게 위로해 주셨다.


나는 그들의 대답에 늘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액땜했어요.”


나는 성인이었고,

책임자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괜찮지 않았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며,

나는 서서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현장에는 나갈 수 없었지만,

사무 업무는 쌓여 있었다.


통증은 약으로 버텼다.

공문, 견적서, 계약서, 체크리스트, 블로그 포스팅.

오른손가락은 멈추지 못했다.


출장도 갔다.

기브스를 한 채.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멈췄다.


서류 제출 날이면

보고서를 검토했고,

작업이 끝나면

직접 주무관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홍보를 위해

블로그와 광고도 돌렸다.


나는,

기브스를 한 채,

일터를 지켰다.


그해 여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기브스 안쪽의 땀 냄새.


젓가락으로 긁다 상처를 냈다.

따끔한 통증이 퍼졌다.


하지만,

팔보다 더 아픈 건 기억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날의 주마등을 억지로 떠올렸다.


체공 시간 0.7초.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은 덜하지만,

가끔은 밤마다 떨어지는 꿈을 꾼다.


절벽.

고층.

지붕.

어딘가 계속 추락하는 꿈.


특히 그해 여름.

비명을 지르며 깨는 날이 많았다.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식은땀에 젖은 채,

눈을 떴다.


하지만

아침이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깁스를 푼 뒤,

팔과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들 때마다

팔에 힘이 풀렸다.


놀란 근육들은

지속적인 통증을 일으켰다.


그 통증은,

그날의 기억과 함께 되살아났다.


그렇게

내 첫해 여름은

늦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일어서지 못한 채로.


– 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