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어진 몸, 버텨낸 여름
기브스를 풀었다.
뼈는 붙었지만,
나는 붙지 않았다.
몸은 아물었지만,
마음은 그 사고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다시 삶 위에 선다는 건,
부러진 뼈를 잇는 게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붙드는 일이었다.
마음에도 기브스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7월과 8월, 드론 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하늘을 마주해야 했다.
협회 2년 차.
입찰로 따낸 물량.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
차수별 작업.
시즌 일.
하루만 빠져도, 교체 대상이었다.
팔은 겨우 붙었고,
몸은 삐걱거렸고,
마음은 부서져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새벽 4시, 기상.
5시, 집합.
농약 배정 후 현장출발.
6시.
가시거리 확보.
드론은 떠올랐고,
하늘을 붙잡았다.
들판을 가르고,
골짜기를 뛰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두 다리가 드론보다 빨랐다.
90세 넘은 할머니가 드론을 바라보셨다.
"저 안에 사람이 타 있는가?"
나는 웃었다.
"네, 할머님. 사람이 타 있어요."
할머니는 허허 웃으셨다.
"참말로 요상한 세상이 되어부렀네."
그 한마디.
그 짧은 웃음 하나가,
고단한 몸을 버티게 했다.
어느 날은
부사수가 무릎을 움켜쥔 채 말없이 앉아 있었고,
나는 말없이 얼음물을 건넸다.
그날 오간 손길은,
가끔 떠오른다.
오전 작업은 보통 10시에서 11시.
점심 먹고, 잠시 눈 붙이고,
오후 4시 작업 재게, 해질 무렵까지.
7시 반, 약 반납.
저녁.
귀가하면 보통 9시.
그리고,
다시, 새벽 4시.
하루가 끝나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400L 물을 받아놓고,
농약에 찌든 드론을 닦았다.
2시간 눈 붙인 날도 있었고,
밤새 드론을 고쳐 새벽을 맞은 날도 있었다.
밤마다 깼다.
몸은 아팠고,
꿈에선 계속 추락했다.
농약 냄새가 목구멍을 긁었다.
숨 쉴 때마다 들리는 쇳소리.
사레들린 기침.
먼저 깨어나는 건
내가 아니라, 폐였다.
이것마저 익숙해지며
건강은 어느새 곪아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젊어서 그랬을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랬을까.
목표 금액.
깨진 자존심.
멈출 수 없는 강박.
이것들도, 욕심이었을까.
버텼던 여름.
살아남아야 했던 여름.
초원 위, 앞만 보고 달리는 무소처럼
그런 스물일곱이었다.
스물여섯 1월.
나는 드론 자격증을 땄다.
드론을 시작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가업은 우사와 소규모 논농사였다.
그즈음, 방제는 헬기에서 드론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가업과 드론을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냐.”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내가 부족해 보여서 그러셨을까.
아니면, 내 삶이 덜 힘들길 바라셨던 걸까.
그렇게 아버지는
조립 드론 두 대를 마련해 주셨고,
나는 벌어서 갚겠다고 약속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아버지와 직접 착륙장을 만들었다.
일일이 치수재고,
C형강을 자르며,
하나하나 용접했다.
조공(데모도)도 제대로 못하냐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잔소리한다는 나의 반항은
시골 부자지간 만물 공통이었다.
심하게 다툰 날에는,
서로 며칠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착륙장을 완성하고 처음 일을 나갔을 땐,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다.
어른들은
"그런 아버지가 계셔 부럽다."
"잘해드려라."
라고 말씀하셨고,
동료들은
본인들의 지출과 비교하며
내심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스물여섯의 나는,
도시의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어두운 시골길을 걷기 시작했다.
7월 초,
첫 해 드론방제.
이때부터 내 생일은
항상 방제날이었고,
나에게 생일은 별 의미가 없어졌다.
드론은 자주 추락했다.
조작 미숙이었다.
전신주에 걸려 박살 나는 건 흔했고,
방천에 때려박거나,
논에 빠지기도 했다.
운전면허 갓 딴 사람이
실전에서 평행주차 하는 것과 같았다.
논에 빠진 기체를 꺼내려
부사수와 함께 허벅지까지 빠지는 논을 헤맸다.
골짜기의 와류에 휘말려
나무랑 드론이 싸운 날도 있었다.
그렇게,
첫해 드론 일은 끝났다.
드론은 수리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부서진 채였다.
아버지께 빚진 돈을 생각하며,
나는 초가을,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겐 가진 게 드론뿐이었고,
또다시,
‘어떤 것’을 찾아야 했다.
당시는 조립기체가 대부분이었고,
부품 자체도 완벽하지 않았다.
지자기 교란, 배터리 불량, 센서 오작동 등
추락은 일상이었다.
추락한 드론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수습하는 건 사람의 몫이었다.
현장에서 고치고,
그래도 안 되면 예비 기체로 갈아탔다.
둘 다 고장 나면,
센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추락은 일상이었고,
버티는 것도 기술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문제는
센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예비 부품비와 공임비는
늘 큰 부담이었다.
독립적인 아들이 되고 싶은 무게와,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압박에,
두 시간 반 거리 드론 정비 교육을 다녔다.
귀찮을 정도로 강사를 붙잡고 물었다.
모든 강의를 녹화했다.
내 손으로
하나를 완성하고 싶었다.
해외직구.
부품.
조립.
납땜.
세팅.
그리고 첫 비행.
동기 두 분과
수없이 실패한 끝에,
드론은 떴다.
회전음.
프로펠러 소리.
기체가 뜨는 소리.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아, 내가 나를 띄웠다."
주체적인 삶이란,
그런 거였다.
기수가 전환될 때,
조종기에 손을 얹어 방향을 바꿀 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조종했다.
함께했던 단톡방은 아직 남아 있다.
삶은 멀어졌지만,
그날의 온도는 가끔 나를 지탱해 준다.
직접 만든 드론은
원가 그대로 후배에게 넘겼다.
상업적 성공은 아니었지만,
나는 사람을 얻었고,
경험을 얻었고,
내 자신을 조종했다.
–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