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나는, 어른이 되기 전부터 어른이었다

–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집

by 정육시인 재현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


나의 첫 기억은 피자가게.


아버지는 항상 배달을 다니셨고,

어머니는 동생을 등에 업고 매일 피자를 만드셨다.


나와 동생은 두 살 터울.

그 무렵 나는, 시골 조부모님 댁에 맡겨졌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할아버지의 가르침.


어른이 수저 들기 전엔 먼저 들지 말 것.

수저를 내려놓기 전엔, 먼저 놓지 말 것.

밥그릇에 수저가 닿는 소리가 안 나게 할 것.

편식하지 말 것.


문턱에 앉으면 복 달아난다는 상할머니.

창호지에 구멍을 내면 꾸중하시던 할아버지.

그저 음식 하나라도 더 담아주던 할머니.


좌변기 대신 요강과 푸세식 화장실이 있던 시절.


시골마을에서는 귀한 아이.


밖으로는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안으로는 올바른 아이로 자라라는 교육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지냈었다.


"형이 잘해야 동생도 잘해"

"동생한테 양보해"

"네가 형이잖아"

"아버지가 안 계시면 네가 가장이야"


이런 말들은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동생과 싸우지도 않았다.

떼를 쓰거나, 욕심을 부린 기억도 없다.


아버지는 참 무서우신 분이었다.


다섯 살 무렵.

배달하던 삼촌이 나를 장난 삼아 심하게 놀렸다.

속이 상해 울먹이던 찰나,

주방에서 아버지가 나오셨다.


“왜 여기서 놀고 있냐.”


나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발에 차였고

이유도 모른 채

슬리퍼로 맞았다.


아버지는 왜 화를 내셨을까.

자식을 놀린 삼촌이 미웠던 걸까,

하필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미웠던 걸까.

아니면 본인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그 화를 나에게 밖에 풀 수 없었을까.


그땐 그저, 내가 잘못한 줄 알았다.


그날부터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나는 울음을 안으로 삼키며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밝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말도 없으시고 그저 무섭기만 한 아버지께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질문을 해 귀찮게 했고,

거의 웃지 않으시기에 팔자에도 없는 재롱도 피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날까 봐.

또 맞을까 봐.


커가는 동안

가끔 꿈을 꾸며,

그 장면이 생각나며,

그날을 원망하며.


같이 밥을 먹을 때도,

목구멍까지 물음이 차올랐지만

말은 트이지 못했다.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닐까.

내 기억이 틀린 건 아닐까.

내가 맞을 짓을 한 거 아닐까.

사과받지 못하는 거 아닐까.


마음속으로

가상의 질문과 대답에 싸움하며

쌓아 지내온 지 12년째 되는 날.


가족여행 가는 길에

큰 용기를 냈다.


더 이상

같은 꿈을 꾸고 싶지 않았고

아프고 싶지 않았다.


이 과업을 해결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나를 다시는 못 찾을 것 같았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최대한 무심하게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5살 때, 그날 제가 왜 맞았던 거예요?"


어머니는 기억하고 싶지 않으셨는지,

"그날 생각만 하면 너무 속상하다"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몇 분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

기억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삼촌한테 너무 화가 났지만,

말하면 터질 것 같았던 아버지는

그날, 삼촌이 아닌 나를 택하셨다고 한다.


그걸 나는, 열두 해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엔,

삶이 너무 벅찼던 어린 아버지셨던 거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 보다 ‘그럴 여유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그만큼,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던 아버지였다.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만,

다섯 살의 나는 말없이 여전히 울고 있다.


어머니는 가정적이셨지만 엄하셨다.


허약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항상 피자를 만드셨고,

주무시다가도 전화가 오면

피자 반죽을 하러 주방으로 나가셨다.


내 유년기의 어머니는,

늘 바쁘게 반죽을 하고 계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입학식이 끝난 오후.

교실 종례 시간, 부모님들이 뒤편에 앉아 계셨다.

옆자리 친구가 내게 천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내일 줄게.”


나는 돈을 건넸고,

그 장면을 어머니가 보셨다.


그렇게 집에와서 종아리를 걷었다.


'돈의 무게는 무겁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


어머니는 회초리로 가르치셨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어린 나는 그저 매가 아팠지만,

매를 들었던 어머니도, 분명 아프셨을 것이다.


그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엔

살아내는 법이 중요하셨던 것 같다.


또 어느 날은 학교에서 체벌을 당해

집에 와서 어머니께 고자질했던 날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선생과 부모는 같은 거라며

"이유가 있으니 체벌을 하셨겠지"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나는 또다시 종아리를 걷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엄함도, 그 회초리도—

사랑의 방식 중 하나였다는 걸 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생활을 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전부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1학년 운동회 때.

계주 주자로 트랙을 달리다,

관객석에 있던 부모님께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저학년 백일장에서는

“군고구마”라는 시로 상을 받았고,

4학년 즈음엔 “수선화”라는 글쓰기로 또 상을 받았다.


공부도 나름 중상위권.


겉으로 보기엔,

별 탈 없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괜찮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순수했고,

또래보다 마음이 많이 여렸다.


그래서였을까.


태권도를 다섯 살부터 배웠지만

학급에 누군가와 다툼이 있을 때,

나는 누군가를 때릴 수 없었다.


그저 맞고 있었다.


그렇게

상처를 삼키는 아이가 되어갔다.


상처 난 얼굴.

새겨진 흉터.


집에 돌아가는 길은

바쁜 부모님이 신경 쓰였다.


그날은,

놀이터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있다가

집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고향에서의 초등학교 생활은 꽤 양호했다.


대부분 다들 사이가 좋았고,

나도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고학년쯤.


그 당시 지방의 학교는 선생님들이 정말 엄했다.

책상 위에 무릎을 꿇는 건 기본이었고,

남학생들은 의자를 들고 서 있기도 했다.


발바닥을 맞는 날도,

손바닥을 내미는 날도 많았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던 선생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아이만의 잘못은 거의 없었다.

주로 ‘공동체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사 전,

고향 초등학교에서

‘왕따’라는 단어는

내 기억 속에 없었다.


학급 안에서는

다들 같은 친구였다.


그즈음 기억나는 건,

학교 행사로 캠프파이어를 했던 날이다.


그날은 아버지와 함께 캠프파이어를 보러 갔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으셨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나는 집 앞 마트에 있던 ‘동물철권’ 오락기가 생각났고

아버지께 오락하러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2천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셨다.


“놀다 들어가라.”


그렇게 허락된 일탈.


아버지도 캠프파이어가 재미없으셨음이 분명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오락을 좋아했다.

소질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건 나에게 도피처였다.


외부와 내부에서 터지는 모든 압력을

버튼 몇 번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던 세계.


오락을 할 때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유일하게, 편안했다.


6학년 때,

사우나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게임방에 간 적도 있다.


어머니는 게임방까지 나를 찾아오셨다.


그때 시작된 ‘게임’은

청소년기 내내 어머니를 괴롭히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6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시골 조부모님 댁 근처에 축사가 완공되었다.


아버지는 그곳의 컨테이너에 들어가셨고,


나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지방에서 도시로 이사를 갔다.


지방 소도시의 아이는

도시로의 이사에 설렜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다는 사실이

조금은 좋았다.


그때만 해도,

왠지 기분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지금 꺼낼 수 있는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