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加里王山
용인에서 약 3시간정도 열심히 달려 도착한 강원도의 가리왕산.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북평면과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옛날 맥국(貊國)의 가리왕(加里王)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쌓고 머물렀으므로 가리왕산이라 부른다고 하며, 북쪽 골짜기에 그 대궐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리왕산(加里王山))]
이 날은 비도 내릴락 말락 하는 흐린 날이었고,
그래서 우린 더더욱 서둘러 등정 채비를 했다.
컵라면, 끓인 물을 담은 보온병, 초콜렛 프로틴 바 몇 개, 손수건, 휴대용 충전기 등 . . .
모두 한 배낭 안에 넣고 아침 8시반 경 우리는 서둘러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시작한 가리왕산 등반.
한 1시간정도는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했다.
가리왕산의 매력은, 산행을 멈추게 되고 등산객을 미소짓게 만드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과 폭포에서 불어오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이다. 겉잡을 수 없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계곡폭포 물에서 불어오는 물바람을 맞으며 우린, 이런게 자연 에어컨이라고 말했다. 정말 시원한 에어컨 바람처럼 인공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찬 온도의 물과 바람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돗자리 펴고 쉬면서 초코바도 먹고, 물도 한모금씩 마셔주고,
진정한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우리 가족보다 훨씬 더 늦게 출발하신 분들께서 하나 둘씩 나타나시며 우리를 제쳐가실 때,
내 속에선 이미 오기가 들끓고 있었다.
최근에 받고있었던 PT시간에 열심히 숨 참아가며 운동하고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안되겠다. 내가 쉬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올라 가 봐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험하고도 험한 돌길, 미끄덩하고 축축한 이끼, 앞도 보이지 않게 시야를 가로막는 울창한 수풀과
나무들로만 이루어진 가리왕산에게 나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길이 많이 험했다. 이걸 어떻게 올라가라는거지 싶은 가파른 길을 지나고 나면, 바로 이어지는 풀숲이 무성한 길같지도 않은 길, 그 뒤엔 인간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숲이 펼쳐졌다. 숨이 차면서도 간간히 난생 처음보는 숲의 곤충들도 보고,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눈치였던 귀여운 다람쥐들도 보았다. 그 길로 약 1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갔던 것 같다. (완벽히 등정하는대에는 약 4시간 정도가 조금 넘게 소요되었다.)
나의 허리선 살짝 위까지밖에 오지 않는 수풀들이 내 발길을 느려지게 하는 길을 걸으며 직감했다. 곧 정상이구나! 키가 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참 신기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곰탕'같이 뿌얬던 하늘에 내 머리가 맞닿아 있는 듯 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습하디 습한 안개를 마시며 그렇게 나는 가리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엔 네 다섯명의 등산객들이 가리왕산 정상비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정상비 옆엔 정교하게 쌓아 올려진 큰 돌무더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상에선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래의 울창한 숲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뿌연 산안개 사이로 날아가 가리왕산의 다른 봉우리들도 가보고 싶었다. 비오듯 나던 땀을 한번에 날려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평평한 돌 하나를 찾아서 가져와 그 위에 앉았다.
눈을 감고 온전히 바람을 느끼고 있었을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땅에도 닿지 않았지만 하늘에도 닿지 않은 그 곳에서 느껴지는 신비감이 나를 감쌌다. 그냥 그 곳에서 영원히 있고 싶었다. 가리왕상 등정기의 최고의 순간, 클라이막스, 하이라이트였다고 가히 말할 수 있겠다.
한 40분 정도 기다리니, 엄마와 동생이 정상에 도착했고, 2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아빠가 도착하셨다...
그때쯤 난 정상의 찬 바람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우린 다같이 꼬들꼬들한 컵라면을 해치우고,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서서히 걷히는 안개를 보며 한 번 더 경이로운 자연경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봉우리들이 눈에 보였다. 안개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있을 때의 신비로움, 그리고 안개가 전부 걷히고 났을 때의 펼쳐진 장관 둘 다 최고였다 ! 정상에 오래 앉아있었던 보람을 그때 느꼈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 가파른 길을 언제 다 내려가지...' 였다. 사실 막막했다.
어느 세월에 약 5시간동안 올라온 돌길을 내려가지 싶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천천히 조심히 내려가보자! 라며 하산을 시작했다. 엄마께서 생각보다 속도가 붙으셔서 빠르게 먼저 내려가기 시작하셨다.
나는 살짝씩 욱신거리는 발의 통증을 참아가며 천천히, 한발자국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다른 3-4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결국 익숙한 가리왕산의 입구를 보고야 말았다.
돌돌 굴러가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한 두시간 놀고 난 후, 인라인 스케이트를 벗고서 신은 운동화의 평평한 바닥이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울퉁불퉁, 뾰족뾰족, 가파른 경사의 가리왕산길에서 벗어나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밟았을 때의 그 어색한 느낌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벗고 난 후에 느꼈던 후련함과 행복함, 그리고 아쉬움과도 비슷했다.
맑은 공기를 뿜어내며 살아 숨쉬고 있었던 가리왕산에게,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길을 내어주어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도 강원도로 여행할 일이 생기신다면 가리왕산을 등반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발바닥이 두껍고 튼튼한 등산화 한 켤레 가져가시길 당부 드리고 싶다. 가리왕산의 매력포인트들 - 얼음계곡, 폭포와 시원한 정상에서의 바람, 그리고 자연 지압되는 울퉁불퉁한 돌길까지 - 맘껏 즐기고 오시길 바라며! 이만 여기에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Yoorae Kim 김유래
미국에서 8년째 유학중인 스물 넷.
나만이 내 삶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생생한 감정과 경험을 기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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