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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Yoorang Oct 02. 2020

소통

가족과의 소통


내 모국어는 한국어와 한글이지만 한글이 한국어보다 더 편한 이유가 글로 소통하는 게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정말 두 눈 크게 떠도 상대방의 입모양이 익숙하지 않거나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말 입모양을 읽으려고 해도 힘들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내 목소리와 발음이 익숙치 않으니 평생 내 목소리를 들은 가족 외엔 바로 알아듣기 힘들다.


20대 중반 때 한국수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한국수어 존재를 인식한  20 초반이었지만 abc 알아두는 거처럼 ㄱㄴㄷ 지화 정도만 알아두는 정도) 한국어 사용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한글은 지금도 편안하게 느끼는 언어다. 한국수어를 배운 후에도 나는 가족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땐 한국어였고, 엄마께서 한국수어를 배우고 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어가 1순위였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건 당연히 한글.


남편하고 결혼하면서 미국 부모님이 생겼다. 한국 부모님과 미국 부모님.

(*자연스레 미국 부모님께도 엄마아빠라고 부르는 중이라 심리적으로 부모님, 시부모님 단어보단 한국 부모님, 미국 부모님 단어가 더 편해서 이렇게 썼다.)

미국 부모님과는 한글로 소통을 한다. 그 말인즉 필담.

결혼하기 전에 미국 부모님 뵈었을 때 탁자 위에 종이뭉치와 펜들이 놓여져 있는 모습이나 같이 외출할 때 가방 속에 작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남편은 가족들과 필담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굳이 설명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남편과 미국 부모님께선 평생 영어로 필담 주고 받았다. 한국어, 한글, 한국수어를 모르는 남편은 영어와 미국수어를 먼저 배웠기 때문에 뒤늦게 영어를 배우신 부모님께선 남편과 대화를 나눌 땐 영어로 필담을 나누신다. 미국 엄마께선 간단한 abc 지화 정도 아셔서 미국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렵다.


나와 미국 부모님은 서로 입모양, 목소리, 발음 등 모든 게 익숙치 않은 거도 있지만 대화에 오해가 없기 위해 한글로 필담을 나눈다. 두 분 모두 별로 불편해하지 않으신다. 남편과 평생 필담으로 이야기 나누는 거에 익숙해져선지. 넷이서 다 같이 탁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땐 흰 종이는 한글로 빼곡 차 있지만 공간 속의 언어는 미국수어다. 모든 언어가 각 언어만의 뉘앙스, 단어가 있는 듯이 가끔 각 언어 속의 미묘한 간격을 메꾸는 건 양쪽의 언어를 알아야 가능한 일인 거 같다. (늘 생각하지만 통역사, 번역가 대단하다. A 언어를 B 언어로 옮기는 건 맞든 틀리든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 미국수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서 가끔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 싶은 순간도 있지만 공간에 슥슥 그림 그리다 보면 남편이 알아채곤 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어떤 영상을 띄우는지 알려면 그 또한 서로의 삶 속으로 스며 들어야 가능한 거 같다. 아직도 우린 진행형.

물론 미국 부모님과 남편이 직접 나눌 이야기가 있다 싶으면 종이 위의 언어는 한글에서 영어로 옮겨지는데 그땐 가만히 있는다. 내가 대답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나 또한 같이 이야기 나누지만.


남편 누나네도 최근 만났는데(코로나 때문에 계속 만날 날을 잡지 못 하다가) 누나는 미국수어 단어 몇 개 정도 알고 누나 남편 분도 abc 지화 정도 알고 있었다. 조카는 미국수어 잘 모르지만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따라하는 정도.  

다 모인 자리에서 abc 미국지화가 계속 오갔다. 사실 대화 절반이 미국수어반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수어 지화로 어떤 단어를 미국수어로 어떻게 하냐는 질문 뒤에 대화가 오가는 식. 중간에 몇 번 폰 메모장 통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천천히 오가는 대화였지만 어느 누가 소외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반대로 남편이 우리 가족하고 대화를 나눌 땐 엄마께서 영어 가능하셔서(원래 영어 잘 하셨는데 안 쓴 지 30여년 넘어서 기억이 잘 안 나신다고 하심)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든 필담이든 대화 나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한국수어를 알면 그래도 수어로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그러신다.

그래도 수어의 기본이 비언어적인 표현이나 공간적인 개념은 비슷해서 남편은 엄마께서 하는 이야기는 대충 알아맞춘다.

내 동생은 영어를 아주 잘 해서 남편과 톡 주고 받는데엔 별어려움이 없다. 아빠 닮아선지 과묵하기도 해서 아빠나 동생이나 둘 다 말을 아끼는 편이라 거의 엄마께서 가족 간의 대화 중심을 잡고 있는 거 같다.


많은 부부가 결혼하고 나면 상대방 가족과 어떻게 지낼 지 고민하겠지만 농부부가 더 그럴 거 같다. 대부분의 농부부의 부모님은 청인이기에 각 가족간의 소통방식은 다를 거니 거기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점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나는 결혼해서 미국에 왔지만 다행히도 미국 가족들도 좋으신 분들이고 딸처럼 예뻐해주셔서 한국 부모님, 미국 부모님 모두에게 자주 연락하고 대화 나누곤 한다. 모두 다 다른 점을 본인한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점은 인정하고 그걸 어떻게 서로 맞춰야할 지 생각하면서 소통을 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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