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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Dec 12. 2024

편지 쓰기 좋은 시간

새벽 5신데 눈이 떠졌다.

3시간 전쯤 낄낄대다 웃음을 머금은 채로 잠이 들었으니 근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증거로 눈이 떠진 후 몸이 절로 가볍게 움직였다.

결혼 준비의 설렘 때문인 듯한데

그렇다고 하기엔 2년 뒤의 결혼식 때문에 잠을 설쳤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들렀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우림이를 잠깐 괴롭히고

시간을 확인한 후 거실로 나왔다.

오랜만의 새벽 시간이 고향 친구처럼 낯설지만 여전했다.

결혼을 나답게 잘 준비하고 싶었다. 결혼의 기원과 의미부터 시작한 생각은 돛을 달고 저 먼바다로 끝도 없이 뻗쳐 나갔다. 그러다 엄마가 떠올랐다.

이 과정을 30년 전에 겪었을, 그리고 살다 보니 이 순간으로 흘러왔을 그녀.

나의 별나고 장황한 결혼식 계획에 맞장구를 쳐주는 나의 엄마.

새벽 공기 탓인지 잠에서 깰수록 꿈같은 기분에 몇 년 만에 엄마한테 펜으로 글자를 적었다.

편지를 봉투에 넣고 나니 신기할 만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결혼식이 어떻게 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했다. 그다음엔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평소엔 그렇게 귀찮던 샤워도 하고 싶어져 샤워를 하고 나와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줬다.

그런 다음 빨래를 널었다.

왜인지 미뤄뒀던 일들이 귀찮지 않았다.

오늘은 낮잠을 늘어지게 자도, 집에서 빈둥거리다 늦은 시간 외출해도 스스로에게 야박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매일 새로운 기적들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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