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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pr 17. 2023

<더 나대겠다는 다짐>

이미상 작가의 [이중 작가 초롱]을 읽고

 ’이런 걸 해도 괜찮을까?‘ 그림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한 번씩 부딪히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이런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림책으로는 인기가 없을 것 같은데 이거 돈 벌 수 있겠나, 사람들이 좋아할까?‘ 라는 생각이다.

지금 쓰면서도 어이가 없는 건 이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는 거다. 그런데 어쩌자고 사람들 마음을 지레짐작하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했을까? 

 ’어떤 책을 만들까’하는 고민과 그것을 눈앞에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생각이 많고 자주 머뭇거린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지. 그래도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인데 이렇게까지 어두운 미래를 보여줘도 되는 건지. 사회를 향한 나의 불만이 과하게 드러나 삐뚤어진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책이 될지. 어떤 영향을 줄지. 그림책으로써 이 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도 않은 A4 용지 위의 작은 그림과 메모들에 ’존재 이유‘까지 들먹이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뽀얗고 여린 순두부 같은 나의 그림과 메모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해 온 건지. 책상 조명도 충분히 못 쬐어보고 파일 안에 넣어져, 그마저도 겹겹이 쌓여있는 내 작은 그림과 메모들. 책장 가장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아 사죄의 쓰다듬을 해본다. 대체 이 그림과 메모가 장차 무엇이 될 줄 알고,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며 그늘진 곳으로 집어넣기 바빴을까.     


 ‘시대를 이끌어온 모든 예술은 당대에 이미 불온했다. 소설이 지닌 힘이란 바로 이런 문학적 상상력. 발칙하고 도발적이며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난처한 처지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누구보다 동시대 속에서 살아내게끔 추동하는 힘이다. 혁명하는 힘이다.’ 

전승민 해설「혁명의 투시도」,『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창비, 2022, 348면      


 장르 상관없이 과감하고 도발적인 창작물에 용기를 얻는다.

‘그림책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현재 나의 그림책 기획 정도면 아주 얌전하다고 스스로 격려한다. 그동안 그림책을 ‘착하고 바르고 희망적인 이야기 혹은 그런 그림’이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유명 작가들의 몇몇 책만 보고 말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작가로서의 나는 좀 더 나대도 괜찮겠다. 

예술이란 평소에 있는 듯 없는 듯해도 어느새 사람들의 공간과 기분을 환기하고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한 게 예술이므로, 나는 더 나대도 괜찮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여러 가능성을 키워간다. 

몇 갈래의 길에 발이라도 담가봐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잘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급한 성질 가라앉히고 당장 갈 수 있는 길부터 살살 들어가 본다. ‘여기가 아니네’ 하고 돌아 나와도 화내지 않고, 산책하는 마음으로 그 옆의 길로, 또 다른 길로 가보는 것. 그러다 꽃길인 줄 알았던 곳이 어느 순간 지옥 꽃길 되더라도, 불온함이 주는 통쾌함으로 더 나대면서 그 길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길 바라본다.

 ’새 기획이 있는데 어디로 보낼까요?‘

여기는 어디인가 싶은 길 위에서, 오랜만에 출판사로 메일 한 통 보냈다.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ㅣ 문학동네ㅣ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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