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 때문에 서울에 가게 됐다. 이런저런 회의에 일정을 마친 뒤, 몸이 살균, 소독되는 것 같은 햇빛을 피해 오빠네 집으로 향했다. 마침 택시로 10분 거리.
오빠 집에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조카를 돌보기 위해 엄마가 와 있다. 내가 가끔 서울에 갈 때마다 엄마는 내심 하룻밤 자고 가기를 바라는데,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밤새 뒤척이다 다음날 일정까지 흐트러지니, 웬만하면 일만 보고 강원도의 집으로 바로 돌아오려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는 만 13세 할머니 고양이가 홀로 있다. 고양이가 하룻밤 혼자 보낸 뒤 꼬질꼬질 수척해진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서 어디 멀리 갈 생각을 못 한다. 그럼 나와 함께 있을 때 새벽에 한 번씩 깨우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나이 든 고양이인 관계로 1박 이상은 좀 걱정이 된다.
나는 어려 서부터 외진 숲속 집에 살았다. 아빠의 말로는 그곳이 나의 탯줄을 묻은 '탯자리'인데, 나지막한 숲이 둥글게 둘러싼 분지 한쪽에 우리 네 식구 집이 있고, 집 앞으로 밭과 한우 목장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는 숲에 거의 방목 중인 닭들의 달걀을 주으러 가고, 학교 다녀와 점심, 저녁 식사 재료는 우리 집 밭에서 자란 것으로 요리해 먹는다. 엄마 심부름으로 밭에 가 햇오이와 상추, 연한 풋고추에 향긋한 조선호박과 호박잎 한 소쿠리 담아오면 그날 저녁 메뉴는 엄마 손끝에서 뚝딱이다.
봄에 심은 채소는 시간이 지나며 계절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연하고 물 많은 여름보다 단단해져서 씹는 맛이 좋은 가을 가지도, 더욱 향이 짙어지는 가을 상추, 냉이도 내가 전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님이 키운 채소를 먹으며 자랐고, 조카 역시 내 부모님이 키운 채소를 먹으며 자란다.
나는 어른이 되고 도시에 살면서 부모님의 채소와 멀어졌다. 그때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지금 풋고추가 엄청 많이 열렸는데 얼마나 연하고 맛있는지, 조선호박이 줄기마다 주렁주렁 열리고 있고 오늘 호박잎쌈에 강된장을 올려 아빠와 얼마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는지 같은 고향 밭의 소식을 전해줬다. ‘네가 집에 와서 한 번 가져가면 좋을 텐데, 와서 먹으면 좋을 텐데, 너 잘 먹을 텐데.’
한 번 집에 들렀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이었지만, 밭의 채소보다 중요한 건 지금 해야만 하는 나의 일이었고,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나의 일이었다. 일은 곧 나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더 불안했으니, 언젠가부터는 나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가기가 꺼려졌다. 우리 집 밭은 점점 나의 못난 마음과 죄책감이 자라는 곳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살면서 생긴 고비마다 나름 큰일 한 번씩 치렀고, 그때마다 나는 체념하거나, 내려놓거나, 마음을 비우거나, 차분해지거나. 더 앞으로, 더 위로 치달려 가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니 눈앞에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가, 아빠가 보이고, 엄마아빠가 숨차게 일 한 시절이 떠오르고, 그 바쁜 와중에 밭에다 싱싱한 채소 가꿔 지지고 볶고, 된장 찍어 어린 남매 입에 넣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걱정을 좀 덜 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여름 걷이 끝난 밭에서 가을이 오는 걸 지켜보는 늙은 오이 마냥, 쓸쓸하게 쪼그라들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 오빠 집에서 일박을 한다 하니 엄마는 기뻐했다.
내가 집에 온다고 고향 밭에서 연한 풋고추랑 호박잎, 가지에 애호박. 내가 좋아하고 잘 먹는 것만 한 보따리 싸 왔다. 내가 열무김치 덜 익은 거 좋아한다고 새로 담근 열무김치도 한 통 싸놨다. 아직 봄에 담가준 파김치가 남아있는데. 늘 자식들에게 흐르는 이 애정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엄마아빠처럼 최선을 다해 젊은 몸 하나로, 변화무쌍한 날씨와 세상에 맞서고, 견디며 살아낼 수 있을까?
도시에서 생활하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것에 재미는 있었으나 너무 빨리 지쳐 버렸다. 아마 나는 엄마아빠 밭에서 오지도 않은 탄저병에 덜덜 떠는 연약한 고춧대 일지도, 아니면 집 앞 둔덕에 매년 저절로 자라는 미나리 같은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곳에서 때 되면 다시 싹 틔우고, 바람 불면 손톱만한 이파리 파르르 떨며 사는 게 맞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곳이 나의 탯자리인 탓도 있을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마음은 가느다란 실이 되어 숲속 고향 집으로 간다.
강원도에 이사 온 첫날 밤, 이사에 지친 고양이에게 ‘우리 지금까지 진짜 고생했다. 이제 정말 우리 둘 뿐이다.’라고 얘기했다. 눈물도 좀 났던 거 같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주방 냉장고엔 고향 밭의 채소들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초복이라며 아빠가 사다 주신 수박 한통과 ‘아이스크림 10개 할인’ 행사로 구입한 비비빅, 월드콘이 한 보따리 있다. 이렇게 엄마, 아빠는 항상 내가 고향을 잊지 않게 해준다. 너는 우리의 딸이고 가족이라는 걸 되새겨 준다. 어른 된 지 한참인데, 나는 아직도 말없이 어리광 부리는 막내딸이구나. 오늘도 나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고, 먹으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
* 유현미 작가의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를 읽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