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가 재밌게 보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작가 ‘하라 료’의 작가 소개글을 보았어요. 40대에 작가로 데뷔한 그는 작가 생활 30년간 장편 소설 5편, 단편집 1권, 에세이 2권을 내며 독자들의 애를 태운, 독보적인 과작(寡作)작가 라는 거였어요. 다작(多作)에만 익숙했지 적게 작업했다는 ‘과작’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 작가가 데뷔 16년차에 9년의 공백을 깨고 4번째 장편인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발표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2011년 하반기부터 첫번째 그림책인 <돼지이야기> 작업을 시작했고, 작가 생활 15년차에 다섯 번째 책을 내게 됐습니다. 그래도 하라 료 작가보다 한 해 더 빨리, 한 권을 더 내었는데, 왠지 위 기준으로는 과작 작가에 발을 살짝 걸치고 있는 기분입니다. 하라 료 작가의 두 번째 책 <내가 죽인 소녀> 개정판에 쓰인 작가의 말 중에 ‘다음 책이 계속 늦어져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이 기억납니다. 저 또한 그 죄송한 마음에서 많이도 허우적거렸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완성하자는 마음으로 4년 6개월의 시간을 일과 그림책 작업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작이면 어떤가요? 그만큼 한 권 한 권 더 사랑스럽고, 귀엽고, 소중해서 내 품안에서 더 오래 눈 맞춤 할 수 있었는 걸요. 저의 시간과 마음이 푹 담긴 그림책들 인걸요.
네번째 그림책<앙코르>이후로 저는 빽빽한 도시에서(아, 이 진부한 표현) 산과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새로 만난 일과 사람들 덕분에 그림, 그림책이 아니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만든 책 대로 되는 건지 말 그대로 다시 한번 더, 앙코르의 시간이었습니다. 보다 후련하고 자유로워진 마음과 사람들 덕분에, 멈췄던 그림책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고 저의 노력을 쏟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유독 감사한 분들이 많은 다섯번째 그림책입니다. 제 책 얘기는 안하고 일본 소설가 얘기만 한 가득, 뭐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나 싶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오랜만의 책이라 생각이, 마음이 여기저기 부유하는 요즘이에요. 그 중 하나를 붙잡아 이렇게 풀어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속초시의 청초호를 표지와 앞, 뒤 면지에 가득 채웠습니다. 청초호는 영랑호와 함께 동해안의 아름다운 석호로 먼 곳에서 날아온 철새와 하루 일을 마친 크고 작은 어선이 쉬고 있는 곳입니다. 이 책이 여러분들께 잠시나마 휴식이, 눈이 커지는 놀라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해요. 곁에 계셔 주신 분들 덕분에 맨정신으로 끝까지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어디서든 반갑게 만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