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바쁜 3월이었습니다.

by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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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만나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두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질 때 그림을 그린다. 몰스킨 포켓형, 작은 드로잉 북이다. 그림은 나를 긴장시킨다. '완벽해야 한다,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그래서 작은 드로잉 북에 그림을 그리며 긴장을 푸는 연습을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형태의 정확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드로잉 북에서는 어색하고 틀린 형태를 최대한 눈 감고 지나가려 한다. 색을 칠할 때 선의 경계를 넘어가도 괜찮다. 틀리고, 어색하고, 이상하고, 선의 경계를 넘어가기 위해 그린다. 내가 느끼는 것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거니까.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을 계속 끄집어내기 위해 그리는 거니까.

안 하던 것을 해볼까? 형광 연두와 초록을 발라볼까? 생뚱맞은 자주색과 빨강을 덧발라볼까?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덧칠해볼까?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었을까? 그냥 이 생각도 하지 말아볼까?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

가장 마지막에 있는 불꽃 그림을 그리며 즐거웠다. 붉은색. 마구 뻗어나가는 붉은색. 그리면서 자유롭고 후련했다. 해방감이 들었다. 불꽃 그림을 시작으로 '붉은색' '불꽃''뜨거운 것'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 나가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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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서 쉬는 날이면 봉순이는 하루 한 시간 이상을 내 배 위에서 보낸다. 『우주 최강 붕어빵』 작업이 끝난 후, 몸이 쉬는 걸 잊어버려서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 난감했는데, 봉순이의 요구로 거실에 누워 강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엔 소파에서 둘이 딱 붙어 책을 보는데, 이게 바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휴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봉순이는 올해로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 오래, 더 자주 체온을 나누자. 매 순간 봉순이에게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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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부모님이 내게 보내는 최선의 사랑을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함빡 즐기던 시절의 풍경이다. 『우주 최강 붕어빵』을 작업하면서도 숲을 빙- 돌며 부는 바람, 바람과 함께 달리는 숲과 초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기획이 책이 된다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기록이 될까?

더 자유로운, 이전과는 다른. 내가 그려온 그림에서 벗어난 그림이 등장하길 바라고 있다. 한 번에 안 되겠지. 조금씩, 꾸준히 해 나가야지.

스토리보드는 그림책 창작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정이다. 즐겨 쓰는 0.3mm 샤프로 작은 상자 안에 구석구석 꼼꼼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책 과정 중 나의 상상이 가장 넓게 펼쳐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위험부담이 적어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고, 작은 그림 조각들을 새롭게 나열해 조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토리보드 한 장이 너무 빨리 나왔달까? 이렇게 한 장이 뚝딱 나와버리니 여기에 매여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글에서도 제한이 생긴 느낌. 설악산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하나. 새로운 시야가 필요하다.


♧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우리가 그처럼 바람의 발을 갖고 있고, 모든 것을 달리게 함으로써 건강하게 만드는 한 줄기 바람과 같은 템포와 숨결을 갖고 그러한 바람처럼 해방시키는 방식으로 조소할 수 있다면"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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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바닷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된장찌개를 끓였고 새 김장김치도 한 포기 꺼내 쓱쓱 썰어 반찬통에 담았다.

편안한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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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스토리보드 #그림책작가 #주말 #드로잉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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