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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Jan 02. 2020

미루다가 뒷자리가 또 바뀔까봐

소고

 브런치 글을 찌는 것('만두'를 찐다, 에서 빌려와 글을 찐다, 로 표현해본다)을 미루고 미루다가 한 해가 그냥 가버렸다.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하는데, (10대에 10키로, 20대에 20키로, 30대에 30키로...) 그런 비유를 일부러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일하랴 살아내랴 바쁜 2019년이었다. 

 글쓰기를 미루다가 나이의 뒷자리가 또 바뀔까봐, 글쓰기를 미루다가 연도의 뒷자리가 또 바뀔까봐 결국은 계획도 없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계획 없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해서 내 속이 당황스러우냐, 혹은 길 잃은 것처럼 느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늘 속에 말을 품고 살고, 내 시야가 닿는 곳마다 감상과 생각을 가지며 시달린다. 그냥 '몸'이기만 하는 시간도 물론 있지만, 정신이 있을 때에는 대개 정신에 시달린다. 

 잘 쓴 글들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읽혀서 내가 글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게 읽히는데, 못 쓴 글들은 대체 의도가 뭔지, 이건 왜 썼는지 궁금한 글들이기 일쑤다. 아마 내 글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밑밥 깐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일 것이고 나는 변명하는 문단을 적고 있다. 완벽한 변명이 되진 않겠지만, 소재가 좋으면 읽는 사람이 나를 용서하고 나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조금 길러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문장 첫머리에 '나는'을 적는 것도 두려워하는 나는)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지만 내 바람만큼 글을 자주 쓰진 않았다. 설령 모든 유혹과 고난을 이기고 글쓰기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글이 자주 나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특정한 독자와 마감기한이 없는 글은 내가 보기에도 한여름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아쉽게 느껴지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에너지를 아껴두었다 쓰면 가끔씩 좋은 것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드물어서 나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낚싯대를 평생 들고 다녀야 하는 낚시꾼이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근래 나의 인생 목표와 철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나 역시 그 사람에게 대답해주고 싶어 나를 돌아보고자 했지만 큰 벽에 가로 막힌 것처럼 생각이 뻗어나가질 않아 걱정을 하고 있다.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적어서 액자에 걸어두곤 했었는데. 그 목표들 중에서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아내가 된다.'라는 항목도 있었다. 굉장히 엄청난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적곤 했던 것이 나의 20대 같다. 

 

 만 나이로도 삼십 대에 들어서서, 이제 손도 늙는 것이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예전에 미워하던 사람들도 이제 더욱 밉지는 않고, 원대한 꿈을 이루고 싶어서 몸부림치던 날들이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20대가 페이드 아웃,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멋진 문장은 세계에 깔렸고, 먹고사니즘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에 살고 있고, 나는 한쪽은 냇물에 한쪽은 뭍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냇가를 따라 올라갈 것이다. 한쪽은 어쩔 수 없이 젖을 것이고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자꾸 걸어갈 것이다. 그 와중에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가 재발하지 않기 바라며, 멀쩡히 길을 걷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움에 고꾸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일단 적어보는 2020년 목표

 

1) 덜 우울해하기 

2) 냉철하고 효율적인 자원관리

3) 전직

4) 글 지속적으로 쓰기 


 1-1)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ㄴ 헬스장 등록 후 가급적 매일 출석

 ㄴ PT 등록 및 프로그램 활용 

 1-2) 뱃살 없애기

 ㄴ 걸어서 출퇴근하기 

 ㄴ 간식 미리 사두지 않기 

 1-3) 비타민D 챙겨먹기

 ㄴ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집/회사 손 닿는 곳에 두기 

 * 술 줄이기


 2-1) 읽지 않는 책 정리하기 

 2-2) 입지 않는 옷 정리하기 

 2-3) 일주일에 2 약속 이상 안 잡기


 3-1) 자격증 따기 

 3-2) 이력서 업데이트/이력서 제출

 3-3) 네트워킹 

 3-4) 기술 배우기/강의 듣기 

 ㄴ 하루 1시간 


 4-1) 일기 쓰기(라고 쓰고 뭐라도 쓰기라고 읽는다) 

 4-2) 시 습작 지속 - 연간 104개 완성

 4-3) 글쓰기 모임 나갈 것 

 4-4) 블로그 관리 


Questions.

1. 커피 안 마시는 사람, 책 안 읽는 사람, 글 안 쓰는 사람으로 변하면 일을 잘하게 될까? 

2. 영성은 어떻게 삶에 반영시켜야 할까? 

3. 게임스토리텔링 이론, 시 비평, 일기문학, 영화 또는 연애 칼럼 중 뭐가 가장 인기 있을까? (답정너) 

4. 한국어와 데이터분석은 어떻게 인생에 반영 할 수 있을까? 

5. <행복의 조건>과 <행복의 정복> 그리고 <행복의 기원> ,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왜 쓰는가><원씽><그릿> 같은 책들을 인생에 어떻게 녹여볼 수 있을까? 


2019년에 나는 '기본소득운동', '바이럴마케팅', '대충 글쓰기 온라인 관련 내용', '프로그래밍 및 문헌 정보 관련 내용', '유튜브창작활동'을 쭉 이어서 적어놨었다. 

2018년에는 '운동하기', '50kg 달성 및 근육량 증가', '직장 구하기', '사회조사분석사 2급','HSK 6급' 같은 걸 적어놨었다. 2018년에 새해 목표였던 것을 2019년 다이어리에 적어놨었다. 2019년에 적은 것중에서 뭔가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게 된 것은 '바이럴마케팅' 하나였다. 글쓰기 모임은 나가다가 생업에 치여 출석률이 극도로 낮아져 흐지부지 되었고, 시쓰기 동인 모임은 하나 참석해보려고 했었는데 이래저래 여건이 안 되었다. 변명만 늘었다. 프로그래밍은 1월 중순까진 강의를 듣다가 직업 적응을 하느라고 미뤘다. 문헌 정보 쪽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워낙 경쟁이 치열해 그러지 못하였다. 이렇게 2018년에 이어서 2019년도 불발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기본적인 소득을 만들고 사회인으로 기능하는 일은 사뭇 즐거웠다. 온전히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을 원하면서 여러가지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결국 돈 벌러 나갔고,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속해야겠구나 생각한다. 친구에게 밥 먹이고 차 사주는 게 너무 좋기도 하고, 일정 액수가 통장에 찍히는 게 (물론 곧 텅장이 되지만)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다. 


2020년에는 남들 다 넣는 '영어회화공부'를 목표군에 넣어볼까한다. 

작사/작곡/출간/방송 등은 염두에만 두고 있어야겠다. 


내 다이어리에는 '이름값 말고 가치에 집착해라.' '과거는 아무 의미 없다, 잊어버려!'

'공간을 바꿀 것, 만나는 사람을 바꿀 것, 시간을 바꿀 것.' '직업, 집, 서재, 차' 라고 쓰여있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칼럼이나 책에서 본 것을 적은 것이다. 완벽히 출처를 밝히며 인용하고 싶은데,

명확하지가 않아서 흐려야겠다. 쓰다 쓰다 목표가 모자라면 '귤나무 갖기' 같은 걸 적어두면 될 것 같다. 


2019년에는 두 번 크게 넘어졌고, 말하지 않기로 한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일기를 전부 읽어보진 못했지만, 

가계부를 통해 내 씀씀이로 1년을 돌아보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꼬박꼬박 꼭 

괴발개발로라도 작성했던 영화평을 읽어보며 그 당시의 나의 상태와 감정을 추적해보았다. 



 

내일도 역시 지난 해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겠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일단은 족하다. 

커피도 깨어있음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구간에 들어왔다. 온갖 귀여운 '잘 자' 이모티콘.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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