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휴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장년기

by YooTube

누구에게나 철학은 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원칙이랄까. 회사원으로서 내 철학은,


"월급과 휴가. 이 2가지는 철저하게 노린다."


이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회사를 왜 다니는가. 잘 먹고 잘 살자고 다니는 건데. 그러려면 당연히 월급이 필요하고, 일만 너무 많이 하면 바보가 되니까 휴가는 절대 놓칠 수 없다. 역시 난 워커홀릭은 아니었다. 휴가도 가지 않고 일을 정말 열심히 하면 월급을 정말 많이 주는 회사보다는 돈 덜 받더라도 휴가가 있는 회사가 좋다.


세 번째 회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제도도 안식휴가였다. 5년을 다닌 후 3개월 휴가를 선택하거나 3년을 다닌 후 1개월 휴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와 정말 좋은 회사!!!) 드디어 나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졌고 난 주저 없이 3년 1개월을 택했다. 조금만 참으면 2개월이 더 주어지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먼저 받는 걸 택하련다. 다른 건 참아도 휴가는 참을 수 없다. 계속해서 다닌다면 6년 됐을 때 또 1개월 가지 뭐. 9월에 휴가가 나오면 10월에 바로 휴가를 쓰기로 결정한 후 연초부터 내 계획을 모두에게 알렸다.


그러다가 큰 위기가 생겼다. 내비 TF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TF장이었고, 휴가를 가야 하는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휴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 중일 때 팀 리더가 1개월을 비운다? 휴가 가겠다고 잘 다니던 첫 회사를 충동적으로 때려치우기까지 했었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고민이 됐다. 휴가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갈 것인가.


결국 나답게 결정했다.

1개월 휴가를 가기로 했고, 상위 조직장 및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다.


어차피 내가 있든 말든 상관없이 일은 잘 돌아가고 있었고, 휴가를 가는 대신 매주 챙겨야 할 전사 주간 보고라든지 그 외 것들은 휴가 가서도 원격으로 확인해서 대응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래 봤자 1주일에 2~3시간 정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었다.


그리고 1개월 동안 독일에 다녀왔다. 그것도 이제 막 10개월이 지난 딸과 함께였다. 여러모로 나에겐 도전적인 휴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1개월은 감히 말하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개월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생각하며 그리워하곤 한다. 좋은 기억 하나에는 최소 5년은 즐겁게 살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만약에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아마 두고두고 아쉬워했겠지? 휴가를 다녀온 덕분에 더 즐겁고 가벼운 기분으로 이후 프로젝트 마무리까지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리프레쉬(Refresh)'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하는 걸 여실히 느꼈다. 물론 그렇게까지 지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 함정.


내가 휴가를 다녀와도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일도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비중은 그렇게 생각만큼 크지 않다.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역시 휴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도.


사진 2015. 10. 23. 오후 11 30 03.jpg 스튜디오 대신 독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촬영한 우리 딸의 돌 사진


keyword
이전 20화19. 갑자기 주어진 새로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