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시간과 함께 성숙해지기

장년기

by YooTube

경력이 10년 정도 넘어가고 하다 보니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가 아마도 평정심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경우 평온하거나 변화가 생기더라도 금방 돌아온다. 아니, 평온하다기보다는 무덤덤하다고 해야 할까. 가끔 주변에서 '로봇'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덤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건 아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한다고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결국 경험이다.


회사에 있다 보면 점점 능력 있는 새로운 사람들만 많아지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 게 슬플 때가 있다. 신입 사원들은 '최신 스펙'을 갖춘 빵빵한 최신형 기기이고, 나는 '구형 스펙'을 갖춘 오래된 기기이다. 그렇지만 성숙해진다는 면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성숙해진다는 건 매사에 무덤덤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10년이면 강산뿐만 아니라 사람도 바뀐다.




쓸데없는 걱정

첫 퇴사를 했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다시 취업을 하고 또 퇴사를 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둔감해졌다. 걱정한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경력 단절이 길어지지 않는 이상 세상에 내가 갈 회사 하나 없지는 않더라. 그리고 당장 퇴사를 한다 해서 생활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도 않다. (이 역시 경력 단절이 길어지지 않는 한에서) 회사를 다니든 퇴사를 하든 내가 사는 세상은 같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놀러 갔을 때 만났던 대만 사람이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왔다고 하니 굉장히 놀랐었다. 자기는 파리에서 유학 중인데 잠깐 바르셀로나로 휴가 온 거라고, 곧 유학 끝나면 대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서 어떤 일을 할지 되게 걱정이라고 했다. 마르세유에서는 루마니아 사람을 만났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다니면서 잠깐 일해서 생활비 벌고 또 돌아다니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 차라리 더 오래 시간을 보내보라는 말도 했다. 아무리 환경이 다르다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현저하게 달라서 놀랐었다. 정답은 없다. 하나의 정답이라면 "걱정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였다.


세상엔 늘 변화가 있게 마련이고, 그 변화가 크건 적건 나는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아무리 큰 이벤트일 지라도 하나의 변화일 뿐, 모든 일은 결국 다 지나가더라.


빈부격차

거의 모든 회사는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다. 때문에 연초가 되면 연봉과 인센티브에 대한 소문이 돌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 번째 회사에서는 그것보다도 더 거대한 돈에 대한 루머와 가끔은 팩트들이 돌아다녔다. 작은 회사부터 시작해 급성장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한 스톡옵션, 인수되어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사실들이 그것이었다. 누가 어떤 집을 샀다더라, 누가 무슨 차를 샀다더라, 누가 스톡이 어느 정도라고 한다, 누가 몇십억을 벌었는데 공시가 됐다... 소문은 끝이 없다. 슬프게도 내 소문은 아니었다. 그럼 내가 지금 이런 걸 쓰고 있지도 않겠지.


소문은 사람을 자연스레 비교로 이끈다. 그리고 비교는 할수록 비참해질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그냥 무관심해졌다. 해서 무엇하리, 나에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인 것을. 빈부격차는 있게 마련이다. 비교하자면 대상은 끝도 없다. 돈을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번 아는 분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 되면 충분히 벌었고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럴수록 더 많이 번 사람들이 보이더라."


회사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못난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빈부는 능력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니다. 돈이라는 것은 능력에 기본 배경에 운에 기타 등등 여러 요소가 합쳐져서 결정되는 것이고 내가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모든 상황을 알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 그냥 신경을 끄는 것이 답이다. 언젠가 나도 '부'의 위치에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안 돼도 잘 살아갈 테니 문제는 없다.


욕 좀 먹어도 괜찮아

힘든 시간을 거쳐 내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제품이 출시됐지만,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다. 매일 언론에서 '불만 폭주'라든지, '다운그레이드'라든지, '이대로 괜찮나' 같은 말들이 나왔다. 주변에서도 걱정 어린 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냥 무덤덤했다. 욕먹을 수도 있지 뭐.


자세히 보니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됐다.


1) 일부 이용자들의 이전 데이터가 새로운 앱으로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

2)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명시적 버그

3) 변화에 대한 단순 불만


1번과 2번은 문제를 파악해서 금방 고쳤고, 3번은 불만이 있는 건 인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1번과 2번 문제를 해결하느라 오픈 후 약 한 달 동안은 정말 바빴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쳐 대부분의 버그는 고쳐졌고, 이윽고 욕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용자들이 쓰는 서비스가 되었다. 욕도 많지만 칭찬도 많아졌다. 모두가 좋아하는 서비스는 불가능하고, 보통 칭찬보다는 욕을 더 열성적으로 하게 마련이고, 때문에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냉정하게 지표를 보며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곧 문제는 사라졌고 각종 지표들이 우상향으로 바뀌었다.


욕 좀 먹으면 어때. 일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계속된다. 굉장히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욕 한번 한다고 사람이 바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설사 떠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욕이든 칭찬이든 그저 외부 소리로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 뿐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칭찬해주고 환호해주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욕심이다. 욕 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기왕에 욕 많이 먹는다면 대신 수명도 조금은 늘어날 것 같고. 그냥 그렇게 덤덤하게 살다 보면 결국 모든 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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