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기
택시 서비스를 여러 수단까지 다 포함하는 종합 교통 서비스로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새로 맡게 되었다. TF가 생기긴 했지만 그 TF의 역할은 먼저 시작해서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일 뿐, 사실상 회사의 거의 모든 조직이 함께 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당시 TF 구성원들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전체를 설득해서 일을 진행시키려면 일단 TF부터 활발하게 토론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다른 조직과 협의하고 해야 하는데 다들 의욕이 별로 없었다. 그땐 회사가 전체적으로 그랬다. 회사의 분위기라는 걸 무시 못한다. 프로젝트는 윗선의 의지로 갑자기 시작되었는데 그걸 이끌어갈 구성원들의 힘이 부족했다. 그건 매니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침 당시 내가 따로 참여하던 책 읽기 모임에서 매번 하던 상태 체크인이 생각났다. 책 읽기 시작 전에 오늘 내 기분은 몇 점인지, 왜 그 점수인지 이야기하고 그것과 관련해서 서로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체크인이다. 좋은 일이 있든 기분 나쁜 일이 있든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할 거리가 생겼고, 덕분에 서로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더 깊어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TF 내부에서라도 먼저 서로에 대해 공감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주간회의 대신 매주 1회 '우리의 상태 이야기'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의 총 10개의 질문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바를 점수로 말하고 그것과 관련해 서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매니저로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매주 누적해서 기록했다.
1.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2.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
3. 산출한 결과물에 자부심을 느낀다.
4.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5. 일의 목표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6. 주도적으로 일한다.
7. 일의 속도가 난다.
8. 일하는 방식이 나와 맞다.
9. 필요한 도움을 받고 있다.
10. 팀워크가 좋다.
각자가 느끼는 바는 매우 달랐다. 아래 그림의 색으로 표시되듯이 굉장히 천차만별이었다. 특정 항목은 구성원 대다수가 계속해서 좋지 않기도 했다. 그런 건 매니저인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알려면 일단 이야기를 해야 했고, 처음엔 주저하던 사람들이 점점 더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태 이야기는 성공적이었다. 구성원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일을 할 때도 서로 더 배려할 수 있었고, 매니저인 나로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흔한 업무 이야기보다 이런 이야기가 프로젝트 진행에도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에 저 방법을 다시 써본 적은 없다. 저 방법은 당시 상황에 맞춰서 급 고안했던 방법이고, 상황이 달라지자 굳이 다시 쓸 이유는 없었다. 이후 카카오 T 바이크라는 프로젝트를 새로 할 때는 아예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팀도 더 컸고, 각 직군별로 알아서 잘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저런 걸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각 직군에서 맡은 부분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팀에서 결정한 일은 어떻게든 서포트를 해줄 테니 각자가 적극적으로 결정하고 주장하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가지고 나만 윗선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의욕은 있지만 주저주저하던 분위기일 때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매니저가 되면 업무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만 사람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무슨 일이 됐든 결국 일은 사람이 하고 사람은 기계처럼 늘 같게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받고,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고, 당연히 일의 성과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때문에 상황에 맞게 각 구성원들이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은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정말 다양하기에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든 상황에 통하는 마법의 열쇠"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그러니까 기원전에 쓰인 <한비자>라는 책의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상을 준다고 말하면서도 주지 않으며 벌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상과 벌을 내림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인과 서민들이 죽음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2천 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저런 당연한 말이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걸 보면 인간세상은 얼마나 복잡한지. 일은 결국 사람이 하고, 조직은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하고, 역시 사람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