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도리
군주는 지혜가 있다 하여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알게 하고, 행동을 하되 현명하지 않은 것처럼 하고, 신하들의 행동의 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용기가 있어도 분노하지 말며 신하들이 용맹함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지혜를 버려 총명함을 갖게 되고, 현명함을 버려 공을 얻게 되며, 용기를 버려 강함을 갖게 된다. 신하들은 직분을 지키게 하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일정한 법규를 지키게 하여 신하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리는 것을 '영원불변의 도'라고 한다.
군주의 도리는 고요히 물러나 있는 겸허한 태도를 귀중한 보배로 삼는다. (군주는 정치에 관한) 일을 직접 관장하지는 않지만 그 잘되고 못되는 것을 알아야 하며,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책략을 세우지는 않지만 화와 복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군주가) 말을 하지 않아도 (신하는) (군주의 의도를 파악하여) 잘 대답하며, (군주가)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일이 잘 진척된다.
군주는 자신의 능력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처음에 이 부분을 봤을 때는 상당히 이상했습니다. 좋은 군주가 되기를 바라면서 능력을 보이지 말라니요. 하지만 한비자가 전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가장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 이해가 갑니다.
한비자는 결코 뛰어난 군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 그때는 태평성대였는데." 같은 말을 하며 특정인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좋은 날을 만들려고 합니다. 굉장히 현실적이죠. 때문에 어떤 군주가 되더라도 잘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강조합니다. 물론 처음에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군주가 필요하겠죠. 지금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 오래오래 지속될 좋은 시스템을 만들라,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 다스리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를 만들어 다스리라니, 현실적이면서도 혁신적입니다.
좋은 제도에서 군주는 호불호를 드러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이 군주의 호와 불호에 맞춰 행동하며 군주의 신임을 얻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역사상 늘 있어왔던 일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간신'들이 바로 그것에 해당하죠. 때문에 군주는 자신의 호불호를 버리고 신하를 부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물론 그 가장 중요한 도구는 상과 벌입니다. 이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군주의 능력이 설사 조금 떨어지더라도 나라가 강성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모든 매니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모습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일은 많은 신하들이 할 것이고, 군주는 매니저로서 그것을 잘 조정만 하면 될 테니까요. 실무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려는 매니저가 결코 좋은 매니저가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매니저의 선호에 부합하는 사람들만 승승장구하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