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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Feb 21. 2022

도예: 쌓아 올린 만큼 깎아내는 것

중심잡기와 컵 만들기, 그리고 안미옥 시인의 <애프터>


도예를 배운 지 딱 두 달이 되었다.


작년 어느 여름, 주말의 무료함을 달래려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던 핸드 빌딩 원데이 클래스에서 도예의 매력에 빠졌다. 흙의 촉감, 투박하면 투박 한대로 감성이 되는 관대함, 그러면서도 뭔가 해냈다 보여줄 수 있게 하는 성취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올해 1월이 되자마자 새로운 취미도 만들어볼  물레 정규반을 호기롭게 신청했다. 쭈뼛쭈뼛 들어선 공방에서 앞치마를 매고 슬리퍼를 신고, 물레 앞에 앉아 자세를 잡아보니 흙에 손만 대고 있어도 왠지 그럴듯해 여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물레의  단계인 '중심잡기' 시도해보자마자 꽤나 충격을 받았다. '사랑과 영혼' 영화에서처럼 우아하게 흙을 만질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흙을 만지는 일은 코어 힘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었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 단단한 흙을 밀어 올리고, 중심을 세우고, 다시 무너뜨렸다가  세우는 일의 반복. 3시간 수업은 정신없이 지나갔고 다음날 나는 PT 받은 다음날과 비슷한 수준의 근육통에 시달렸다.  신선한 감각에 매료되어, 웬만해서는 일찍 일어나지 않는 내가 토요일 아침마다  번쩍 떠서 도예 공방을 다니게 되었다.


'중심잡기' 후에는 일자 컵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세워 올린 흙에 구멍을 어 컵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컵의 바닥을 넓혀주고, 벽을 얇고 균일하게 세우는 . 모든 단계가 , 균형감, 세심함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한 번만  얇게  볼까? 하는 순간 벽면이 힘을 잃고 망가지기도 하고,  정도면 완벽하다 싶어 컵을 물레에서 떼어내는 단계에서 바닥을 가뜨리기도 한다. 애초에  컵을 만드는 작업도 중심잡기에 성공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컵 만들기를 실패하고 다시 시작할 때는 다시 새 흙을 떼어 중심잡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그마한 컵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온몸의 힘을 야 한다.  그렇게 세 번의 수업만에 겨우  혼자의 힘으로 일자 모양의 컵을 만들어낼  있었다.


흙에서 컵 모양을 만들고 나면 '굽깎기'라는 것을 한다. 흙덩이 위에서 컵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흙덩이에서 떼어진 부분-컵의 바닥이 되는 부분을 예쁘게 깎아내야 우리가 보는 깔끔한 컵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컵을 뒤집어엎어놓고 한 가닥, 한 가닥 바닥을 깎아나가는 형식이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너무 두꺼우면 컵이 무거워지고 너무 얇으면 자칫하다 바닥이 뚫릴 수도 있어서, 이 역시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컵 바닥을 깎아내면 겉면도 깎아낸다. 손으로 쌓아 올렸기에 아무래도 울퉁불퉁한 면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물레 위에서 컵이 돌아가면 한쪽에서 칼을 대서 균일하지 않은 부분들을 깎아내는 방식이다.


'굽깎기'라는 단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깎아내는 작업을 배우면서 나는 꽤나 많이 놀랐었다. 깎여나가는 부분이 내 생각보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분명 내 눈에는 균일해 보이는 컵의 바깥 면도, 칼을 대보면 어느 한쪽은 상대적으로 두꺼워서 흙이 몇 바퀴씩 깎여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쌓았는데, 이렇게 다 깎는다고?"


어쩐지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그 흙덩이를 컵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손목 저리도록 중심을 잡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벽을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세우고. 그 과정에서 어딘가 한 순간이라도 잘못되면 새 흙을 가져와서 다시 중심을 잡고 벽을 올리고. 그렇게 힘들게 쌓고, 만들어서, 예쁘게 말려놨는데 이렇게 또 깎일게 많다니. 내 눈엔 너무나도 깨끗해 보였는데.


하지만 그러게 한참을 깎아내고 나니, 벽면도 바닥면도 반들반들해지고, 이전보다 모든 면들이 균일해졌다는 게 육안으로도 느껴졌다. 깎아내기 전의 모습도 충분히 예뻤지만, 어딘가 투박하던 면들이 깎이고 깎여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모습이 된 것 같았다.

 

깎아내는 법을 배우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린 손목을 주무르며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던 인생의 단계가 이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쌓아 올리는 것 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 인생에는 깎아내야 할 것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이제 다듬어질 대로 다 다듬어진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어떤 면은 지루하게 혹은 아프게 깎여야 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히 쌓아 올리며 산 시간 뒤에는, 더 이상 깎여 나오는 흙이 없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밤에는 시소를 타야지

솟아오르는 일과
가라앉는 일의 깊이를 알게 될 때

빛은 제 몸을 비틀어
직선의 몸을 갖게 되었다
직선으로 깨지게 되었다

파편으로
빛을 경험하는 일처럼

도달한다는 것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뛰어간다
나는 넘어간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복을 빌어주는 일을 배워서

너의 시간을 축복해야지

네가 어딘가에 도달할 때까지

너의 흰 재의 시간
마른 장미의 시간

안미옥의 시 <애프터> 중에서


가까운 사람이 우연히 이 시를 읽고는 내 생각이 났다며, 이 시가 담긴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솟아오르는 일과 가라앉는 일. 직선의 몸을 갖게 되는 것과 직선을 깨지게 되는 것. 도달하는 것과 산산조각 나는 것. 이 모든 표현들이 흙을 쌓아 올리는 것과 깎아내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마이너스의 시간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한 시간인가 보다. 나는 그저 도달할 때까지 뛰어가고 넘어가고, 깎여나갈 것이 없을 때까지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 그 시간을 축복해주는 것이 내가 그 시간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언제쯤 내 실력으로 예쁜 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겨우 쌓아 올린대도 바닥을 깎아내다 구멍을 뚫어버릴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또 허무하게 중심을 잡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지만, 애초에 삶이란 한 번에 하나의 완벽한 컵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컵이라도 다시 만들 수 있게 그 방법을 배워나가는 일. 그렇게 조금씩 실력을 키우며 다음 컵을 만들 땐 깎여나가는 시간을 줄이는 법을 배우는 일. 이다음에 내게 오는 일은 조금 더 능숙하게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일. 그렇게 다듬고 다듬어진 나를 만들고 또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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