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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r 04. 2020

이유가 없어도, 만들면 되는 거야

첫 번째 기록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두 번의 뜨거운 합격, 그리고 세 번째 지원 끝에 기어코 브런치의 축하를 받아냈다. '이 정도면 되고도 남겠지' 싶은 마음이었던 첫 지원. '조금만 더 고치면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던 두 번째 지원. 그리고 '이번에도 안 되면 포기해야지' 싶은 생각과 함께 세 번째 지원. 마음을 비운 마지막 도전은 성공이었다! 메일을 받은 당일에는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뻐서 세상 사람들 다 붙잡고 자랑하고픈 지경이었다. 보통 마음을 비우면 초연해지기 마련인데 나는 왜 되려 신이 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글을 써야 할 명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라는 걸 처음 접한 기억은 아주 또렷하다. 학교가 뭔지도 모른 채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하고, 가라면 갔던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글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뉘어요.

서론에서는 먼저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말해주고,

본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결론에서는 글을 마무리지어야 해요.

그리고 글은 자신의 생각을 쓰는 거지,

남의 생각을 받아 적는 게 아니에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그때 나는 느꼈다. '와, 재밌겠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배운 대로 글을 썼더니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고, 칭찬을 받은 글은 어디론가 건너고 건너가 나에게 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나는 또 느꼈다. '와, 재밌었다.' 어린 마음에는 글 쓰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어떻게 글을 시작할까?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을 본론에 잘 담을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멋진 결론을 쓸까? 복잡하긴 했지만 재밌는 고민거리였다. 초딩 나름의 고뇌를 거친 글이 대단한 형태로 돌아와 보람을 선물해주니, 이것보다 정직한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가 어디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글을 썼었다. 글짓기 대회, 독후감 대회, 독서 논술 대회, 입시 논술 등등. 글짓기 대회가 열린다는 안내문을 볼 때면, 왠지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점차 학년이 높아지고 학교가 올라가면서, 대회들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낮을 때도 있고 가끔 아예 나오지 않을 때도 있음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씁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빨간 네모들이 가득한 원고지를 버리는 일은 없었다. 글 쓰는 건 재밌고, 대회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명분이었으니까.


 글을 좋아하던 학생은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근데 대학에서는 누구도 글을 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 글을 써야 하는 때는 학기 중 한두 번 주어지는 리포트 과제가 전부였다. 그래서 공모전을 찾았다. 수많은 공모전 가운데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글을 적어 냈다. 하지만 결과는 제로 아웃풋. 내 이름은 명단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 속상해하고 있던 와중에 나는 글에 대해 재고해보게 되었다. 왜 아직도 글을 쓰고 있을까? 재밌다고는 해도 이렇게 기분 상할 바에 관두는 게 낫지. 예전에는 대학 가려고 글을 썼어도, 이미 대학을 와버린 지금은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걸. 글을 업으로 삼을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끝끝내 내려놓지는 못했다. 리포트 외에, 글이 고플 때마다 리뷰를 끄적거렸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진 골목 같은 블로그였지만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셨다. 하트를 눌러주실 때는 괜스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댓글을 남겨주실 때는 그 여운이 일주일은 거뜬히 남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아웃풋은 꼭 보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아웃풋이 될 수도 있구나.


 글에 대한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나자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였다. 평생 같이 가야 할 글이라면, 글을 써야 할 명분을 만들자. 그래서 결심한 게 바로 '브런치 작가 되기'였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브런치의 메일을 전해 받을 때마다 '브런치 작가 되기'는 연말이 다 가기 전 해치워야 할 일거리에서 방학 과제로, 또 올해 목표로 재설정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지금은 내 브런치에 처음으로 올라갈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기억이, 또 어떤 생각이 한 편의 글로 탄생할지는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 글에서처럼 '어른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소소한 순간순간을 이 곳에 남기고 싶을 뿐이다. 이름하야 어른이 성장일지. 학업에, 취업에, 나아가 현업에 치이는 때가 오더라도 몸 다해 마음 다해 기록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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