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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r 18. 2020

제 열정의 온도는 미지근합니다

두 번째 기록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외활동이 얼마 전 모집을 마감했다. 지원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때를 놓친 거냐고 되묻는다면,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겠다. 어디서든지 꼭 필요로 하는 인재가 이렇게 말한다면 꽤나 있어 보일 것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인재 축에도 못 끼는 사람이다. 어디든 날 받아준다면 삼보일배라도 야 할 것 같은, 아주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다. 그래 별 대단한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지원을 미룬 이유는  열정의 온도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학창 시절은 땔감에 불 지피기와 비슷했다. 어디에선가 불쏘시개를 가져와서 열정이라는 난로에 불을 지피는 일을 이틀 내지 사흘에 한 번씩 해왔던 것 같다. 불쏘시개의 종류는 꽤나 다양했다.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쓴소리 영상이라든지 나의 목표를 먼저 이뤄낸 사람의 브이로그 영상, 그리고 가끔 내 주위에서 던져져 나를 할퀴었던 말 몇 마디 정도. 그렇게 내 열정에 한 번 불을 지피면 하루 정도는 무서울 정도로 활활 탔다. 하지만 식는 것도 언제나 순식간이었다. 순간의 나태함이 전체를 망쳤다는 생각에 하루를 통째로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내일부터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오늘의 가능성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비가시적이기에 경각심조차 가질 수 없었다. 열정에 불을 지피는 나의 모습에 경각심을 가지게 된 건 기나긴 수험생활이 끝나고 짐을 정리할 때였다. 몇 장 쓰다가 만 스터디 플래너들이 서랍 한 칸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고, 공부한다고 사둔 노트들 또한 원가로 되팔아도 될 것만 같은 상태로 책장에 진열되다시피 꽂혀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많았었다. 하지만 정작 든 게 없었다. 그 많은 텅 빈 공책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그동안 이렇게 많은 불을 쉽게 꺼뜨렸나 싶었다. 그나마 딱 한 권, 1년을 꾹 눌러 담았었던 그 노트조차 자의로 이룬 목표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관리 하에 타의적으로 성취얻어 이뤘던 것뿐이었다.


 왜 나는 쉽게 도전하고 쉽게 포기했을까. 그 시절을 지나고 나니 답이 빤히 보이더라. 나는 스스로에게 지나치도록 뜨거운 열정을 강요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나는 나를 몰랐다. 나를 알았더라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열정의 불쏘시개마냥 썼던 영상 속의 대단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들이 노력한 방식을 보편적인 정도(正道)로 알고 그 길을 감히 따라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만큼의 끈기도, 집중력도, 체력도 없었다. 나에게 속도를 맞춰 걸었어야 했는데, 여태껏 내가 한 짓은 그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고는 죽어라 뛰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금방 나가떨어질 수밖에.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나를 안다. 아주 드문드문이지만 말이다. 열정 가득 저질러 놓으면 뒷감당해야 할 때 열정은 이미 토끼고 없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의 마음속에 열정의 신호등이 생겼다. 그 말인즉슨, 열정의 불쏘시개를 찾았더라도 무작정 난로로 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웅크려 앉아 고심할 뿐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일상의 백을 앗아가 나를 지치게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 시작하는 마음 그대로 끝맺을 수 있는가. 전기회로 같은 질문의 답을 따라가다 보면 신호등에 불이 들어온다. 빨간 불이 들어오든 초록 불이 들어오든, 이로 인해 아쉬움이 남든 긴장감을 가지든, 그저 신호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지원하기를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을 기약했다. 나에게는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연재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그래서 당분간은 이 여유를 온전히 글에 쏟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지나 다작을 하지도 않기로 다짐했다. 겪었다시피 순간의 열정은 식는 것도 순간이니까. 그저 지금처럼, 이 미지근-한 열정의 온도오래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이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가끔 주변의 화기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불쏘시개를 구해와야 하나. 내가 너무 느긋한가. 그러다가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들만의 온도가 있듯이, 나도 나만의 온도가 있는 법을. 언젠가 뜨겁게 타오를 열정의 순간은 지금의 쿨타임이 있기에 가능하리라는 것을.


 시도 때도 없는 열정에 지쳐버렸다면, 가끔은 해볼 만하다. 열정에 스스로 찬 물 붓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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