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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30. 2020

그때 나에겐 여유가 필요했을 뿐

열세 번째 기록

    솔직히 말하자면 나 영어 잘했다. 아니, 잘했었다. 아니, 잘했었었었었었... 중학생 때 다녔던 학원에서 영문법 책만 다섯 바퀴를 넘게 돌렸던 덕에 수능 때까지 문법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경지에 도달했었다. 중학교 내신 영어 뭐 별거 있나. 본문이며 스크립트며 부가 자료며,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까지 달달 외우면 백점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렇게 공부하면 못해도 95점 이상은 나왔으니 나는 내가 영어에 대단히 특출 난 줄 알았지. 평생 잘할 줄만 알았던 영어가 낯설고 무서워졌던 건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부터였다.


영어 영역 킬러 문제 중 하나였던 빈칸 추론.


    처음 겪어 보는 모의고사였으니 긴장을 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뒤 치렀던 두 번째 모의고사에서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갑자기 숨 쉬는 게 답답해지고. 그러다 보니 논리보다는 감으로 찍게 되는 문제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점수는 줄곧 1등급으로 잘 나왔다는 거다. 정상적으로 문제를 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나왔던 90점대라는 높은 점수는 나의 영어 모의고사 공포증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이 증상이 곧 엄청난 시련을 가져오게 될 거라는 것도 말이다.


    2년 내내 줄타기하듯 간당간당하게 1등급을 유지하던 나의 영어 점수는 2학년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그만 균형을 잃고 떨어지고 만다. 87점. 처음으로 2등급이 나왔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엄마는 물어보셨고,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실수한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며칠 뒤 급식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마주친 영어 선생님도 왜 성적이 떨어졌냐고 물으셨지만 난 그저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컨디션 말고는 무엇이 도대체 내 점수를 깎아 먹었는지 나조차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분 탓이었고 실수였으니 다음부터는 다시 1등급으로 올라갈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하필이면 제일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부터 내 영어 점수는 1등급과 2등급 사이에서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뼈를 깎는 노력뿐이라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 하지 않던가. 미루고 미루다가 학원 가기 전날에서야 몰아 풀던 영어 모의고사를 깊게 공부해보기로 했다. 첫날에는 실전처럼 시간을 재가며 모의고사를 풀고 채점하여 점수 매기기. 둘째 날부터 학원 수업 전날까지는 모든 문제를 빠짐없이 분석하기. 이런 식으로 공부를 했더니 성적은 모르겠고 마음은 편하더라. '난 최선을 다했으니 어떻게 되든 배 째라!' 이런 마음이어서 그랬나 싶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점수는 제자리걸음을 하니, 시간만 잡아먹는 이 공부법을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초심을 찾기로 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공부하다 보면 잘못된 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서점에서 가장 기초적인 영어 독해 문제집을 사서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공부하면 점수가 오를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의지력을 상실한 나는 결국 수능 전까지 감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었고, 그렇게 나의 첫 수능에서 영어 영역 3등급을 찍고 만다.


    여기서 내가 얻었던 교훈 하나.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열아홉 치고 너무 비관적인가. 원래 우리나라 열아홉들은 비관적이어도 이해해줘야 된다. 이 사회가 열아홉 고3들을 비관적이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영어만 말아먹은 게 아니었던 나는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게 된다. 고3 때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수능 연계 교재를 달달 외웠다는 거다. 독해력은 처참할지언정 암기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두 번째 수능에서는 운 좋게 낯익은 연계 문제들을 많이 만났고, 다행히 점수도 작년 수능보다 올랐다. 89점. 한 문제만 더 맞혔어도 1등급이라 상당히 아쉬웠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그렇게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영어 모의고사 공포증은 결국 원인 불명으로 잊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단조롭던가.


    작년 겨울에 영어 학원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까지 나름 성실히 일하고 있는 중이다. 수능이 다가옴에 따라 일이 하나 더 생겼는데, 바로 모의고사 감독이다. 그냥 가만히 서서 아이들이 허튼짓 못 하도록 감시하면 되는데, 안 그래도 예민한 시험 시간에 학생들 심기 건드릴까 조심하며 공기처럼 서 있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더라. 수능 감독 선생님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어느 날에는 시험지가 남길래 내가 쓰는 스탠딩 책상에 올려놨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시험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추억이라기엔 너무나 처절했던 수험생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더라. 그러다 무심코 문제를 풀어보게 되었다. 그것도 킬러 문항이라 불리던 빈칸 추론 문제를 말이다.


    정답이었다. 답지가 이상한 게 아닌가 몇 번을 들여다봤지만 확실히 정답이었다. 사실 내가 놀랐던 건 정답을 맞혔다는 사실보다 문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수험생 때 느꼈던 가슴 답답함 등의 증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부드럽게 독해를 했고, 정답까지 맞혔다. 그제서야 내 영어 모의고사 공포증의 원인을 찾았다. 바로 여유였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여유롭게 문제를 풀었던 게 날 정답으로 이끈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험생 신분으로 모의고사에 임할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별표 치고 넘어가는 문제 수가 하나 둘 늘어갈수록 수험생은 문제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버텨내야 한다. 이 싸움에서 밀려날수록 문제는 읽히지가 않고, 그러니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고. 이 악순환이 무한히 반복되니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 허무하지 않나. 공부법을 바꾸고 생 난리를 쳤는데 정작 해답은 마음가짐에 있었다는 게. 그래도 평생 못 고칠 줄로만 알았던 영어 모의고사 공포증을 그 원인이나마 알아냈으니 속이 시원하더라. 사람에게 마음가짐, 정확히 말해서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몸소 알게 되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은 수능 다시 쳐보라며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이런 류의 농담을 질색하는 나는 정색하며 앞으로 내 인생에 세 번째 수험생활은 없을 거라며 엄포를 놓는다. 얼마나 힘들었는데. 진짜 죽을 뻔했단 말이지.


    그래도 힘들었던 만큼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어 주는 것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여유로운 삶이 내 인생 모토가 되었기도 했고. 그냥, 날씨가 선선해지는 걸 보아하니 올해도 수능이 다가오고 있구나 느끼던 참에 수험생 시절이 아른거려 이야기를 좀 적어 봤다. 모쪼록 여러분도 여유롭게 사시길 바란다.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수험생 분들, 상황은 그 어느 해보다 안 좋지만 끝까지 힘내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재수, 아니 (n+1)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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