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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an 08. 2021

비록 설레지는 않았지만

열네 번째 기록

    우여곡절 많았던 2020년이었지만 역시나 새해는 오더라. 문제는 새해가 "새해"같지 않았다는 거다. 본디 "새해" 하면 떠오르는 것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의 풍경 아니던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기피하는 본인이지만, 그래서 매년 첫날마다 TV로 그 풍경을 바라만 봤지만, 올해의 첫날은 평소와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은 썰렁했고 사람들은 모이지 않았으며 TV에서 하는 연말 프로그램 또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본인은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 무엇을 했냐면 말이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에 심취한 나머지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에서야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요새 랜선 귀농을 한 탓에 나름 농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엔 현실 농부들도 새해는 까먹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즐겨 보는 유튜버의 라이브 방송을 보거나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새해를 맞이했지만, 올해는 방에 틀어박혀 게임에 혈안이 된 채로 무의식 중에 새해를 맞이해 버렸다.


    사실 본인은 자정 한 시간 전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그 말인즉슨 곧 다가오는 새해를 인지는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킨 이유는 새해가 더 이상 설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여파로 지원했던 봉사활동과 대외활동이 번번이 취소되고, 2학기에는 학교에서 동기들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짓밟히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과 했던 연말 약속들이 모조리 취소됐다. 작년 초에는 "그래도 연말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2학기에는 "연말쯤이면 상황이 나아져서 친구들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서 12월이 되었고, 정부는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해 버렸다. 연말 약속을 모두 취소하라는 당부에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더라.


    2021년도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대외활동에 합격해도, 친구와 약속을 잡아도, 학교가 대면 개강을 공지해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취소될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더 이상 무기력감을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올해 휴학을 선언했다. 집에 박혀 대면 강의만도 못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얻은 것 하나 없는 학기를 보낼 바에 휴학을 하고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게 더 보람찰 것 같았다. 적어도 그런 시험들은 쉽게 취소되지 않더라고. (사실 벌써 자격증 하나를 취득했는데, 이다음에 글 써볼 생각이다.)


    새해가 되어도 무기력하게 게임만 하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컴퓨터를 껐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확인하니 친구들로부터 새해 인사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정말 새해가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게 해 줘 고맙기도 했고, 마음 써서 보내준 메시지일 텐데 답장이 두 시간이나 늦어버려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제야 한 명 한 명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답장을 하다가 정말 와 닿는 새해 인사말을 읽었었다.


너무 완벽할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너 자신에게 너무 단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노력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곁에 있어줘!


    고등학생 때부터 나를 지켜봐 온 친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말하기 민망하긴 한데, 사실 메시지 읽고 나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애써 합격한 봉사활동이 시작도 전에 취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마음이 조금 힘들 때긴 했다. 근데 툭 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힘든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어쩌면 나를 가장 모르는 건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여름쯤이었나. 주변에 취직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그에 비해 아직 뭣도 없는 대학생인 나를 비교하고 있으면 빨리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것저것 지원했었다. 하지만 운이 나쁜 건지 지원한 활동마다 번번이 취소되니, 마음은 조급한데 되는 것 하나 없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일쑤였다. 이런 식으로 마음의 여유 없이 닥치는 대로 도전하다가 시작도 못 해본 채 실패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너무나 선명해 보였나 보다.


    그래서 올해는 거창한 걸 바라지 않으려 한다. 휴학 계획은 이미 지난달에 거창하게 짜 놨지만, 그 계획에 너무 얽매이지는 않으려고. 올해도 계속 대외활동은 지원할 예정이지만 취소되면 취소되는 거지. 자격증 공부도 할 테지만 시험이 연기되면 연기되는 거지. 그저 작년의 나보다 한 걸음만이라도 나아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2021년을 살아가 보려 한다.


    설레지도 않았고 별로 기대되지도 않는 2021년의 시작이지만, 원래 기대감이 낮을수록 생각지 못한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어떤 신년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계획이 무엇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2021년도 작년 못지않게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지만 작년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우울한 한 해가 되셨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혼잣말

    참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글을 연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도 과제에 시험에 휩쓸려 다니던 석 달 내내 브런치에 돌아올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시 글을 연재할 때를 위해 나름의 소재들을 쟁여 오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야심차게 기획했던 소재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 시국" 때문에 시작을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다. 아무튼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 곳을 잊지 않았다는 거다. 올해는 급하게 해치워야 할 일이 있지 않은 한 격주 금요일마다 다양한 소재로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여유가 된다면 매주 하고 싶긴 한데, 일단은 격주 연재부터 천천히 시작해 보겠다. 급하면 체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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