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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pr 02. 2021

도대체 왜, 글을 쓰시나요?

열다섯 번째 기록

며칠 전 '마음'이라는 내 유튜브 재생목록에 담아 놓았던 영상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출처: 유튜브 채널 '티키틱 : 백스테이지'
혹시나 이 영상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서도
학업이 됐건 그 이외의 것들이 됐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해야만 하는 본인의 이유를 돌아보는 게
의미 있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확고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시작하면...
금방 지칠 것 같아요.


    영상  화자는 유튜브 채널 티키틱 이신혁 감독이다. UCC 유행하던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이 스쿨  제작한 장본인이라 설명한다면 소개하는  도움이  듯하다. 해당 영상에서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그리고 막학기까지 꾸준하게 학업과 창작 활동을 병행해  자신의 삶과  안에 담겼던 남모를 고충을 털어놓는다.


    사실은 꽤나 오래전부터 이 감독님의 영상을 즐겨 봤었다. 멋모를 중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감독님처럼 좋아하는 일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향유할 줄 알았다. '대학 가면 공부도 하고 글도 써야지' 했던 어린 시절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렸고, 그토록 꿈꾸던 대학생이 된 지 벌써 2년이 꽉 차 버린 지금이다.


    오늘은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다섯 시간 동안 알바를 했다. 오전에 공부를 끝마치지 못한 탓에 퇴근 후 카페를 찾아 강의를 마저 듣고는 괜시리 집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 오후 8시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다. 이 시간은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에 대한 여유로운 반항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의 병행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브런치 소개글에도 써놓았듯이 나는 보통의 대학생이다. 수강신청에 울고 웃고, 강의 시간에 이따금씩 졸기도 하며, 강의가 끝나면 언제 졸았냐는 듯 세상 말간 눈망울로 동기들과 함께 점심으로 뭘 먹을지 얘기하는 보통의 대학생 말이다. 다만 그들과 내가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이 곳에서 글을 연재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삼고초려 끝에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승인받고 처음으로 올린 글에서는 내 인생에서 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글을 짧게 간추리자면, 글은 나의 자존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기혐오가 나를 잠식하던 때에도 글을 쓰는 나만큼은 혐오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나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 또한 내가 쓴 글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만큼은 나를 힘껏 사랑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글을 썼던 이유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왜 글을 쓸까. 글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던 스무 살의 나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쓰겠다고. 꼭 한번 글로 세상을 흔들어 보겠다고.


난생 처음 작가님이라 불린 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나태함이라 하던가. 나도 그 본성을 꺾진 못했나 보다. 반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글을 연재하던 열정은 작년 가을이 되자 사그라들었다. 개강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중간고사만 끝나면 다시 연재해야지. 이 과제만 끝내면 글 써야지. 이번 발표만 마치면 진짜 글 올려야지. 그렇게 미루고 보니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올해의 첫 금요일에 다시 연재를 시작하며 다짐했다. 격주로 글을 올리겠다고. 왜 격주냐고? 매주 올리는 건 힘들잖아. 내가 무슨 전업 작가도 아니고. 글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사실 이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처음 이곳에 글을 올렸을 때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 합리화 섞인 올해의 다짐은 저번 주에 벌써 깨졌다. 격주대로라면 원래 저번 주에 글을 올렸어야 했는데 안 올렸거든. 알바하느라, 혹은 자격증 공부하느라 말이다. 글을 올리기로 한 날에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괜히 마음 한 켠이 찔린다.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막 째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도 할 말이 있다구. "자자, 잘 들어 봐.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취업난이 심각해. 당장 따야 하는 자격증만 여닐곱 개에 영어도 공부해야 되는데, 그거 다 하면 취업이 프리패스일 것 같아? 절대 아니지. 저건 기본값에 불과해. 우대 조건이 아니라 자격 조건인 셈이라구. 취업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여유롭게 글이나 쓰고 앉아 있는다니, 철없는 소리잖아. 글은 이다음에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써도 돼. 그러니까 글은 잠시 미뤄두고, 지금은 취업에만 집중할래."


출처: 지수(@js_glowglow)

    자기 합리화가 열정을 집어삼키려 할 때쯤 이신혁 감독의 영상을 본 건 엄청난 타이밍이었다. 피드에 저 영상이 뜨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기약 없이 이 곳을 떠났으리라. 영상을 보는 내내 병행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힘들다고 투정 부리며 글을 쓰지 않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 병원에서 링거를 맞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목소리에는 그때의 힘듦이 담겨 있었지만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병행하는 삶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이제 병행하는 삶에 당당해지고 싶어졌다.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기 싫어졌다. 그래서 무작정 쓰고 있다. 무슨 소재를 다루든, 길이가 얼마나 되든, 재미가 있든 없든 간에 일단 쓰고 본다. 여기서부터 나의 병행하는 삶은 다시 시작이라 생각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는 대부분의 작가님들은 병행하는 삶을 살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감히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병행하는 삶을 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 병행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한 가지만 해도 빠듯한 하루임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대체 왜, 글을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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