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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pr 11. 2021

믿었던 꿀교양에 발등 찍혀보셨나요

열여섯 번째 기록

상대평가로는 잘 평가한 점수입니다.


    성적 이의신청 후 닷새를 꼬박 기다려 받은 교수님의 답변이었다. 내 성적은 입력 오류가 아니었다. 고로 이 수업에 들인 나의 노력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평범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난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A+를 받겠냐는 마음으로 매 수업에 성실히 임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랬듯 내 예상과는 다른 점수를 안겨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성적이 공지되었던 그 날, 난 꿀교양에서 B+를 받았다.




꿀교양과의 잘못된 만남


    재작년 여름, 나는 거의 모든 교양의 강의평을 뒤져보고 있었다. 매 학기 느끼지만 시간표 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교시 수업은 내내 잠과의 혈투를 벌일 게 안 봐도 비디오니 패스. 연강인데 건물 간 거리가 너무 멀면 지각하기 십상이니 패스. 점심시간은 인간미 있게 비워줘야 하고. 대학생이라면 공강도 하루 정도는 있어야지.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강의들이 앞의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착한 시간대에 있을까? 전혀 아니다. 시간대는 좋은데 강의평에 테러가 났거나 가뭄이 든 경우, 반대로 시간대는 애매한데 강의평에 별이 5개나 뜬 경우. 여기에 피켓팅을 방불케 하는 교수님들의 티켓(?) 파워까지 고려하면, 시간표 작성은 비로소 완벽한 난제로 거듭나게 된다.


    수강신청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난 교양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평가 기준이 깐깐한 명강의와, 평가 기준이 도로 위 차선마냥 낮은 꿀강의. 고민 끝에 전자를 택해 수강신청을 무사히 마쳤긴 한데... 사건의 발단은 9월의 정정기간이었다. 무려 1시간 반 가량의 OT를 듣고 혼이 빠진 나는 지금 교양을 철회하고 꿀교양을 신청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았다. 더군다나 지금 듣는 강의에서 노력한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동요되기도 했고. 결국 나는 명강의를 버리고 꿀강의를 택해버렸다. 이 결정이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 채.



내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네?


    꿀강의의 첫 수업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2시간 남짓한 강의 내내 딴짓을 하는 다수의 학생들. 이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강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 문맥이 맞지 않는 문장과 오타가 수두룩한, 그래서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교재. 새 날개만치 책장을 앞뒤로 퍼덕거려야 하는 수업 전개.


    뭐지 싶었다. 아차 싶기도 했다. '꿀강의'라는 단지의 꿀은 내가 예상한 맛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연 꿀을 주문했건만 인공 꿀이 와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한 선택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게 유튜브와 인터넷 쇼핑 화면이었지만 스스로 휴대폰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솔직히 "아예" 안 봤다고는 못 하겠다) 강의를 따라가며 필기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방과후 가벼운 보충을 통해 메꿨다. 그래도 수업이 영 입맛에 맞지 않는 건 똑같았기에, 학기 내내 참 곤란해하며 공부했다.


    그래도 이 정도 하면 학점은 잘 주시겠지, 하면서 말이다.



믿었던 꿀교양에 발등 찍히다


    우리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라 하는 종강. 드디어 했다. 엉엉. 다사다난한 학기를 마치고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성적이 하나씩 공시되기 시작했다. 학점 때문에 마음 고생이 유달리 심했던 학기였던지라 대학 합격 조회할 때만큼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을 확인했다. 뭐, 잘했든 못했든 노력한 만큼의 성적을 받은 것 같아 아쉬움은 없었다. 문제는 바로 그 꿀교양의 성적이 공시되었을 때였다.


    "B+이라고? 말도 안 돼."


    성적을 확인하자마자 뱉은 첫 마디였다. 처음엔 부정했고, 다음엔 의심했다. 입력 과정에서 오류가 났나 싶었다. 그만큼 나를 믿었고, 또한 절박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교수님께 이의신청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꼬박 닷새를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렸고, 이의신청 기간 마지막 날에야 짧막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의 시험 점수와 리포트 점수를 고려했을 때, 상대평가로는 잘 평가한 점수입니다.


실수가 아니었다. 내 점수는 입력 오류가 아니었다. 내가 강의에 쏟아부은 노력은 B+로 평가된 것이다.



가치만큼의 성과


    사실 B+은 나에게 그리 낯선 성적이 아니다. 이번 학기에 있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왜 난 이 강의에서 받은 B+을 인정하지 못했을까? 강의에서 무엇 하나라도 얻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국내대학 1학기 평균 등록금이 약 336만 원이라 한다. 이를 수강한 강의의 수, 대략 8로 나누면 한 강의당 42만 원의 가치가 부여된다. (물론 다른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지만 학업이 주된 기관인 점을 생각하여 이해 부탁드린다.) 대학생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액수다. 유익한 강의를 듣고 높은 점수를 받는 건 부여한 가치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이라 생각한다. 높은 점수가 아니더라도 강의를 통해 나의 생각이 한 뼘 자랐다면 또한 부여한 가치만큼의 성과를 낸 것이다.


    그렇다면 난 이 꿀교양에서 가치만큼의 성과를 냈을까? 아니. 부여한 가치에 비해 무엇 하나 얻지 못 했다. 그래서 점수라도 얻어가려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또 그래서 그 점수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 단지 속 꿀은 나에게 그저 쓴 맛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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