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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May 16. 2021

나의 20대를 기록하는 방법

열일곱 번째 기록

너도 사진 찍어줄까?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열에 일곱은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한사코 사양한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나의 모든 움직임, 심지어 눈을 깜빡이는 것까지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 없으면 아쉬울 거라는 말에 겨우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사진 속 피사체는 나와 영 딴 판일 뿐. 안 하던 짓을 해서 기분만 망쳤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카메라를 피해 다니거나 얼굴을 가리는 게 자연스레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동안 쌓인 내공으로 지금까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긴 해도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할 때다. 증명사진 예쁘게 찍히기 어렵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실물만큼만 사진에 담기는 것이다. 근데 그게 정말 어렵더라. 광대와 사각턱은 평소보다 더 거세게 자기주장을 하고,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다고 생각해왔던 눈은 쥐방울만 해지고, 코는 펑퍼짐하게 퍼져버린다. 화장으로 커버가 될까 싶어 풀메이크업을 하고 사진을 찍어도 보았지만 결국은 입술만 바르고 찍은 고3 수능 사진보다 못하더라. 그때 들었던 씁쓸한 생각이 있다. 앞으로는 절대 애써서 예쁘게 찍히려 하지 않아야지. 그래야 실망이라도 덜 하니까!

출처 - 대학일기


    이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성격에다 친구들이 정성껏 사진을 찍어줘도 받아먹질 못하는 얼굴 때문에 건질 수 있는 사진이 별로 없다 보니 내 SNS는 황무지다. 가끔 마음에 드는 내 사진을 올리기는 하지만 죄다 얼굴 한 부분은 가려져 있는 채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카메라 앞에만 서도 몸이 굳었던 내가 얼굴 조금 가린다고 해서 사진을 찍히다니! 카메라만 보이면 피해 다녔던 그동안의 세월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20대가 되니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든 순간을 사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젊었을 때를 조금이라도 더 남겨야 한다며 자신을 멋들어지게 꾸미고는 소위 핫플(핫 플레이스)이라 불리는 장소에 찾아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처음에는 위기감이 들었다. 같은 20대를 보내고 있는 처지인데,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은 순간을 기록하고 있구나. 이러다 나의 20대는 제대로 기록도 못 해본 채 끝나는 게 아닐까. 30대가 되어서 20대의 순간을 많이 기록하지 못한 게 후회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들었지만 무턱대고 그들의 시류에 편승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 사진빨을 못 받으니까... 괜히 사진 많이 찍어놨다가 디지털 쓰레기만 만들 뿐이다. 특히나 스튜디오에서 각 잡고 찍는 사진들은 함부로 버리지도 못한다. 그래도 내 얼굴인데 다른 쓰레기랑 뒤섞여 버려질 생각을 하니 차마 쓰레기통으로는 향하지 못하겠더라. 그렇게 모아둔 애물단지 사진들만 벌써 몇 장째인지 세지도 못 한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전환해봤다. 꼭 사진으로만 20대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어떤 방법으로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이미 다른 방법으로 20대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곳에서, 키보드로 써내려 가는 글로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할 수 없는 그 순간만의 생각들이 글로서 기록되어 있다. 지금처럼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느낀 점을 적어둔 글, 한때 관심 갔던 분야에 대해 논문까지 찾아가며 쓴 글 등등. 물론 글을 쓰는 것만으로 사진이 하는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20대를 글로 기록하는 것만이 나의 진솔한 면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귀차니즘인지 매너리즘인지 모를 것이 나를 덮친 탓에 작년만큼 성실히 글을 올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발길을 아예 끊지는 않을 거다. 이곳이야말로 나의 순간들을 내 방식대로 담을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사진 찍는 걸 아주 포기한 건 또 아니다. 결과물은 이전과 도긴개긴이겠지만 나를 향하는 카메라를 애써 막지 않으려 한다. 마스크 덕분에 눈만 잘 나와도 사진이 잘 나오더라. 1년 반이 다 되어가도록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데 신물이 날 지경이지만,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마스크에게 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도 마스크는 제발 벗고 싶다. 벌써부터 마스크에 땀 차는 여름이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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