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의 아이들을 소비하고 계신가요?

콘텐츠 시장 속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유월

육아 프로그램이 한 차례 붐을 일으킨 건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MBC의 '아빠! 어디 가?'를 필두로 하여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SBS의 '오! 마이 베이비'가 그 뒤를 이었고, 프로그램에 나온 아이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에도 카카오톡을 둘러보면 한창 인기를 몰던 아이들의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에 등록해 두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1세대 아이들이 아기 티를 벗고 초등학생으로 거듭나기도 했고, 2세대 아이들이 1세대만큼의 열풍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자 육아 프로그램의 인기도 점차 사그라드는 듯했다.



긴 시간에 걸쳐 유일하게 생존한 육아 프로그램이자 그마저도 시청률에 고전하고 있던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가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게 된 게 아마 2018년부터였을 것이다. 코미디언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이 내뿜는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박주호 선수의 딸 나은이가 TV에 처음으로 얼굴을 비추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뒤이어 윌리엄의 동생 벤틀리와 나은이의 동생 건후가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으면서 슈돌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 또한 이 시기에 출연하던 아이들의 매력에 빠져 1년 동안 줄곧 슈돌을 애청했던 지라, 매 회마다 아이들의 언행이 가져오는 파급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윌리엄의 말버릇인 "혹쉬"가 유행어로 번졌다든가, 건후의 분노 짤이 카카오톡에서 이모티콘처럼 쓰였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아이들은 유명해지고 있었다. 더불어 새로운 아이들(하영이와 연우, 잼잼이 등)이 영입되어 인기를 몰면서 아이들을 향한 시청자의 애정은 커져만 갔다.



아이들을 두고 벌이는 어른들의 머리싸움


어느 순간부터 슈돌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일종의 팬덤이 생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유튜브 클립 영상의 조회수를 보면 어느 아이가 인기가 많고 적은 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댓글 수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렇듯 아이들마다 화제성의 격차가 커지다 보니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 때면 핸드폰으로 다른 일을 하거나 아예 채널을 돌려 버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 많은 코너가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처럼, 인기 많은 아이들은 마지막 순서를 앞다투어 방영되던 식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마지막 시간대만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제작진은 이 룰을 깨고 순서를 무작위로 섞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고루 볼 수 있게 하는 공평한 방식인 동시에 전체 시청률을 올리려는 일종의 전략임을 알았기에 시청자였던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어느 한 집의 분량이 적게 나오는 날이면 유튜브 댓글창에는 다른 아이들 분량을 없애고 우리(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들 분량을 늘려 달라는 의견이 종종 보였고, 어린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사소한 싸움이나 감정 기복이 담긴 영상에서도 "이제 보니 첫째는 늘 동생을 챙기기만 한다", "둘째는 사이에 끼어서 부모님 사랑을 못 받는 것 같다"라는 식의 추측성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아이들이 메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출연 좀 시켜달라", "OO씨(채널 주인)보다 아이들이 더 보고 싶으니 얼굴 보여달라"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마치 아이들을 맡겨 놓은 것마냥 아이들의 브이로그를 원하는 일부 애청자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까지는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인터넷의 영역이기에, 아이들에게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중파에서 얻은 인기는 아이들의 사생활까지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밖에만 나가면 아이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투성이인 데다 아이들의 의사는 존중하지 않은 채 그저 귀엽다는 이유로 그들을 쓰다듬는 등의 선을 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치 인형처럼 다뤄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아이들을 콘텐츠화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시청률이 보여주는 아이들의 제철


조회수로 아이들의 화제성을 짐작할 수 있었듯이, 아이들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시기도 조회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해 주었던 주인공들 중 한 집의 클립 영상 조회수는 작년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어리고' '귀여운' 아이들을 선호하는 콘텐츠 시장 속에서 밀려난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아이들의 탓이 아니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팔다리가 길쭉해지는 게 당연한 것이고, 얼굴의 골격이 변하는 게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이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거침없이 내다 버리는 게 일상인 곳이니까.


아이들은 제철음식 따위가 아니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성장하여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는 초심자, 그중에서도 제일의 초심자일 뿐이다. 아이들의 모든 시간을 사랑으로 지켜봐 줄 수 없다면, 모든 아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향한 애정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콘텐츠 시장으로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육아 프로그램도 자본주의적인 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이제는 서서히 막을 내려야 되지 않을까.


오늘도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슈돌 클립 영상을 추천하지만, 내가 쉬이 그 영상을 클릭할 수 없는 이유다.




Cover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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