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Jan 30. 2022

팔로워가 한 명 줄었다

스물네 번째 기록

팔로워 109명. 눈 비비고 봐도 109명이다. 얼마 전까지는 분명 110명이었는데. 누군가 나를 언팔로우했다. 무료한 기분이 싹 달아나고 언짢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팔로워 목록을 찬찬히 살핀다. 자기 게시물에 하트를 안 눌러줘서 그랬나. 아님 내가 게시물을 올리는 게 뜸해서 그랬나.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가? 온갖 가정을 대입하며 사라진 1명을 찾아보지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팔로워들을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심심해서 접속한 SNS에 괜히 기분만 상해버렸네.




입시를 마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온갖 계정을 만들면서 다짐했던 몇 가지 원칙이 있다. SNS에 내 삶을 휘둘리지 말 것. SNS는 어디까지나 추억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함이지, 나를 과시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탈이 날 게 뻔했다. 그렇게 나 홀로 SNS와 거리 두기를 시작한 첫 해는 나름 순조로웠다. 이 시기 동안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SNS보다는 연락처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내 일상을 공유하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귄 사람들과 맞팔로우를 맺는 일이 잦았으니까. 괜한 고집으로 인스타 계정 안 만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맛을 들인 건 재작년부터였다. 도통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 SNS로라도 사람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들 하나같이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는 빈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목 늘어난 잠옷 차림에 머리카락을 질끈 묶어놓은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더라. 그래서 친구와의 약속이나 가족여행 등 외출할 일이 생기면 외적인 것에 집착하게 됐다. 뭘 입어야 사진에 예쁘게 나올까. 옷장에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쇼핑 좀 해야겠다. 요새 집에만 있어서 살이 붙었을 텐데 전날 저녁은 굶어야겠다. 어느새 나는 SNS를 위한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IU Palette MV


어쩌다 잘 나온 사진을 올리면 하트 수가 늘어나는 게 얼마나 짜릿하던지. 가끔 친구들이 입에 발린 칭찬을 댓글에 적어주면 다음 게시물은 더 예쁜 사진으로 올려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약속 때마다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가방을 사고, 또 액세서리를 샀다. 물론 그것들이 약속 이후에도 꾸준히 쓰이는 일은 드물었다. 꾸준히 관리하던 가계부 어플은 업데이트를 하든 말든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팔로워 수팔로잉 수에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공개 계정이라지만 지금 내 팔로워 수는 팔로잉 수에 비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팔로워 수를 늘리는 건 어려우니 팔로잉 수라도 줄여보자 싶어 수시로 팔로잉 수를 줄여나갔다. 소심한 성격 탓에 지인들을 언팔로우할 수는 없었고, 대신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등 기존에 팔로잉하던 유명인들의 계정을 언팔로우했다. 혹자는 그깟 숫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겠지. 하지만 지인들의 계정을 볼 때마다 한없이 초라한 내 팔로워 수를 어떻게든 커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행동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 건 옷장에 더 이상 새 옷을 넣을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인터넷으로 배송시킨 옷이 약속 전날까지 배송 준비 중에 머물러 있자 안달이 났던 나는 집 근처 쇼핑몰에서 비슷한 옷을 사 왔다. 새 옷을 입은 채 거울 앞에서 "이 정도면 됐다!"를 외치고는 옷걸이를 꺼내기 위해 옷장을 열었는데, 옷걸이는 커녕 새 옷이 들어갈 공간이 당최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옷가지는 내가 꾸준히 입는 옷들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여태껏 해왔던 건 계속해서 일회용 옷을 비싸게 사들이는 짓이었다.


회의감에 직격타를 맞은 나는 즉시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안 입는 옷들을 꺼내 대형 쇼핑백에 넣었더니 어느새 쇼핑백 두 개가 터질 듯한 모습으로 옷가지를 힘겹게 담아내고 있었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가격을 짐작하지조차 않았다. 한 번 입고 버릴 옷인데 뭐하러 비싼 돈 주고 사 입었을까. 옷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던데 지구한테 미안하네. 한껏 죄책감을 느끼며 헌 옷 수거함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날 이후로 과소비 습관을 깔끔하게 고쳤다고는 못하겠다. 여전히 SNS를 보면 뭐라도 사고 싶어지고, 그렇게 며칠 고심 끝에 산 옷인데 막상 한두 번 입고 손길이 안 가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있으니까. 그래도 SNS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중이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는 빈도만 줄여나가고 있을 뿐인데 소비욕이 많이 줄어든 걸 체감하고 있다.


가끔 화려하게 꾸민 내 또래의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내가 다시 안 올 20대를 허투루 보내고 있나 하는 조바심이 들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청춘 또한 긴 법이니까. 잠깐의 조바심에 속아 외면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 차분히 내면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할 때인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예쁜 옷 보면 눈 돌아가긴 한단 말이지.



* Cover Photo by Nick de Parte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목적지는 모르지만 한 걸음 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