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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an 22. 2022

목적지는 모르지만 한 걸음 더

스물세 번째 기록

고등학생 때는 내가 쏟는 노력이 어디로 가고자 함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그렇듯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 참 열심히도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그저 성적에 맞춰 들어온 대학교. 이곳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고자 하는 것과 가고자 하는 곳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캠퍼스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어느 누구에게도 확답을 얻을 수 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아, 나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노력하는 건 익숙했다. 직접 목표를 찾아다니는 건 어색했다. 그래서 일단 눈앞에 놓인 것을 해치웠다. 중간고사, 리포트, 쪽지시험, 조별과제, 그리고 기말고사. 학기 중에는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저 주어진 것을 완벽히 해내는 것만 해도 스물네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넉 달 동안의 단거리 마라톤을 완주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적이 공시될 때까지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대학생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 며칠 뒤 이번 학기 학점이 나오면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거지. 아, 방학 동안 뭐 해야 하나.


두 달이 조금 넘는 방학을 아르바이트에만 갈아 넣는 짓도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아마 2학년 여름방학부터일 테다. 슬슬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할 텐데. 맞다, 대외활동은 언제 하지. 그렇게 대학생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무수한 모집 공지가 나를 반긴다. 저마다 활동비 지원, 수료증 지급, 상금 수여 같은 혜택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1학년 때처럼 머리에 꽃밭만 가꾸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어디라도 지원한다. 어떻게든 내가 살아온 스무 해 남짓의 인생을 대외활동에 비벼대며 뽑히려고 안간힘을 쓴다. 근데 놀랍게도 다 떨어진다. 제갈량도 삼고초려밖에 안 했는데 고작 대외활동 한번 하려고 이만큼의 노력을 들인다고? "어림도 없지!" 하면서 토익으로 우회하는 것이다.


출처 대학일기


순서가 좀 뒤엉키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내 대학생활이 이렇다. 근데 다른 대학생들도 나랑 별반 다를 거 없을 거다. 길 가는 고학년 대학생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최소 토익 800점대 후반에 오픽 IH, 전공 관련 자격증은 한두 개 정도 따놨을 테다. 분명히 노력으로 일궈낸 스펙인데, 문제는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펙이란 거다. 이 정도는 취준생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이라는 거지. 이러니까 취준준생이라는 말이 생기는 거다.


대학에 들어와 햇수로는 3년, 실질적으로는 2년의 대학생활을 했다. 그런데도 난 아직 방황하고 있다. 분명 진로를 설정하기 위해 휴학까지 했는데 1년 동안 얻은 거라곤 한능검, 컴활, 전공 자격증, 그리고 토익 점수다. 쉼 없이 공부하긴 했는데 그 노력으로 일궈낸 게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스펙이라는 말이다.


이제 와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은  그저 남들이 하니까 그대로 살아온 것만 같다. 분명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남들 따라 살지는 않을 거라 다짐하고도  다짐했는데, 결국 나는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평범해지지 않기 위해 작년의 내가 무작정 저질러놓은 일을 시작하기까지 50일 남짓한 이 시점에서 나는 또다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고 내 주제에 도전이라는 단어조차 버겁다는 느낌까지 든다. 1년에 꼭 두세 번씩 마음에 감기가 드는데, 올해는 조금 일찍 온 것 같다. 얼마 전에 부스터 샷을 맞았는데 설마 그 때문은 아니겠지.


복학을 하면 3학년이 된다. 아직까지도 어디를 목적지로 정해두어야 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일단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건드려보려고 한다. 짧은 인생 살아오면서 얻은 신념이라고는 단 하나다. 뭐든 해놓으면 손해 보지는 않는다. 생각만 하다 부딪히지 말고 부딪치고 생각하자. 때로는 생각보다 실제가 더 싱거운 법이니까. 그러니까, 목적지는 모르지만 올해도 묵묵히 걸어 나가 보련다. 걷다 보면 어딘가 도착하긴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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