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본인은 장르물을 즐겨 보는 편이다. 영화 '부산행'을 개봉하기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다가 개봉 첫날 보러 갔을 정도로! 어렸을 적 부모님과 손 잡고 봤던 영화 '미이라'로 시작된 내 장르물 인생, '시그널', '감기', '판도라', '킹덤' 등을 거쳐 장르물은 나에게 극호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말았다. 가끔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을 만난다 하더라도 장르물이라면 일단 눈부터 돌아가 버리는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학창시절에 봤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는 간만에 넷플릭스에 구독료라 쓰고 기부금이라 부르는... 내는 보람이 있겠구나 싶어 한껏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 1화를 틀었는데... 오랜만에 그 기대를 저버린 작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실종되었던 현주가 힘겹게 몸을 가누며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온다. 만신창이가 된 현주는 과학 선생님인 병찬이 자신을 감금하고 주사를 맞혔다며 말하고는 이내 쓰러지고. 놀란 학생들과 선생님은 현주를 보건실로 옮겨 응급 처치를 받게 했지만 심한 저체온증에 발작 증세까지 나타난 탓에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다. 구급차가 왔다 간 후 학교는 병찬이 현주를 감금했다는 사실에서 파생된 온갖 소문으로 떠들썩해진다.
한편 현주를 살폈던 보건 선생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현주에게 진정제를 맞히면서 물린 상처 때문인 듯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체온이 낮아지고 눈이 심하게 충혈되며 코피를 흘리는 등 증세는 악화될 뿐이었다. 결국 의문의 바이러스에 완전히 감염되어 버린 보건 선생님은 이성을 잃은 채 학생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이를 시작으로 학교 전체는 순식간에 감염자들로 득실거리는 지옥보다 더한 생지옥으로 내려앉는다.
줄거리로만 보면 전형적인 좀비물인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집중을 깨뜨리는 요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1화 극초반, 학생들이 교실 청소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창가 쪽이 뭔가 어색하다 싶었다. 이후 장면들에서는 쭉 자연스럽길래 이를 잊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되면서 어색한 배경이 배가 되어 나타나 버렸다.
위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인물 뒤의 배경이 어딘가 인위적이다. 자연광이라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설상가상으로 창문 밖 배경 또한 어색하다. 영화 알못이라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세트장에서 촬영했다는 걸 굳이 찾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옛날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세트장 느낌과 비슷한 결이랄까.
특히 이 장면이 인터넷에서 세트장 티 나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것 같다. 나 또한 여기서 유독 어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태양은 하나인데 그림자가 도대체 몇 개죠'라는 댓글에서 그 이유를 깨달았었다. 많은 분들의 의견으로 미루어 보아 조명의 문제였던 것 같은데, 세트장이라는 환경에서 완벽히 현실적인 연출을 해내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을 것임을 이해하지만 아쉬움은 감출 수가 없다.
이전부터 서로 마음이 있던 아이들이 뭉쳐 다니는 터라 어느 정도의 러브라인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매달려서 연애 상담하는 장면에서는 '굳이 저기서...?' 싶은 의문뿐이었다. 현실의 고등학생이라면 체대 준비생이 아닌 이상 벽을 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이외에도 좀비들이 거리를 좁혀오는 상황에서 이삭을 잃었다는 이유로 망연자실하는 온조에게도,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겠다고 하는 청산에게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으로라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외에도 학교 안팎으로 정의롭기만 한 평면적 인물이 많아서,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빌런 취급받는 나연이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손수건 장면은 사람이기를 저버리긴 했지만...
그리고 귀남을 통해서 단조로운 스토리를 바꿔보고자 한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부활한다. 추락하고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워낙 잦다 보니 후반부에서는 배우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또한 귀남이 주인공 무리에게 훼방을 놓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안 그래도 단조로운 스토리에 오히려 단조로움을 더 추가해 버린 격이 됐다.
개인적으로 은지 캐릭터가 참 아까웠다. 후반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귀남과의 재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설정에 비해 말로가 다소 허무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을 잘 활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드라마 내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길어야 8부작 정도겠거니 했는데 12부작이 웬 말인가. 안 그래도 워킹데드 보다가 질질 끌다 못해 스크류바마냥 베베 꼬여버린 스토리에 질려 중도 하차한 전적이 있는지라 러닝 타임 긴 장르물은 기피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웹툰이 재밌었으니 원작을 믿고 시청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역시 장르물은 짧고 굵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추측해 보건대 하나의 드라마에 담아내고자 한 내용이 너무 많았던 탓인 것 같다. 정치인 박은희를 통해 사명감을 보여주고자 했고, 소방관 남소주를 통해 딸을 향한 부성애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그 와중에 청산 엄마와 아기를 출산한 박희수를 통해 모성애를 보여줘야 했고, 계엄사령관 진선무를 통해 책임감을 보여줘야 했다. 여기에 학교에 갇혀 있는 아이들 각자의 사연과 러브라인까지 하면 12부도 모자랐을 듯하다.
이렇다 보니 초반에는 야심 차게 등장시킨 인물이 뒤로 갈수록 존재감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적으로 지민과 양궁부 민재. 동료들과 힘을 합쳐 싸우던 인물들이었지만 좀비에 물려 낙오된 이후 아무도 그들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편집으로 인한 허점이겠지만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2주 연속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 대중성은 확실히 잡은 듯하다. 가볍게 본다면 킬링타임 용으로 이 작품만 한 게 없고, 실감 나는 좀비 분장과 동작에 더불어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우수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느낀 불편함에 사로잡혀 세계를 사로잡은 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준영과 청산이 끝까지 좀비들과 사투하는 장면은 어느 좀비물과 견주어도 나무랄 데 없는 명장면이었고,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 어른들의 도움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곱씹을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부디 시즌 2는 이전의 결점을 보완하여 더 좋은 에피소드로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