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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ug 22. 2022

요리 곰손 자취생의 최후

유학생 삼시세끼 절망 편

한국에서의 삼시세끼는 부족할 것 없었으며 외려 넘치는 줄을 몰랐다. 주부 9단 어머니의 보우 아래 손 하나 까딱 않고 영양소가 풍부한 맛있는 식사를 누릴 수 있었고, 때로는 외식을 통해 별미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무슨 음식이든 뚝딱 만들어내시는 엄마를 보며 요리는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 타국에 혼자 떨궈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출국하기 전 친구와 갔었던 솥밥집. 정갈한 상차림이 좋았다


자자한 명성대로 독일은 저렴한 물가를 자랑했지만 외식만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기본 만 원대를 웃도는 메뉴판에 물조차도 돈을 내야 마실 수 있는 이곳의 식당들은 나를 궁지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툭하면 나가서 먹던 생활은 끝. 이제 내 손으로 직접 삼시세끼를 챙겨야 하는 새로운 생활이 막 펼쳐지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터득한 요리는 파스타였다. 제일 보편적인 음식인 데다 면과 소스 두 가지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마저도 면이 익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설익은 파스타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맛없는 음식을 아깝다는 이유로 애써 욱여넣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이때는 여간 서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처지가 딱해서 그랬나.


소시지만 넣어줘도 파스타 맛이 확 살아난다. 브로콜리는 덤


파스타에 신물이 날 때쯤 전기밥솥을 구매했다. 야심 차게 냄비밥 도전하다 태워먹을 냄비들의 가격이 밥솥 하나를 거뜬히 뛰어넘으리란 예감에 통 큰 소비를 해버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한다. 밥이 해결되니 계란 프라이나 소시지만 곁들여도 한 끼를 때울 수 있었으니까. 한창 바쁘던 학기 중에는 파스타와 밥만 해먹고 살았던 것 같다.


문제는 시험기간이었다. 휘몰아치는 과제에 발표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날의 연속에 요리까지 해야 한다니. 설상가상 형편없던 요리실력은 더 퇴화될 게 있었는지, 내가 만들고도 먹지 못하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면서 요리에 손을 놓아버렸다. 간편한 냉동식품과 패스트푸드에 그만 몸을 맡겨버리고 만 것이다.


케밥과 누들박스, 그리고 햄버거


고된 타지 생활로 받은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과식으로 이어졌고, 시험기간 내내 입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씹어댔다. 햄버거, 피자,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대포장 따위 없는 독일의 식품업계는 내 몸을 불리고도 남았다. 시험을 마치고 유달리 무거워진 몸을 체중계 위에 얹히니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쩐지 바지들이 나를 버거워하더라니. 고3 때도 찍어본 적 없는 최고 몸무게를 달성하자 경각심을 느꼈다. 당장 빼야 해.


죽어도 운동은 싫었기에 식단만으로 살을 빼려 했다. 1일 2식에 저녁은 샐러드. 결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식단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건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간 고칼로리에 절여진 내 몸은 바뀐 식단에 적응하지 못했고 끝내 입이 터져버렸으니까. 그렇게 폭식을 하고 난 다음날에는 죄책감에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그다음 날부터 다시 말도 안 되는 식단을 이어가다 얼마 못가 또 폭식을 했다.



폭식과 단식을 수 차례 반복하다 보니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과자 코너 앞에서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하자' 하는 유혹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과자를 잔뜩 사와 속이 메슥거릴 때까지 음식을 욱여넣는 일이 두어 번 있고 나서야 내가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소화제를 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정하는 것이었다. 하루 두 끼에 간식을 먹되 칼로리를 극한으로 제한하지 않고, 매일 30분씩 운동하기. 오후 7시 이후 단식은 못 지킬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단식보다는 운동에 힘을 더 들이고 있고, 앞의 두 가지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잘 지켜내고 있다.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니 먹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살이 빠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 몸에 맞는 바지를 몇 벌 사 왔는데, 옷을 입어도 몸이 편안하니 하루빨리 살을 빼야 한다는 마음이 사라지는 게 신기했다. 사람 참 단순하구나 싶더라.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고 있는 요즘. 간단하면서도 맛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던 때가 여전히 그립기는 하지만, 이렇게 떨어져 살면서 가족의 품이 얼마나 소중하고 따스한 건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참 많은 것을 알아가는 걸 보니 아직도 난 성장하고 있나 보다.


벌써 여섯 시가 다 되어간다. 밥 안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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