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한 여름밤의 성찰
머나먼 타지에서 수학하고 있는 나에게 한국과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친숙한 통로는 SNS다. 이곳에 온 뒤 친구들의 게시물을 구경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는 빈도가 부쩍 잦아졌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성가셔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나마 그들에게 닿고 싶은 마음은 매번 자중하는 법을 모른다.
시험 기간만 되면 활동이 뜸했던 SNS를 몇 번씩이나 들락날락하는지. 독일의 시험 기간은 7월 초에서 중순, 늦으면 말까지 이어지는지라 한국에서는 이미 종강을 하고도 남았을 테다. 한국에서 학기를 마친 친구들이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을 여행하고, 값나가는 걸 사고, 재밌는 걸 즐기는 게시물을 구경하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공부를 때려치우고 밖으로 나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그날도 부러움에 몸서리치며 바쁘게 엄지손가락을 굴리다 문득 든 생각에 손짓을 거뒀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산다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짓일지도 몰라.
독일에서의 생활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문화, 인간관계, 인종차별 등 한국에 머물렀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문제들을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건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나의 확신이 폭- 하고는 무너져버린다.
20대를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즐기는 후회 없는 나날일까, 아님 안정적인 30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시간일까. 앞서 지나왔던 10대는 성공적인 20대의 시작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20대 또한 미래의 나에게 행복을 양보해야 하는 시기라면, 난 도대체 언제쯤 반쪽짜리 행복 대신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을 감히 평가절하했었다. 무난한 직장에 들어가 적당한 노력을 하고 조금은 빠듯한 월급을 받으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사는 건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겪은 수많은 좌절은 내 생각을 바꿔놓기 충분했다. 큰 꿈을 꾸든 작은 꿈을 꾸든, 혹은 꿈을 꾸지 않고 흘러가든, 그 길에 놓인 행복의 크기에 만족할 수 있다면 사실 그걸로 된 것이었다.
이때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건실한 청년이라기보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억척빼기 같았다고나 할까. 미래에 투자한다며 매일같이 공부에 매달리는 나를 사람들은 여지껏 이런 시선으로 바라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회의감이 몰아쳤다.
그렇지만 나 이제 깨달았어, 하고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책상 앞에 앉았던 게 새벽 두 시 즈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공부에 매달려 어찌저찌 시험을 끝내고 나니 벌써 7월 중순이고. 또 한 번의 여름이 시간에 맞춰 정직하게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종강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또다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그날 밤 느꼈던 회의감은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안하다. 이렇게 살다가 온전한 행복은 누려보지도 못 한 채 눈을 감는 게 아닐까. 이렇게 산다고 해서 분홍빛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닌데. 하지만 배운 게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내는 것뿐인데 뭐 어쩌겠어. 우선은 여태껏 해왔던 대로 살아보려고. 계속 가다 보면 뭐라도 있겠지, 하며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막연히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