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이유

멈추고 헤아릴 때

by 유우



사진에서 감도 ISO는 빛에 대한 필름이나 센서의 민감성을 말한다. 과거의 나는 사진 용어의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매력에 빠져 있었고 특히 '감도'에 이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도가 높을수록 빛에 민감하게 반응해 적은 빛으로도 밝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입자가 거칠고 노이즈가 생긴다.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은 '감도 6400' '갱생프로그램'이었다. 삐뚤어진 애를 데려다가 곧 죽을 것 같으면 살려내고 심리상담사 역할을 자처했다. 삐뚤어진 애는 자신의 치부를 건드려도 반박을 못하겠고 옆에 있으니 좀 나은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입자가 거칠어져도 아등바등 어둠을 밝히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실패했다. 애정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뭔가 있을 줄 알고 감도를 올렸지만 그곳엔 찍고 싶은 피사체가 없는 격이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일종의 연민도 없었다는 것을 '나은 삶을 사는 쟤'를 보며 잠깐의 뿌듯함을 느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삐뚤어진 애들은 이전 친구들을 만나자 반나절만에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방식을 잘못 배운 건가.

아니 내가 누군가를 왜 돌보고 있는 거지?

따로 또 같이 그저 존재하는 거잖아.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쾌활함으로 포장되어 탈없이 지낼 수 있지만 여전히 '너른 발'이나 '두루두루 친한' 같은 건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누구도 아닌 순전히 내 탓이다. 나의 센서 탓. 타인과 시간을 보낼 때면 반복되는 패턴이나 숨은 의도 같은 것들이 감지된다. 물론 악의가 아닌 잠재의식에 가까운 언행일 뿐이다. 흔한 자기 과시, 성과주의, 저급한 취향, 지적하는 습관 같은 것들에 알레르기가 생겨 벌겋게 부풀고 간지러워진다. 이때까진 참을만하다. 그러나 한 번쯤은 잠재의식이 아닌 시커먼 의도를 지닌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 상대의 시커먼 의도가 감지되고 검증되면 피가 뜨거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은 의도가 내겐 동기이자 그럴듯한 취미가 된다.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들었던 정보를 조합해서 '왜'라는 이유에 다가간다. 그의 결핍, 그의 피해의식, 그의 인식, 그의 가정사 모든 퍼즐이 자리를 찾아가고 상대는 어느새 발가벗겨졌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삐져나온 시커먼 기름 덩어리(치부)를 거머쥔 채 나를 노려본다. 그제야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파고드는 삽질을 멈추고 뿌리를 싹 뽑아버리려는 호미질도 멈추고 잔인한 나 자신을 혼낸다. 읊조리는 시 구절처럼 서로 모르게 돌아선다. 죄책감을 느끼며 문을 걸어 잠근다. 스스로 갇히게. 상대는 내가 어디까지 다녀왔는지 알지 못한다. 발견은 처음부터 선명하지 않고 감도를 이용해 수많은 것에 반응하다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낮밤이 바뀌어 왕왕 울어대는 신생아는 통잠자는 아기보다 비교적 흔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키우기 힘든 애라는 꼬리표를 흔하게 달아준다. 나는 밤새 울다 지쳐 낮에는 잠만 잤다고 했다. 친가 식구들은 자는 나를 발로 툭툭 건드리곤 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신생아가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인지 의문스럽지만 나는 환영받지 못하고 '또 태어나버린 딸'이었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귀한 존재로 살아갔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그럴 때마다 형태를 잡다 만 그림처럼 텅 비어버린 상태가 된다. 또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해감도 안 된 조개 미역국을 받아 든 엄마, 1월의 날카로운 추위에도 이불빨래를 해야 했던 엄마, 수시로 볼멘소릴 들어야 했던 엄마는 나보다 더 깊은 공허를 마주했을 것이다. 명절이 다가오자 (나를 발로 밀던 무식한) 사람들이 모일 생각에 속이 메스꺼웠다. 손에 땀이 차고 심장이 뛰었다. 조용한 성격이라 티가 나진 않아도 이따금씩 너무 울었다. 네다섯 살 즈음에 엄마는 여전히 시집살이 중이었으므로 제사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날따라 나는 악을 쓰고 울었다. 뭘 본 건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는 엄마는 적잖이 당황했다. 식구들은 조용히 좀 시켜라 성화였고 결국 엄마는 나를 불 꺼진 화장실에 가두었다고 한다. 무서워서 더 울어대는 애를 안고 나왔다는데 엄마는 그 짧은 순간이 오늘 아침까지도 사무친다고 말했다. 엄마는 잊을 수 없는 날이고 나는 기억에서 사라진 날이다. 느껴지는 대로 드러내는 일은 그날이 마지막이어야 했다. 나는 누군가를 이해해 보려 끝까지 이유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인데 내게 왜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걷기도 전에 숟가락에 그려진 무늬를 보고 가족들의 수저를 놓아두던 아기였고, 걸을 때쯤 종이를 가져와 그림을 그리던 아기였고, 갖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 어린이였고, 고개 숙이고 소리 없이 우는 게 최선인 어린 시절이었다. 뜨거워지고 녹다가 압력이 가해지면 뚜껑이 날아갈 줄 알았지만 어째선지 자랄수록 냉담해졌다.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폴더에 모았다가 휴지통에 넣고 자주 비워주었다. 방문기록도 사용내역도 삶도 리셋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꼭 물건 하나를 사면 망가진 하나를 버렸다.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곁을 내어주었다. 출근하기 전 거울을 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어 보였다. 이렇게 웃을 줄 알면 나는 환영받고 자란 거라고 이렇게 웃고 넘어가라고 오늘도 모른 척하고 살아보자고 길을 나섰다. 우체국 L 박스 다섯 개를 싣고 발 닿는 곳에 가서 살고 일하고 쓰러지고 또 일했다. 그게 지금의 내가 된 이유다. 육신 밖에서는 밝히거나 파고들 필요가 없는 모종의 이유. 신이 아닌 '오랜 시간 곁에 남겨진 것'만 믿는 이유.


차라리 한치도 자라지 못한 가벼움이랄지 재수 없는 태도랄지, 술이나 퍼마시고 담배나 푹푹 피우면서 회피할 용기랄지, 욕이나 막말이나 하면서 "전 솔직한 사람입니다" 주장할 만큼 안하무인이었으면 생각한 적도 있다. 이 문장 자체가 나로 살아가는 고통의 크기를 말해준다. 아무거나 잘 삼켜지지 않았다. 아무대서나 잠이 오지 않았다. 공공장소에 가면 소음이 머릿속을 휘젓고 비명을 들으면 당사자에 비하는 고통을 느꼈다. 몰랐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고, 서운하다는 말이 배부른 소리 같았다. 매일 스스로를 달랜다. 타인을 주인공으로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 '저 사람은 이런이런 상황에 놓여있어.' 모종의 이유를 상상하면서 그 자신보다 더 깊이 헤아리고 싶어 한다. 다 갖다 버리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을 찾은 것이 바로 '이야기'였다. 이제는 박스 다섯 개를 싣고 어디든 다니거나 리셋할 수 없다. 깨달음에 기댈 시간이 없다. 사랑해야 하고 찍고 싶은 피사체를 찍어야 한다. 입이 찢어져라 웃는 사람이 아니라 고갤 젖혀 목젖을 보이며 웃겨 죽겠다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평소 좋아하는 학자의 강의를 찾아보았다. 한 달 새 세 번째 보는 강의였다. 두 번째까지는 집안일을 하며 라디오처럼 틀어놓았다. 오늘은 어째선지 처음 들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학자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목소리의 떨림은 물론 말을 더듬고 '막' '이제' 같은 부사를 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의 감각이 오롯이 전해졌다. 3회 차가 되어서야 그 떨림을 알아보았다는 점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신호를 놓쳤을 리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삶은 다시 보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 지나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자주 봤다고 사정을 다 알 수 없고 상대도 내 협곡을 쉽사리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의 세상에선 기근에 시달리고 눈을 뜨는 것조차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어린데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대신에 정의롭고 어여쁜 딸을 얻었지. 그런 시간을 견뎌야 귀한 보석을 얻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가 세수를 할 때마다 옷자락이 젖으면 잔소리 대신 발받침을 놓아주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이유를 헤아리며 살아간다. 이유를 파헤치기보다는 모종의 영역에 두는 것이 좋겠다. 아는 것과 헤아리는 것은 쓰임과 사랑의 거리만큼이나 먼 감각이 아닐까.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둥글다고 해서 모났다고 해서 이 과정을 스킵할 수는 없다. 자의와 타의, 선의와 악의, 호재나 악재 모든 것을 떠나 멈춰 서서 헤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감도를 헤아리는 방향으로 던진다면 우리가 어떤 모양이든 질감을 가졌든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갇힌 채 안전하게 사는 건 내게 꼭 맞은 옷이다. 오늘의 나는 시련을 딛고 농담을 할 용기를 가졌다는 것에 감탄하는 하루를 살았으므로 일기장엔 '모종의 이유로 조금 불편하지만 멋진 옷'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