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

비와 소월에게

by 유우


분명 그랬다. 손톱보다 작은 반지처럼, 즐겨 먹던 젤리처럼 그랬다. 검은 배경 위 오직 하나의 흰 에스터리스크처럼 그랬다. 한스 짐머의 음악처럼 웅장한 심장소리는 바깥을 향하고, 내 10만 km의 혈관은 자궁을 향했다. 아이를 육안으로 처음 보았던 그날, 주삿바늘 앞에서 척척 팔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하혈을 하자 세상에 없던 두려움을 느꼈다. 의사는 누워서 지내라고 말했다. 퇴사를 알린 후 임산부 카드를 목에 둘렀다. 마지막 퇴근길까지 한 번도 자리를 양보받지 못했다. 그만큼 나와 임산부는 어울리지 않았다. 만석 버스에 한 시간을 서서 눈꼬리를 훔쳤다. "아가 가지 마. 엄마처럼 어디든 잡고 딱 버텨 제발." 자취방 가구를 합쳐서 들어온 신혼집에 아기 침대가 놓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새것이었다. 자신을 데리고 살기도 고단한데 어째선지 배가 불러올수록 활기가 돌았다. 저녁을 조금 먹은 탓인지 애를 낳을 힘이 없었다. 생사를 오가는 고통인데 간호사들은 그제도 어제도 했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새벽 두 시에 들어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아이를 만났다. 의사가 큰 애 낳느라 고생했다고 손을 톡톡 쳐주지 않았다면 끝인지도 몰랐을 고통. 아이는 평범한 3.46 kg이었다. 평범한 아이를 낳기에는 내가 너무 작았다. 잠깐 나갔던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푸르스름하고 연약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손이 여러 번 허우적거리다 엄지를 잡았다. 세상이 멎는다.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리고 비가 왔다. 비가 내 품에 왔다. 나는 '소월'이라는 이름을, 남편은 '비'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태명이었던 '비'로 출생신고 해야지 생각했던 날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끝없는 하혈로 아이를 낳았던 분만실에 다시 누웠다. 오로가 쌓여 일어난 일이라고 천 명 중 한 명이 있을 법한 일이라고 혈압이 너무 낮아 마취가 어렵다고 그렇게 마취도 없이 자궁을 다 닦아내야 했다. 체중은 출산 전보다 줄고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지를 못해 산후조리도 할 수도 없었다. 생명을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강박이 되고 때마다 자신을 갈아서 연료로 썼다. 여기저기 쓰라리고 아파도 슬픈 줄을 몰랐다. 그때 내 세상에는 아이가 다쳤을 때, 아이가 아플 때, 아이에게 온전한 무언가를 해주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슬픔이란 없었다. 그때는 분명 그랬다.


아이는 가슴팍에 볼을 대고 잤다. 한 팔로 안아도 쏙 들어왔다. 100일을 넘기자 아이가 스스로 안겼다. 목을 타고 한쪽 어깨에 자릴 잡았다. 몽글몽글한 볼이 느껴졌다. 우리가 안을 때는 모든 시름이 멎는다. 그래서 슬픈 줄 몰랐다. "엄맘맘맘맘마... " 새벽 다섯 시에 옹알옹알 소리가 들린다. 엎드려 놀다 나를 발견하면 햇살같이 웃었다. 우린 끝없는 대화를 했다. 아이를 안고 소월길을 누볐다. 길이 험해서 외풍이 심해서도 아니고 우리는 어딘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껏 해오던 일도 사람도, 이 시끄러운 도시도 벗어나야만 살 것 같았다. 제주에 내려가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이는 제주의 자연처럼 특히 그렁그렁 눈물이 고일만큼 아름다운 날처럼 자랐다. 뾰족한 물건을 집어 들면 "안대~ 이옴해(위험해) ~" 무언가에 지친 날에는 " 엄마 ~ 조금만 힘내보자! "(어깨를 조물조물) 아파서 드러누운 날에는 그 볼록한 이마를 내 이마에 대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이 눈물이 내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나의 슬픔이 아이의 안위로부터 발생하듯 아이의 슬픔도 내가 되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고 제주 시내에서 우연히 심리검사를 했을 때 '고위험군 전문병원을 찾으세요'라는 문구가 나왔다. 상태를 간과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즈음 공황증세가 찾아왔다. 트리거를 찾을 수 없었다. 숨이 가쁘고 손이 뻗뻗했다. 아이가 있을 때는 세탁실이나 화장실로 도망쳐서 증세가 나아질 때까지 나오지 못했고 아이는 문 밖에서 무섭다고 소릴지르고 울었다. 아이를 아름답게 키워내는 것 말고는 다른 건 잼병이었다. 아이의 성장을 백업하는 일만 해도 변화무쌍한 나날인데 입사와 퇴사는 반복되고 자영업은 늘 그렇듯 겉만 보기 좋았다. 물난리 앞에 탈 것이라고는 스티로폼뿐인 상황. 내가 임산부일리 없었던 시간들처럼 내게 우울은 어울리지 않았고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민감한 감각들은 육아로 인해 너덜너덜했고 정서적 고갈상태는 불안을 가속화시켰다. 받고 자란 사랑이 있으니 사랑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없는 안정감은 뒤지고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평생을 자력으로 살았는데 '어려운 형편의 주부'가 되자 작은 물건 하나 맘 편히 고를 수가 없었다. 평생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 급할 때마다 언니에게 신세를 졌다. '욕심 없고 질투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자존심이 더럽게 세구나' 웃어 보이면서 홀로 무너진 가슴을 달랬다. 가끔 촬영비를 벌면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고 언니에게 보냈다. 우리는 물려받은 것도 없고 대단한 커리어도 없지만 정말이지 맨땅에서 최선을 다해 버텼다. 온 가족들이 가라앉지 않게 서로를 붙잡아 주었다. 이후 공황을 이겨내려 5회 정도 카운슬링을 받았다. 명상도 했고, 1년간 글쓰기 모임도 했다.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진이 책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것들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나 자신을 다시 빚어냈다. 빈 곳에 흙을 채우고 촉촉하게 물을 묻혀 거친 표면도 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남편도 자신의 길과 방식을 찾아 나갔다. 육아는 '잘'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낳았다고 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심연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 것이 옳고 알아차린다고 해서 캐물어서는 안 된다. 신발을 돌려놓는 것, 슬쩍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는 것, 알림장 귀퉁이에 귀여운 얼굴을 그려놓는 것, 매일 안아주는 것. 디즈니에서는 허그 법칙이 존재한다.


'아이에게 포옹을 받을 때, 아이가 먼저 포옹을 풀 때까지 절대로 먼저 놓지 않는 규칙'


아이가 미끄러져 소파 모서리에 부딪쳤다. 치실질을 하다 놀라서 치실을 이에 매달고 마구 뛰어왔다. 괜찮냐고 여기저기 살피는 나를 아이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엄마 나 괜찮아. 소리만 크게 난 거야. 나 머리도 괜찮고 팔도 다리도 다 괜찮아" 나의 불안을 잠재우려 아이는 한 곳 한 곳 이상 없다고 말했다.

"그러게 다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엄마가 큰 마음을 갖고 싶은데 잘 안 돼."

"소중해서 그렇지. 안아. 안으면 다 괜찮아"


모든 걸 쏟아부어서 키워 낸 아이에게 '넌 그렇게 키운 아이야'라고 말하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생각조차 삼키는 날들이 많다. "하.비가 엄마 아들이라서 느무느무느무 좋다. 니가 있어 좋!타아~!" 어디서 들어본 노래나 부르면서 꽈악 껴안고 뽀뽀를 퍼붓는다. 내년이면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함께. 몸과 마음을 다 갈아 넣고도 당장은 고지가 보이지 않고, 결과도 알 수 없는 그런 게 삶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는 노인이 되어야만 "아이고 잘 키웠네" 소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넘어져 피부가 벌건 채로 나를 달래주는 아이의 성장이 내겐 너무도 값지고 또 미안하다. 불안은 화산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부글부글 끓으며 작은 틈을 노리고 있다. 매일 안아주는 남편과 질세라 품을 파고드는 아들의 (절대로 먼저 놓지 않는) 포옹이 속에 흐르는 피를 멎게 하고 무서운 생각을 멎게 하고 영원한 평온을 꿈꾸게 한다. 오늘만 살아도 된다고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말 "안아"


아파서 화요일 연재를 놓친 것도 어제가 처음이고, 오늘처럼 꾸밈없이 주절거린 적도 처음이고, '아. 과연 우린 민감한 게 맞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생각한 것도 처음이다. 남들은 편안하게 지나치는 것들이 우리에겐 도전이 되곤 한다. 무던하게 사는 사람들, 조금 둔감한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르겠다. 모서리로 서기에는 아주 미세한 균형 포인트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담백하고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내가 좀 유별나다. 사실은 저 소리가 내겐 너무 크다. 실은 과한 향을 맡으면 속이 불편해진다. 실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 세 시간 이상은 좀 힘들다. 담담하고 솔직한 고백만큼 좋은 건 없다. 내가 처한 세상이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오늘은 다르다는 인식과 이해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서로에게 라이너스의 담요가 되어 주면서 눈을 마주치면 양팔을 벌리는 오늘.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아선지 일어나면 "엄마 안아줘"라고 말하는 녀석을 끝없이 껴안아도 되는 오늘. 모처럼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