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양기(10)

부모님 부양하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합니다.

by 유염

다시 (8)의 시점으로 돌아가자


이후로도 인천 작전역에 있는 구옥 아파트도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버지 병원이 가장 애매하여 포기하였고

가좌역 부근에 있던 빌라도 최종 가격조율이 잘 되지 않았다.


점점 회의감마저 느껴지던 찰나에

기금e든든으로 받는 내 집마련 디딤돌 대출의 생애최초 요건에 충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조건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내가 알아보던 시점에는 3억 이하 LTV80%였다

그러니까 집의 가치 중 80%는 디딤돌 대출이 나온다는 희망회로를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아파트와 빌라의 조건이 같은지 알아보았고 명시된 것은 동일하게(80%) 적용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은행에서는 조금 차이가 발생한다고 하여 70%라고 계산해야 안전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여기까지 알아봤을 때 4인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구매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고

우리 가족은 2인을 어떻게 나눌지 회의를 하였다.

엄마/작은언니 : 아빠/나/고양이 - 파국

엄마/나/고양이 : 아빠/작은언니 - 파국

(어머니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의 불평불만을 들으며 모시고 살 자신이 없었고,

내가 혼자 고양이까지 케어하는 것 역시 힘겨울 것 같았다.


엄마/아빠 : 나/작은언니/고양이 - 모두의 평화

역시 이 조합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부모님은 항상 싸우지만 역시 부부라 그런지 제법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40년 넘게 같이 살았으니) 거부감은 없으셨다.

단지 우리가 연락 끊고 살까 봐 그것만 불안해하셨다.


처음에는 구매한 집에 부모님을 살게 하고 기존에 살던 월세집에서 내가 거주하려고 하였는데 이 부분은 작은언니가 돈은 돈대로 쓰고 분명 후회할 것이라며 극구 반대 하였고 알아보니 실거주 요건도 있어서 어차피 내가 살아야 했다


그렇게 2인과 고양이 거주로 조건이 바뀌었고

예산도 현재 집은 둬야 했으므로 3000만 원은 빠지면서 내가 모아두었던 현금 3천만 원에서 추가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고 목표 매매가는 2억 5천 이내였다


조건이 간소화되니 괜찮은 조건이 더 많았고

한번 갈아타지만 역세권에 위치하여 둘 다 출퇴근이 용이하고

서울에 거의 빌라뿐이어서 빌라 거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동네에서 (집값은 떨어지더라도 상관없음) 아주 나중에(노후) 팔리긴 팔릴 것 같은 집은 만났고

총평수는 작지만 방이 3개여서 공간을 나눠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단점이 화장실이 너무 노후했다는 점이었는데

이때 기왕지사 빚내서 돈 쓰는 거 지르자는 생각이 들었고 2억이나 2억 2천이나 매한가지라는 마인드로 ‘집수리‘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 주인분은 10년 동안 본인이 살고 계셨는데 그 기간 동안 출장이 잦아 집을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다른 방은 10년에 비하면 세월의 흔적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당초 금액에서 내가 화장실을 수리해야 된다는 명분으로 부탁해서 400만 원을 깎았더니 감사하게도 수용해 주셔서 실제 거래금액은 조금 더 낮아질 수 있었다.


주택 매매금 이외에 들었던 부대비용은

복비 약 100만 원

법무사비 (등기비 포함) 약 140만 원

생애최초라 취득세는 면제였다.


집은 정했고 이제는 대출이 나오느냐가 문제였다.


대출의 순서는 기금e든든에서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에 집 가치를 평가를 하러 나온다.

나오는 감정가에서 80%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이때 위에서 말한 아파트와 빌라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부분이 이것이었는데, 보편적으로 감정가가 아파트는 거의 거래 금액으로 결과가 나오고 빌라는 살짝 낮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거래금액 기준으로는 70%라는 것


평가 금액의 결과는 예상대로 10% 정도 낮은 2억 2천이 나왔고 여기서 80%인 1억 7천600만 원이 디딤돌 대출로 나왔다. 남은 돈은 보유하고 있던 모든 주식을 팔고 신용대출과 함께 메웠다.


집주인이 되었다.


기깔나는 집은 아니지만 한 번도 집주인이 되어보지 못한 집에서 자란 나에게 ‘집을 보유했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엄청났다.

이것만으로도 부모님 댁 월세를 내드리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작은언니는 ‘집’에 대한 큰 뜻이 없어서 전부 내 돈과 내 명의로 진행했고 같이 살게 될 것이니 가전을 해주었다.(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거기에 식비와 집 통신비를 담당하기로 하였고, 공과금은 내가 내기로 하였다.

우리는 원래 죽이 잘 맞아서 걱정은 없었다.


이 긴 여정에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치얼스.

작가의 이전글부모님 부양기(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