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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Mar 10. 2020

여수 온 김에 들렀어

엄마랑 여순천여행-순천편

여수 밤바다를 보고 순천으로 왔다. 자정이 다 된 야밤에 순천 여행? 은 물론 아니고, 잠자러 왔다. 여수에서 제법 괜찮다 하는 숙소들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예약이 꽉 차있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인데 적어도 깔끔은 해야 하지 않겠나? 찾고 찾다 찾은 게 순천이다.


"엄마, 순천 와봤어?"

"아니~ 순천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 아는 사람도 없는데."


서울에서 순천까지 약 330km. 이동시간만 약 3~4시간.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여수 밤바다 보러 왔다가 어쩌다 이렇게 순천까지 왔는데, 이왕 온 거 순천도 한번 둘러보고 가면 어떨까 싶었다.


"온 김에 순천도 보고 갈까?!"

"그래! 언제 또 내려오겠냐 여기까지."


손가락이 바빠졌다. 서울행 기차표를 취소하고 당장 내일 잘 곳을 찾았다. 그 사이 엄마는 '순천 여행'을 검색했다. 여행은 역시 급으로 계획해야 제맛! 아쉬웠던 마지막 날 밤이 다시 설레는 첫째 날 밤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엄마랑 여행하는 이유

꼬꼬마 시절 엄마와 민속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내 손을 붙잡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녔다. 거의 반강제로 끌려다닌 난 집에 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나를 달래려 당시 나의 대통령이었던 겜보이*를 소환했다. 겜보이 2시간. 평소 같으면 뭐든 다할 수 있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왜 그랬는지 거절했다. 그러자 엄마 안에서 잠자고 있던 사자가 깨어나고 말았다. 저잣거리에서 호되게 혼이 났다. 결국 온 동네 구석구석을 다 구경하고서야 지옥 같던 민속촌에서의 하루를 끝낼 수 있었다.

*겜보이 : 80~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정용 오락기


그로부터 어언 30년.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민속촌을 찾았다. 순천 낙안읍성. 늦은 밤 엄마가 검색한 순천 여행의 첫 번째 코스다.

30년 전 엄마와 나의 민속촌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서로의 손은 이미 어색해진지 오래. 손대신 팔을 붙잡고 이제는 내가 엄마를 끌고 다녔다.


"엄마, 여기 봐봐.", "엄마, 여기 서봐!", "엄마, 이쪽으로."


다행히 엄마는 어릴 적 나처럼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다. 다만 벤치가 보이면 자꾸 은근슬쩍 다가가 사뿐히 내려앉을 뿐.


"ㅋㅋㅋ 아이고~ 벌써 힘드셔? 옛날엔 어떻게 데리고 다녔대?"

"에이~ 그땐 젊었으니까~"


난 엄마가 여행을 통해 세상의 많은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길 바랐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그랬듯. 입장이 바뀌어보니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떼 부리는 나를 어르고 달래 가며 데리고 다닌 엄마처럼 이제는 내가 그럴 차례인 것 같다. 비록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들려오는 곡소리가 가슴 아프게 하지만 두 다리로 쉬엄쉬엄이라도 걸을 수 있고, 꾸역꾸역 하루를 버틸 체력이 있는 한 엄마와의 여행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엄마, 저기가 낙안읍성 뷰 포인트래. 저기서 사진 하나만 더 찍고,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낙안읍성 공식 '전망 좋은 곳'에서 내려다본 낙안읍성
할머니댁에 온 것 같은 마을 풍경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들
낙안읍성의 정문인 동문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옹성을 쌓았다. 그 뒤 낙풍루(樂豊樓)는 봄을 상징하고 풍년을 기원한다.


꽃보다 엄마

언제부턴가 엄마의 카톡 배경은 꽃이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있는 꽃을 클릭하면 그 뒤로 연이어 알록달록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꽃박람회다. 엄마가 원래 이렇게 꽃을 좋아했었나? 궁금증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말끔히 풀렸다. 아마 엄마의 핸드폰이 놀랐을 것이다. 갑자기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셔터 소리가 끈이질 않았고 생전 쓰지도 않는 기능들을 알려달라며 열정적으로 꽃을 찍었다.


"여기 설까?", "잘 나와?", "그냥 거기서 찍어!"

 

평소 같은 자리에서 한번 이상 찍지 않는 엄마였는데, 이 포즈 저 포즈 바꿔가며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자 친구에게만 당하곤 하는 구박도 당했다.


"아유~ 쫌 이쁘게 좀 찍어봐!"

"(끙...) 아니, 아까 낙안읍성에서 벤치 찾아 헤매시던 아줌마 맞수?ㅋㅋ"

"ㅋㅋㅋㅋㅋㅋ"


폭풍 촬영을 마치고 드디어 찾아온 휴식시간.(이제는 내가 벤치를 찾아 헤매고 있던 참이다;;;)


"근데 카톡에 왜 꽃만 올려? 같이 찍은 사진도 많은데..."

"에이~ 엄만 이제 쭈글쭈글해서 안 이쁘잖아. 보기 싫어~"


담담한 엄마의 대답이 가슴을 쿵! 내리쳤다. 그런 이유였다니... 나이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말로는 괜찮다 하지만 그 말은 들어서 그런지 내 눈엔 엄마가 유난히 서글퍼 보였다.


"꽃보다 엄마가 더 예뻐!"


라고는 오글거려서 차마 말 못 하겠고^^;;; 대신 엄마를 위해 두 가지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진의 주름을 없애는 마법, 그리고 주름마저 예쁘게 찍는 방법. 엄마의 프사*에 엄마가 나오는 그날까지.

*프사 : ‘프로필 사진’을 줄여 이르는 말.
봉화언덕
네덜란드 정원
핑크뮬리, 진달래밭에서, 그리고 억새와 함께


독창적 엄마 시점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시선이 있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봐도 각자가 느끼는 것은 다 다르다. 난 지극히 대중적인 시선을 가졌다. 남들이 보는 것만 본다. 엄마는 정 반대다. 남들이 보는 것보다는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좋게 말해 독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엉뚱하다.

몇 년 전 한라산을 갔을 때, 엄마는 감탄을 금지 못했다. 당연히 한라산의 절경 때문이겠구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산세를 눈 앞에 두고도 가파른 절별 위에 설치된 계단식 등산로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이런 데다가 길을 만들어서 설치를 해놓을 수 있겠냐며, 사람이 한 일이 맞냐며, 세상 참 기술이 좋아졌다며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엄마의 엉뚱한 시선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해 질 녘 무렵 순천만습지. 여기서도 엄마의 시선은 평범하지 않았다. 갈대숲 탐방로는 노을을 입은 금빛 갈대숲 한복판에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수많은 인파 사이,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엄마 뭐해? 다리 아프셔?"

"아니~ 습지 위에다 어떻게 데크를 설치했다니~ 푹푹 빠질 텐데... 가라앉지 않으려나?”

"아유~ 엄마! 그런 거 말고, 노을이랑 갈대를 봐야지!!!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한 거야..."


이럴 때마다 입이 닳도록 잔소리를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한결같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감상평이 쏟아진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반포기 상태다. 앞으로 엄마랑 계속 여행을 하려면 그냥 엄마의 엉뚱한 시선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노을 지는 갈대숲 탐방로





< TRAVEL NOTE >


낙안읍성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다.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순천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성곽, 중요 민속자료 등의 다양한 문화재뿐만 아니라 소리의 고장으로서 가야금병창, 판소리까지, 유무형의 자원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내에 주민이 직접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민속마을로 불린다. 이 외에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 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도 선정되었다.

[가는 법]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 순천역 출발 택시로 약 34분 소요
 - 순천역에서 68,63,61,16번 버스 이용 약 1시간~1시간 30분 소요(낙안읍성 3.1 운동 기념공원 정류장 하차)

[이용시간]
 - 1월,11월∼12월 : 9AM-17:30PM
 - 2∼4월,10월 : 9AM-18PM
 - 5∼9월 : 8:30AM-18:30PM

[입장료]
 - 어른 4,000원 (만 65세 미만)
 - 청소년 및 군인 2,500원 (중고등학생)
 - 어린이 1,500원 (초등학생, 7세 이상)
※ 50% 할인(단, 주소지 확인자에 한함)
   - 순천시민
   - 남해안ㆍ남중권 : 여수, 광양, 고흥, 보성, 진주, 사천, 남해, 하동
   - 자매도시 : 구례, 완도

[문의] 061 749 8831


순천만국가정원

2013년 순천에서 열린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폐막 후 그 회장을 개조하여 지금의 순천만국가정원을 만들었다. 순천만습지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수목원, 습지센터, 세계정원 구역 등 다양한 산림 휴양, 체험을 위한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들뿐만 아니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 특히 세계정원은 각 나라의 특징을 잘 살려내 실제 그 나라에서 찍는 듯한 사진을 연출하는 재미가 있다. 세계정원을 한 바퀴 쭉~ 돌면 걸어서 세계일주가 가능하다.

[가는 법] 전남 순천시 국가정원 1 호길 47
 - 순천역에서 택시로 약 6분 소요
 - 순천역에서 52, 66, 69, 67번 버스 이용 약 25~30분 소요 (국가정원(서문) 정류장 하차)

[이용시간]
 - 11월~2월 : 8:30AM-18PM
 - 3월, 4월, 10월 : 8:30AM-19PM
 - 5월~9월 : 8:30AM- 20PM
※ 야간 연장 운영 : 9.1~10.31(8:30AM-21PM)
※ 매표는 관람시간 1시간 전 마감

[입장료]
 - 일반(만 19~만 64세) 8,000원
 - 청소년(중고생) 6,000원
 - 어린이(초등학생) 4,000원
 ※ 순천만국가정원 입장권으로 순천만습지까지 관람 가능

[문의] 1577 2013


순천만습지

순천만은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남해안으로 돌출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의 사이에 있는 만이다. 남해안 지역에 발달한 대표적 연안습지. 갯벌에 펼쳐지는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 S자형 수로 등이 어우러져 다양한 해안생태경관을 보여준다. 갈대숲 탐방로에는 약 5.4㎢의 갈대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햇살의 기운에 따라 은빛, 잿빛, 금빛 등으로 채색되는 모습이 인상 깊어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갈대숲 탐방로를 쭉 따라가다 계단을 20여분 정도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곳, 바로 순천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용산 전망대에 다다른다. 해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든 수로가 S자로 흐르는 풍경을 만나 수 있다. 실제 사진작가들도 찾는 사진 명소 중 한 곳이다.

[가는 법] 전남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 순천역에서 택시로 약 15분 소요
 - 순천역에서 66, 67번 버스로 약 30분 ~40분 소요 (순천만습지 정류장 하차)

[이용시간] 매일
 - 1월,10~12월 : 8AM-17PM
 - 2월 : 8AM-17:30PM
 - 3월,9월 : 8AM-18PM
 - 4월 : 8AM-18:30PM
 - 5월~8월 : 8AM-19PM
 *관람시간은 8AM-일몰 시까지

[입장료]
 - 성인(20세~) 8,000원
 - 청소년, 군인, 중고생(14세~19세) 6,000원
 - 어린이(8세~13세) 4,000원

[문의] 061 749 6052


순천 빵지 순례 : 화월당 볼 카스텔라, 찹쌀떡 모찌

맛만 본다고 열었다가 식사를 해버렸다. 부드럽고 푹신한 카스텔라가 식감을, 꽉 찬 팥앙금이 달달함과 든든함을 책임진다. 말랑말랑 찹쌀떡 모찌는 입에 넣는 순간 사라진다. 혀에서 살살 녹아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화월당의 유일한 메뉴인 볼 카스텔라와 찹쌀떡 모찌의 맛의 비결은 바로 팥앙금.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꾸덕꾸덕함이 쉽게 물리지 않게 한다. 우유나 커피 없이도 목이 메이지 않는다.(물론, 우유나 커피가 함께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예약제로 운영되니 사전 예약은 필수! 그 중차대한 사실을 모르고 갔다가 빈손으로 나올 뻔했다. 다행히 기차 시간을 앞둔 우리에게는 특별히 만들어 주셨다는 친절한 사장님에 대한 미담을 남기며... 순천에 가면 꼭 한번 먹어볼 것!

[가는 법] 전남 순천시 중앙로 90-1
 - 순천역에서 택시로 약 6분 소요
 - 순천역에서 버스로 약 15분~20분 (중앙시장으로 가는 노선을 타고 중앙시장 정류장 하차)

[영업시간]
 - 매일 10AM-19PM

[메뉴]
 - 볼 카스텔라 1,700원
 - 찹쌀떡 모찌  1,200원

[예약 및 문의] 061 752 2016
화월당 과자점(Since 1928), 볼카스테라&찹쌀떡 모찌


참고 : 낙안읍성/순찬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 공식 홈페이지, 카카오 맵, 네이버 플레이스/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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