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전에 떠난 내 생애 첫 해외여행 - Episode Ⅰ
숙소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에어텔 상품을 찾았을 때 상품설명에 나와 있었던 추천코스대로 다니기로 했다. 첫 번째 코스는 머라이언 파크(Merlion Park).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MRT*역에서 내려 약 10분 정도 걸어가니 순백의 사자 같은 인어 아닌 인어 같은 사자, 머라이언을 만났다. 머라이언 주변은 인증샷을 찍고 있는 세계 각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도 왔으니까 찍고 가자! 대망의 첫 해외여행 사진이네.”
시원하게 물을 내뿜고 있는 머라이언을 배경으로 우린 서로 인증샷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냥 바로 다음 코스로 슝~
“음... 다음 코스는 마리나 베이 샌즈야.”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Singapore). 싱가포르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휘어진 세 기둥이 매끈하게 빠진 크루즈선을 받치고 있는 듯한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머라이언 파크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여 남는 게 체력이고, 자신 있는 게 체력이었던 우린 뚜벅이를 선택했다.
머라이언 파크에서 앤더슨 브릿지(Anderson Bridge)를 건너 열대과일 ‘두리안’을 연상시키는 마리나 베이 또 하나의 포토존 에스플레네이드 공연장(Esplanade Theatres)을 지나, 그리고 DNA를 본뜬 보행자 다리인 헬릭스 브릿지(Helix Bridge)를 건너 마리나 베이 샌즈의 쇼핑센터 더 숍스 앳 마리나 베이 샌즈(The Shoppes at Marina Bay Sands)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먼 여정이었다. 한낯 더위를 간과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얼른 쇼핑센터 안으로 돌진. 시간도 어느덧 점심때고 휴식 시간도 가질 겸, 여기서 해외여행 첫 끼를 먹기로 했다.
쇼핑센터 하면 역시 푸드코트! 첫 끼가 유명한 맛집이 아니라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막상 오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맛집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가서 주문이나 잘 할 수 있을지 약간은 부담스러웠는데 푸드코트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음식을 골라 메인 카운터에서 결제하고, 번호가 뜨면 찾아가는 방식. 처음이니까 연습 삼아 익숙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었다. 난 가이드북에 소개된, 싱가포르에서 꼭 먹어봐야 할 로컬 음식 BEST 중 ‘락사(Laksa)‘를 선택했다. 친구는 당기는 게 없었는지 고르고 고르다 이름에 치킨이 들어간 요리를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혹시나 입맛에 안 맞을 걸 대비해 익숙한 딤섬을 각자 하나씩 추가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역시 푸드코트! 여기까진 취향저격! 하지만 락사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츄릅~! 하는 순간, 낭패였다. 니글니글한 국물의 맛과 향이 배고픔을 싹 가시게 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는가 싶어 수저를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락사에 대해 찾아봤다. 원인은 코코넛. 락사 뿐만 아니라 코코넛이 들어가는 동남아 음식들은 대부분 그렇단다.
“나랑 안 맞네ㅋㅋㅋ”
내 식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 잡식성인 줄 알았던 나도 못 먹는 게 있었다. 결국 락사는 한 그릇을 그대로 남겼다. 딤섬 주문 안 했으면 어쩔 뻔. 싱가포르에서의 첫 식사는 허전하게 끝이 났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배가 채워지니 솔~솔~ 잠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밤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 오는 내내 설렘과 흥분이 잠을 이겨 한숨도 자지 못했다. 1분 1초가 아쉽지만 우리에겐 저녁이 있고, 밤을 불태울 계획이었기에 잠시 숙소로 돌아가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씻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뻗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니 어느덧 밖은 저녁이 다 되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야! 일어나! 너무 오래 잤다;;;”
알람 소리도 못 듣고 자는 바람에 저녁 일정이 늦어졌지만 덕분에 몸은 그만큼 더 개운했다. 밤을 불태울 준비 완료! 여행 첫날의 밤을 불태울 곳은 싱가포르 대표 나이트라이프 중심지 클라키 퀘이(Clarke Quay). 클라키 퀘이 MRT 역을 나와 싱가포르 강 쪽으로 걸었다. 강변이 가까워질수록 음악소리는 커졌고, 우리의 텐션도 함께 올라갔다. 그리고 곧 싱가포르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강가 야경은 실패가 없다. 우리나라 한강과 비교하면 동네에 있는 작은 천 정도 되는 강이지만 주변 조명들이 강물에 비쳐 클락키 일대를 더 환하게 비추었다.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고층 빌딩들이 있는 한강의 야경이 마음 차분해지는 세련된 야경이라면, 클락키의 야경은 두서없이 반짝반짝한 게 야시장 같은 활발한 야경이었다. 텐션이 또 한 번 업됐다. 그야말로 청춘들의 성지. 세계 각국 여행자들이 이곳에 다 모인 듯했다. 메인 스트리트는 라이브 카페와 펍, 바가 즐비했다. 쿵쾅! 쿵쾅! 리듬에 맞춰 내 심장도 뛰었다. 술은 기본이고,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뭐라도 해야 될 것만 같았다. 분위기 파악은 대충 끝났으니 이제 어디에 정착을 할지 선택할 시간. 가장 시끌벅쩍하고 이왕이면 여성분들이 많은(사실 가장 이게 가장 중요했다.^^*) 곳을 스캔했다. 한 펍의 테라스 롱 테이블에서 한데 섞여 놀고 있는 젊은 남녀 무리가 포착됐다. 20명 남짓 되는 인원이 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원래부터 아는 사이 일 것 같지는 않고 각자 와서 같이 놀고 있는 듯했다.
“저기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지 않냐? 외국인 친구들이랑 놀아볼까?”
“...”
타겟을 정했으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펍과 가까워질수록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그런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마침내 펍 앞에 도착했을 때,
“음... 그냥 딴 데 갈까?ㅋㅋ”
“그게 낫겠지?ㅋㅋ”
테이블 분위기는 역시나 너무 좋았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내 예상대로 여기서 만난 친구들임에는 틀림없었다. 문제는 나의, 아니 우리의 영어. 자기소개야 취업 준비하며 연습한 AI 로봇 같은 레퍼토리가 있기에 걱정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맥주만 홀짝홀짝 마시면서 안주만 축내고, 가끔 다 같이 빵! 터지면 영문도 모른 채 가식 웃음을 터뜨리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아... 돌아가면 영어공부해야겠다!”
결국 우린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엄밀히 말해 장벽을 넘어볼 시도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클라키 퀘이 분위기에 취해 내 영어실력을 간과하고 또 의욕만 앞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티랑 여행자였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해외가 처음인, 그것도 첫날부터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기란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즐거우려고 온 여행 아닌가?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사실 다 자기합리화다.ㅠㅜ)
다시 클락키 퀘이를 돌고 돌고 돌아 결국 정착한 곳은 사람이 적당히 모여 있었던 한 라이브 펍. 우린 구석탱이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외국인이 말을 걸어올까봐. 한번 좌절을 겪고 나니 외국인 공포증이 생겨버렸다. 다행히 음악에만 미쳐 춤추고 마실 뿐, 구석에 쭈구리처럼 앉아 맥주만 홀짝, 고개만 깔딱 거리는 두 동양인에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1도 없었다. 우리의 해외여행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싱가포르 MRT(Singapore Mass Rapid Transit) : 우리나라 지하철과 같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대중교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