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국일주 - Episode Ⅴ
여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쇼핑이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거나,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이라거나, 혹은 그곳을 추억할 수 있는 기념품 등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내가 사고 싶을 때 살 때의 일이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쇼핑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공식 일정으로 쇼핑이 잡혀있다.(그렇지 않은 상품은 비싸다;;;) 품목도 답정너. 이미 정해져 있다. 물론 당연히 강제 구매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강제 아이쇼핑은 해야만 한다. 이 모든 걸 알고서 온 패키지여행이었고 충분히 감수할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쇼핑 시간이 다가오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 도대체 왜! 피렌체(Firenze)까지 와서 나는 사지도 않을 가죽제품들을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참다 참다 결국 참지 못했다. 몰래 소소한 일탈을 했다.
사람들이 한창 가죽제품 쇼핑에 빠져있는 사이 홀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좋아! 아무도 모르는군. 자연스러웠어.^^V 사실 우리 패키지뿐만 아니라 다른 패키지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모인 개인 관광객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나 하나쯤 빠진다고 티가 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가죽제품에 있었기에 말이 몰래지 그냥 대놓고 나와도 아무도 몰랐다. 스읍, 하~ 가죽 냄새로 마비됐던 코가 다시 돌아왔다. 가는 비가 보슬보슬 날리고 있는 피렌체의 습한 공기가 상쾌했다. 보통 습한 공기는 눅눅하기 마련인데. 아마 일탈 후 찾아오는 해방감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인 것 같았다. 기분 탓이라는 얘기다. 아무렴 어떠랴, 내 기분이 중요하지.
이 기세를 몰아 가죽 시장 골목에서 더 멀리 벗어났다. 쇼핑과는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넓은 광장이 나왔다. 그래 유럽은 역시 광장이지. 광장이 있으면 성당도 따라다닌다. 피렌체 두오모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포스가 느껴졌다. 만약 가이드님이 있었다면 술술 알려 주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가이드님의 목소리 톤, 깊이 있는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상세하고 재밌는 설명을 좋아했지만 쇼핑과 선택 관광을 위한 영업 활동을 할 때는 유독 얄미웠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은 최대한 아끼며 할 말만 딱 끝내고는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이번 쇼핑 일정에서도 상당히 얄미워 보고 싶지 않았는데 눈앞에 정체 모를 성당을 보니 잠깐 가이드님이 그리웠다. 가이드님! 자질구레한 영업은 됐고 가이드만 충실하게 해 주실 순 없으시겠죠?ㅠㅜ 가이드님도 먹고살아야 하니...
일탈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더 하다가는 일탈이 아닌 이탈을 해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가죽 시장이 가까워질수록 코끝에서 다시 가죽 냄새가 맴돌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딱 적당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가죽 지갑, 가방 등을 양손 가득 득템하고 신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패키지여행에서 쇼핑 일정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강제지만, 누군가에게는 강제가 아닐 수도 있고, 설사 강제로 아이쇼핑을 하게 되더라도 끝에는 자발적으로 구매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강제든 아니든 결과에 본인이 만족하면 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로 나도 내 만족을 잘 찾아 누렸다. 비록 약간의 꼼수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안전하게 다녀왔으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어야 한다. 쇼핑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는 했지만 남은 일정에는 부디 쇼핑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