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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Aug 12. 2021

퇴근박이라는 걸 해보았습니다

여름엔 차박 하는 거아니야

한주의 시작 월요일, 아니 헬요일이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격한 귀소본능으로 후다닥 퇴근을 했다. 평소 코앞에서 버스가 떠나거나 지하철 문이 닫혀도 품위를 유지하며 절대 뛰지 않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젖 먹던 힘은 물론 영혼까지 끌어모아 뛰었다. 다다다다닥! 세이프! 한 걸음만 떼도 땀이 송송 맺히는 더운 여름 날씨에 뽀송뽀송함을 포기한 대가로 버퍼링 없이 지하철에 탑승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부터 먹었다. 마찬가지로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저작운동을 했다. 씹는 건 음식이요, 넘기는 것도 음식이요, 입 속에 뭐가 들어갔는지 음미할 틈도 없이 씹고 넘겼다. 체하기 바로 직전의 속도로 저녁을 해치운 후 옆구리가 아파올 걸 알면서도 동네의 한 상가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에 하루 동안 나의 다리와 집이 되어줄 붕붕이가 있었다. 그랬다, 퇴근 후부터 지금까지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인 데에는 오늘 '퇴근박'이라는 걸 해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퇴근박, 말 그대로 퇴근하자마자 바로 차박을 가는 것을 말한다. 엄밀히 따지면 퇴근 후 바로 떠나야 하지만 뚜벅이인지라 공유카를 이용하다 보니 집에 들를 수밖에 없었다. 차를 픽업해 집으로 왔다.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해둔 차박 살림살이들을 실었다. 차박 평탄화를 위한 자충매트와 놀이방매트(차도 없으면서 이런 건 또 있다.^^;;), 아이스박스, 다과상, 그리고 하루를 버틸 잡다한 생필품들. 최대한 단출하게 챙긴다 했는데도 싣고 보니 뭐가 많았다. 아무튼 출발! 이때까지는 마음이 급했다면 이제부터는 캄다운. 운전은 급하게 하면 안 되니까.(안전제일, 안전운전!) 목적지는 남양주 밤섬유원지. 정확하게는 밤섬유원지에 있는 한 카페 옆 다리 밑 공터다. 동네 스시집에서 야식으로 먹을 스시를 겟겟한 후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요즘 애들은 무서워

월요일부터 과연 누가 차박을 할까? 그래서 일부러 월요일로 정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차박을 즐기고 싶었다. 일찍 온다고 왔는대도 오후 9시를 넘겼다. 차박이 아닌 이상 일찍부터 놀고 있던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갔을 법한 시각. 백퍼 아무도 없을게 분명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따라 엉덩이 실룩실룩 거리며 카페 옆 공터로 진입했다. 역시 내 차가 쏘는 라이트뿐인 걸로 봐서는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 는 줄 알았는데 라이트를 끈, 그러니까 시동을 끄고 주차된 차들이 무려 3대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젊은 애들 대여섯 명이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당황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다시 액셀 위에 지긋이 발을 올렸다. 살짝 당황하기는 상대도 마찬가지. 젊은 애들이라 표현했지만 내 눈엔 '젊은' 보다 '어린'에 가까운(이러면 꼰대라던데;;;) 요즘 애들은 (다행히 그래도 성인은 돼 보였고) 딱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 나처럼 월요일 밤 9시에 여기에 누가 또 올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해 조금 놀란 듯했다. 다리 밑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우린 서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주차를 마치고 이제 차박 세팅을 해야 하는데 차에서 내리기가 망설여졌다.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로 애들의 동태를 살폈다.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빛 하나 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별로 날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이게 뭐라고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여전히 신경은 뒤통수에 둔 채 차분히 세팅을 시작했다. 앞좌석을 최대한 앞으로 당긴 후 뒷좌석을 눕혔다. 놀이방 매트로 빈 공간을 채우고 자충매트를 깔았다. 인디언 러그와 앵두 전구는 챙겨 왔지만 생략. 왠지 오늘 차박엔 감성도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필시 저 애들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조명 ON. 차박 준비 완료! 그 사이 애들도 작은 텐트를 쳐놓고는 몇몇은 그 안에서, 나머지는 밖에서 불을 피우며 놀고 있었다. 세팅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경계심이 풀어졌다. 방심은 금물! 여차하면 액셀 밟고 도망갈 수 있게 앞으로 밀어둔 운전석을 다시 뒤로 살짝 빼놓았다.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자고로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이라 했다. 꼬르륵~ 아,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배 고픈 줄도 몰랐다. 이제 야식 먹어야지.

경계하는 와중에도 촬영은 했다.^^V
차박 세팅 완료!
드디어 찾아온 평화, 야식타임! 자~알 먹겠습니다!
야식 치고 투머치 할까 했는데 오히려 부족했다는;;;
영화관 모드
차박지 주변 밤풍경


#여름엔 차박 하는 거 아니야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나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놀던 무서운(?) 요즘 애들은 차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자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털린 게 있나 싶어 차 안 구석구석, 차 밖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특이한 점은 없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계속 혹시나 혹시나 하며 걱정했었는데(그런 거 치고는 너무 잘 잤지만^^;;) 무사히 하룻밤을 넘겨 다행이다.

혼자 남겨진 차박지는 고요했다. 출근으로 바쁜 다리 위 차들의 경적소리, 물가에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따가운 아침햇살에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내 곡소리만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아으;;; 더워!"

그늘진 곳으로 차를 옮겼다. 햇빛만 사라졌는데도 살 것 같았다. 차문을 잠그고 바로 옆 카페로 향했다. 아침은 커피 앤 샌드위치로.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신선하고 속이 꽉 찬 샌드위치를 사서 차로 왔다. 출근하느라 바쁜 차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겼다. 왠지 승리자가 된 기분. 아무도 날 신경 쓰지도, 아니 내가 보이지도 않겠지만 난 그들에게 가소로운 눈빛을 보내며 혼자 승리감에 도취됐다.

샌드위치 두 조각을 뚝딱 해치우고 남은 커피는 책과 함께 했다. 모름지기 독서는 아침햇살 아래 커피와 함께해야 제맛! 마침 출근시간도 지나 차 소리는 잠잠해졌고 자연이 내는 ASMR만이 들렸다. 독서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목표는 가져온 책 한 권 다 읽기.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졸고 있는 거 아님) 그렇게 한창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책 위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화창했던 날씨가 어느새 꾸리꾸리 해져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둘러 다리 밑으로 차를 옮겼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날씨가 날 약 올리기라도 하나? 옮기자마자 비가 그쳤다. 괜한 수고를 한 것 같아 분했지만 비가 그쳤다는데 만족하고 다시 덮었던 책을 펼쳤다. 그리고 몇 분 후 다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옮긴 자리가 풀숲과 가깝다 보니 온갖 날 벌레들이 어느새 내 차인에 들어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에프킬라, 부채와 휴대용 선풍기를 마구 휘두르며 녀석들을 내쫓았다. 하지만 내 영혼이 내쫓기는 것 같았다. 그제야 드는 생각, 아! 내가 다른 데로 가면 되지!(유레카!) 가능한 풀숲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이번엔 다시 햇빛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해가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것이다. 햇빛 피하니까 비 오고, 비 피하니까 벌레들이 습격하고, 벌레들 피하니까 다시 햇빛이 비치고. 하... 여름에 차박 하기 빡세네;;; 내가 퇴근박을 간다고 했을 때 차박 고수 지인의 조언이 떠올랐다.

"흠... (장비 없이) 여름에 차박은 좀 힘들 텐데..."

말 들을걸. 여름엔 (장비 없이) 차박 하는 거 아니다.

덩그러니
고요한 아침 풍경
출근으로 바쁜 차들
하지만 나는 여유로운 아침
브런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앤  크래미 샌드위치




< CAMPING NOTE >


밤섬유원지 (아래 달빛새 베이커리 앤 카페 옆 공터)
왕숙천이 흐르고 있는 유역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62천㎡의 섬으로 면적은 약 6만 3000㎡이다. 밤나무·포플러 중심의 숲이 울창하고 잔디밭이 조화를 이루어 소풍지로 적당하며, 여름철에는 보트를 타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등나무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선 중기에 세운 태극정이 있고, 활터·탁구장·축구장·배구장·보트장 등 체육·레저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단체 수련장소로 인기 높다. 유선장은 25대의 보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밖에 노래방 기기와 천막을 대여해주는 식당과 매점이 있다. 인근 오남읍 양지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32호로 지정된 양지리 향나무가 있다.

[이용시간 및 요금] 연중무휴, 무료

[찾아가는 법] 내비게이션에 '달빛새 베이커리 앤 카페'로 검색, 카페 입구에서 우측 공터로 진입

[시설] 화장실, 개수대 없음
 - 화장실은 바로 옆 달빛새 베이커리 앤 카페가 있어 카페 이용 시 사용 가능


달빛새 베이커리 앤 카페
무려 4,000평에 달하는 야외정원을 갖춘 베이커리 카페. 정원이 넓은 만큼 인생샷 찍기에 좋은 곳이지만 무엇보다  빵이 맛있는 카페다. 매일 매장에서 직접 구운 빵과 전문 로스터가 로스팅한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한다. 특히 농장에서 갓 수확한 딸기로 만든 딸기크로와상이 인기. 비주얼과 맛, 둘 다 잡았다. 애견카페는 아니지만 야외 공간에는 애견 동반도 가능하다.(단, 목줄 필수!)

[영업시간] 매일 10AM-22PM

[대표 메뉴 및 가격]
 - 아메리카노 6,000원
 - 카페라테 6,500원
 - 맷돌 흑임자 라테 9,000원
 - 유기농 제주 말차 라테 7,000원
※1인 1음료 주문

[문의] 031 571 0303 / https://www.instagram.com/dalbitse/


참고 : 다음, 네이버, 카카오 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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