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보다는 갬성
텀블벅 펀딩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굿즈(Goods)다. 펀딩을 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어필하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다 성의 있는 보답을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였다. 처음 굿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너무 막연했다. 보기만 해 봤지 실제 만들어 본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가지 수는 보통 2가지가 적당하다고 해서 대세를 따르기로. 그러면 뭘 하는 게 좋을까? 갈피를 못 잡는 나에게 출판사 대표님께서 가성비 좋은 굿즈 몇 가지를 추천해주셨다. 엽서, 떡메모지, 스마트톡이다. 여행에세이니까 엽서는 필수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고(개인적으로 책에 못다 넣은 사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픈 사심도 있다.), 떡메모지는... 글쎄다. 일단 나부터가 메모지를 잘 쓰지 않아서;;; 차라리 포스트잇은 많이 쓰는데. 일단 킵! 그럼 마지막 스마트톡은? 호불호가 갈릴 듯했다. 쓰는 사람은 쓰고 아닌 사람은 안 쓰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이것도 일단 킵! 고민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사람들 핸드폰을 힐끔힐끔 스캔했는데 (일일이 따져본 건 아니지만) 정말 애매했다. 반은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선택 장애에 제대로 빠져 버린 나를 보고는 지혜(저자의 여자친구입니다. 책에도 등장한답니다.^^*)가 일침을 날렸다.
"저기요 아저씨! 굿즈는 실용보다는 갬성이네요!"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사람들이 이걸 쓰느냐 안 쓰느냐, 계속 실용성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내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 일침이었다.(뒤통수 빡!!!) 감수성 제로인 남중-남고-공대-군대를 거쳐 하드웨어 개발자가 된 직장인은 그저 뭐든 유용한 물건?이 제일이라 생각했는데. 굿즈는 공대의 영역이 아니었다. 실제 팬시점을 둘러봐도 유명 브랜드나 연예인들의 굿즈를 봐도 실용보다는 갬성이었다. 순간 뇌 깊숙이 처박혀 있는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아! 나도 굿즈 받은 적이 있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여행작가님 책을 구매했을 때 굿즈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책장을 뒤적여 책을 찾아 펼쳤다. 굿즈들은 여태껏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그대로 책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 굿즈들이 책만큼 의미 있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다시 한번 굿즈는 실용보다는 갬성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킵해둔 떡메모지와 스마트톡을 장바구니에서 비워내고는 다시 굿즈 탐색에 나섰다. 뭐가 갬성을 자극할까? 역시나 여행 갬성에는 여행사진이 최고. 사진도 많이 남는데(여행 엽서 24종을 만들고서도 보여주고 싶은 사진들이 더 있던 차였다.) 엽서처럼 사진을 이용한 뭔가가 없을까 생각했다. 그때 매년 연말이면 내가 만들어왔던 것이 생각났다. '아! 이게 왜 지금 생각났지?!' 바로 달력이다. 사실 2019년부터 연말마다 그해 다녀온 여행사진들로 채운 달력을 제작하곤 했다. 그리고는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전했다.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 나는 '나'의 굿즈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거였다. 나를 가장 잘 상징하면서 책과도 어울리는 굿즈. 대신 종류를 조금 바꿨다. 기존에 만들었던 달력들은 탁상 탈력인데 보험사나 협력업체에서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다 갬성적인 낱장 시트달력으로 만들기로 했다. 벽에 기대어 놓거나, 냉장고에 마그넷으로 고정시켜 놓거나, 마스킹 테이프로 벽에 붙여 갬성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특히 엽서와의 케미도 보나 마나 좋을 테니 2가지를 모두 함께 하면 금상첨화! 거기에 달력으로서 최소한의 실용성 가지고 있으니 갬성과 내가 원하는 실용까지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하려고 출근합니다>의 굿즈 세트 2종이 완성됐다.
여행 엽서 24종과 여행 시트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