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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Sep 17. 2021

<여행하려고 출근합니다> 표지 선정하기

어차피 답정너

당신이 사랑에 빠지는 시간, 단 0.2초. 미국 시러큐스대학과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했던 연구결과 그렇단다. 0.2초 동안 과연 뭘 보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서로의 얼굴(외모)밖에 더 보나? 그런데 처음 보는 그 얼굴에 모든 데이터가 다 들어있어 그 사람의 성향을 대충 다 파악하게 된단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 책에 있어 표지는 독자들에게 책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기에 내실 있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에 평소 내 주관으로 잘 결정하는 편이지만 표지만큼은 결정이 쉽지 않았다. 제목을 잘 표현하는지, 전체적인 책 내용과 어울리는지, 사진이 들어간다면 갬성도 한 모금 담겨있는지, 디자인이 촌스럽지는 않은지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은근히 많았다.


여행 에세이이기에 표지에 사진을 넣기로 했다. 일단은 출판사에서 기존에 보냈던 사진들 중 몇 개를 선별하여 시안을 만들어 주었다. 총 6가지의 시안이 왔다. 과연 어떤 사진을 썼을지 기대되는 가운데, 메일을 열어보니 전혀 예상 밖의 사진들이 들어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유럽여행 사진이 많아 유럽 사진 중 하나일 거라 예상했는데 온통 필리핀 팔라완 사진이었다. 예상 밖의 전개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좋아, 사진은 그렇다 치고 디자인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렸다. 사진이 크게 들어간 시안은 우선 탈락! 사진과 디자인이 적당히 배합된 게 안정적으로 보였다.(사진으로 꽉 찬 표지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동그란 액자 안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시안이었다.(1번 시안) 심플한 디자인이었지만 그래서 보기가 편했다. 개인적으로 어렵고 복잡한 책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내 책을 봤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 시안으로 선택했... 까 하는데 계속 눈에 밟히는 시안이 하나가 더 있었다. 비교적 사진이 크게 들어간 시안이지만 전체를 꽉 채우지는 않아 사진이 부각되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심플했다.(2번 시안) 두 시안 사이에서 갈팡질팡, 요래 보면 요게 괜찮은 것 같고 저래 보면 저게 괜찮아 보였다. 도저히 내 손으로 하나를 버릴 수 없어 나 대신 선택을 해주십사 온 동네방네 들쑤시고 다녔다. 결과는? 1번 낙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2번이 아니길 바랬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랬다. 사실 답정너였던 것. 확실히 1번이 좋은데 그렇다고 2번을 버리자니 아까워 그 아까워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여기저기 묻고 다닌 것이었다. 아마 2번이 낙찰됐다면 1번이 낙찰될 때까지 재투표를 했을지도 모른다.

1번 시안(좌) / 2번 시안(우), 혹 2번이 더 좋다 하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주시길... 이제는 돌이킬 수 없거든요.


시안을 결정했으니 이제 다시 문제의 사진을 결정할 차례. 개인적으로 유럽 사진을 쓰고 싶었다. 뭔가 갬성하면 그래도 동남아보다는 유럽이니까. 일단 유럽, 동남아 구분 없이 표지로 쓸 만한 다른 사진이 있는지 하드디스크를 털었다. 그렇게 구석에서 끄집어낸 새로운 사진들로 기존 시안에 사진만 바꿔 샘플 시안을 만들어봤다. 그리고 이번에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물론 내 마음속의 답을 안고서. 결과는? 내 답과 일치했다.^_^

시안에 사진까지, 표지 선정을 모두 마치고 나니 어쩌면 모두가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답정너였다는 것을. 아무튼 내가 겪어야 할 선택 장애를 대신 겪어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최종 선택된 표지, 직장인의 여유가 느껴져서 제목과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았다. 물론 내 생각도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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