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으면 보인다
책의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막상 펼쳤는데 내실이 없다면 금방 덮어버리게 된다. 때문에 책의 표지만큼이나 내지도 중요하다. 내지의 내실이라고 하면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책의 내용이 아닐까 한다. 그게 곧 그 책의 전부니까. 그리고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로는 디자인, 구성 정도가 있겠다. 먼저 내용. 이건 사실 내지 검토 단계에서는 크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지 검토 단계까지 왔다는 건 책의 내용은 나도 출판사도 이미 컨펌이 된 상태이니까. 때문에 문맥상 의미가 어색하다거나 오타 정도만 찾아 수정할 계획. 가장 오래 걸릴 작업 같으니 일단 다음 작업으로 패스! 다음으로는 디자인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출판사와 협의해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디자인 쪽은 문외한인지라 전적으로 출판사의 감각을 믿었다.(물론 나도 싫지 않았으니 그랬다.) 마지막으로 구성은? 이것 역시 출판사의 감각을 전적으로 신뢰했지만 간혹 사진 배치가 잘못되었거나 내 의도와는 다르게 들어간 부분이 있었다. 구성은 딱 그 정도 선에서만 검토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제 본격적으로 내지의 하이라이트인 본문 검토에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중점 체크 요인은 어색한 문장이나 오타. 사실 2~3차례의 탈고 작업을 하면서 이미 다 했던 작업들이기에 딱히 뭐가 나올까 싶었다. 그냥 인쇄되기 전 마지막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책을 읽어본다는 차원으로 대충 슥~ 한번 어 훑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보내온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내지 검토 방법은 꼭! 전부 프린트해서 보시기를 추천해요.
뭐라고!? 이걸 다 뽑으라고? 이래 봬도 이게 260 페이나 되는데.(물론 1:1은 아니고 분할 출력으로 뽑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어차피 이미 몇 번이나 검토했기에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냥 봐야겠다 했는데, 그래!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시키는 대로 뽑아서 보기로 했다.
집에서 뽑기엔 양이 많아 모두가 밥 먹으러 간 점심시간 회사의 힘을 빌렸다.^^;; 다 뽑고 나니 제법 두툼했다. 그 자체로도 책 같았다. 꼭지별로 스테이플러로 집은 후 앞에서부터 차례로 검토를 시작했다. 오른손에 삼색 볼펜을 들고 검은색으로 밑줄을 쳐가며 읽어 내려갔다. 이거 뭐 고칠 게 있겠나? 빨간색은 전혀 쓸 일이 없겠네~ 싶은 찰나, 미끄러지는 그어나갔던 검은색 밑줄을 멈춰야 했다. 잘못된 부분이 발견된 것이다. '헐... 내가 이걸 왜 못 봤지!?' 어쩌다 한번 나온 실수이겠거니 빨간색으로 체크해놓고는 다시 검은색으로 바꿔 읽어 내려갔다. '그래 나도 사람인데 한 두 개는 나올 수 있지.' 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아니, 혹시 내가 사람이 아닌가? 그 이후로 본문을 다 읽을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타와 어색한 문장들이 발견됐다. 체크! 체크! 체크! 쉴 새 없이 검은색과 빨간색을 왔다 갔다 했다. 분명 워드로 직접 작업할 때는 없었는데. 뽑아 놓고 보니 보였다. 지난번 탈고할 때부터 이렇게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딴 건 몰라도 본문 퇴고는 무조건 뽑아서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