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흥 대폭발 카운트다운
올해도 2년 연속으로 보신각 타종행사는 물 건너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인파 속에 끼여 서 있는 건지 떠 있는 건지도 모른 채(분명 까치발은 하고 있는데 순간 땅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보신각 앞에서 시끌벅쩍한 전야제를 보며 다 같이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타종 행사를 맞았던 그때가 사뭇 그리워진다.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타종만큼은 경건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새해맞이는 축제지만 경건한 의식(?)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런 우리나라와는 달리 스웨덴의 새해맞이는 경건함 따위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축제 중의 찐축제였다. 겨울이면 해가 빨리 지는 탓에 평소 초저녁부터 거리가 한산해지곤 하는데 12월 31일에는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임에도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바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서. 예테보리 미술관 외벽을 대형 스크린 삼아 초시계가 띄워져 있었고 바로 앞 예타광장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는 전야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사람들은 포세이돈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자리를 잡고 전야제를 즐겼다. 노래나 춤과 같은 공연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저리주저리 토크쇼가 이어졌다. 뭐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불어도 영어도 아닌 것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난 금세, 아니 사실 처음부터 흥미가 가지 않았다. 나야 어찌 보면 재미없는 게 당연하다지만 스웨덴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토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함께 온 지인들과 술을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며 그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음에도 의외로 조용했던 이유다. 역시 흥은 대한민국 사람들 못 따라가는구나 싶은 마음에 (이게 뭐라고) 괜히 양쪽 어깨에 에베레스트급 뽕이 뾰족뾰족 솟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잠잠했던 광장이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23시 55분.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사정권 안에 들어간 것. 앉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고 각자 놀기에 바빴던 사람들도 이제는 전면 스크린에 집중했다. 23시 59분. 여전히 말은 못 알아듣지만 스크린 속 숫자 덕분에 귀가 뚫렸다. 이제 곧 숫자를 세겠단다. 오합지졸 같았던 사람들이 어느새 BTS 칼군무 못지않은 단합을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스크린에 숫자가 떴다!
19,18,17,,,5,4,3,2,1
Gott nytt år!(고트 니트 오르: Happy New Year!)
새해가 됨과 동시에 스크린에서도 현실에서도 온 사방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불꽃이 터져댔다.
펑! 펑! 퍼버벙!
여기에 사람들의 온갖 괴성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본래 '아비규환'의 의미는 여러 사람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울부짖는 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비참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내게는 울부짖는 것과 같이 들렸기에 아비규환이라 표현했다.) 점잖았던 사람들이 이때부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진출 후 거리로 뛰쳐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는 듯했다.(기억한다면, 혹은 당시 거리에 있었다면 찐아재 인증) 서로 어깨동무를 한채 방방 뛰고, 강강술래는 어떻게 알았는지 원을 만들어 빙빙 돌기도 했다. 짧은 낮 때문에 본의 아니게 묶여있던 야행 본능을 이 시간에 다 발산하려는 것 같았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광란의 도가니 와중에 고상한 연회를 즐기는 한 무리도 있었다. 와인을 병째로 들고 다니며(30년 남짓 인생에서 와인 병나발은 처음 봤다.) 그대로 입으로 마시는가 싶었는데 다른 한 손에 있는 와인잔에 따랐다.(병나발은 아니었지만 잔까지 챙겨 온 정성이 대단하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난장판 중에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흔들림 없이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스웨덴에도 역시 별난 사람들은 있구나. 육지 못지않게 하늘도 아수라장이었다. 대체 불꽃을 얼마나 준비한 건지, 당최 끝날 줄 모르는 불꽃 파티가 계속되는 와중에 어디선가 하나둘 홍등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즐길 수 없는 분위기에 나도 그냥 정줄 놓기로 하고 미친놈처럼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와~ 예~ 야~~!ㅃ@#!@#~~~"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염원과 소망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새해의 시작을 그렇게 미친놈으로 시작했다.
한바탕 소동(?)이 언제 어떻게 끝난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슬슬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미친놈에서 다시 돌아왔다. 나도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가는 길에 항구 쪽에서 불꽃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또 한 번 미쳐야 하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항구에 도착했는데 소수정예로 소박한 마지막 불꽃을 즐기고 있었다. 미치지 않아도 되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래, 그 정도 X랄 발광했으면 지칠 때도 됐지. 한바탕 놀았으니 마무리는 차분하게 해야지, 암암. 그래야 잠도 잘 올 테니. 진짜 마지막 불꽃을 감상하며 아까 못다 한 새해 다짐을 다졌다. 아디오스 2014년, 웰컴 2015년.
(허걱;;; 이게 벌써 8년 전이라니...ㅠㅜ 세월 참 빠르다. 인생무상.)
스웨덴 여행 풀스토리는 < 여행하려고 출근합니다 >에서 만나 보실 수 있답니다.^^